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유럽의 대도시들은 화려한 야경을 뽐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한 해를 마감하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온 도시가 불바다가 돼버리고 거리를 장식하는 각종 데코레이션에 가로수를 덮은 불꽃장식, 그리고 기념물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대변신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도시가 프랑스의 파리. 해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쏟는 비용과 전력소모 비용이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막대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에펠탑을 휘감는 야경만으로도 한 해에 프랑스 정부가 거둬들이는 관광수입이 상당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 덕분인지 12월31일이 되면 날짜가 넘어가는 전광판 아래로 수많은 유럽인들, 세계인들이 몰려든다. 카운트 다운을 하기 위해서다. 5, 4, 3, 2, 1이 끝나고 폭죽이 터지면 온 거리는 광란의 축제현장으로 바뀌고 새해를 맞기 위한 행렬로 붐빈다.지난해 이맘 때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우연히 이 역사적인(?) 현장에 자리를 함께 하게 됐다. 모 대학 유도부 학생들과 배낭여행을 온 여학생들이었는데 무사히 세계 대회를 마치고 함께 구경을 나왔다가 어울리게 된 이 젊은이들은 금세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친해졌다. 올드랭 사인이 울려퍼지길 기다리면서 카운트 다운을 하게 됐다.드디어 제로가 되고 함께 자리를 했던 다른 나라 젊은 남자들이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우리나라 여자 대학생들에게 달려들어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그들 나름의 문화대로-무슨 까닭인지 유럽 남자들은 새해 첫날 동양여자들에게 키스를 하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 마지막 키스를 한 것이다. 하지만 영문을 알 턱이 없는 그녀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치한으로 변신한 유럽의 청년들을 우리 유도 대학생들이 가만히 나둘 리 없었다. 엎어치고 메치고, 금세 난장판이 됐다. 이런 때를 대비해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던(?) 파리시의 경찰관들이 말 그대로 ‘떴다’.그리고 폭력행위를 한 것으로 입건된 대학생들과 그 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유럽의 청년들, 그리고 여대생들이 한 자리에 경찰서에 모였다. 그들 식대로 약물 테스트와 소지품 검사, 보호자 호출 등이 이어졌고 모처럼 들떴던 연말 분위기는 엉망이 돼버렸다. 결국 인솔자의 청원과 보호자의 눈물어린 호소, 서로 다른 문화차이를 설명하는 학생들의 열띤 설명 덕분에 다음날 풀려나긴 했지만 이들이 문 벌금은 무려 1인당 1백만원 정도. 글쎄, 유럽의 청년들도 똑같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뭔 크리스마스 키스를 그렇게 요란하게 해야 하는지. 지금도 파리시에선 똑같은 장면들이 해마다 펼쳐지고 행운의 키스가 되풀이 되고 있다. 아무튼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할 것이 많은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