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팩도 자구책 모색 … 피오리나 회장 거취도 2월에 결판날 듯
HP는 지난해 9월 컴팩과의 합병을 발표하면서 세계 PC업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각각 세계 PC 업계 2, 4위인 두 회사가 합병되면 직원 14만 5,000명, 연매출 874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컴퓨터 업체로 재탄생하게 된다. 부동의 1위인 IBM을 위협할 만큼 막강해지는 것이다.그러나 현재 HP와 컴팩간 합병 추진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무엇보다 HP 오너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상황에서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컴팩의 핵심인사가 합병에 대한 지지발언을 했다는 정도다. 조셉 캐니언 컴팩 공동설립자 겸 전 CEO가 합병을 지지하는 공식입장을 표명한 것이다.그는 그 전까지 마이클 카펠라스 컴팩 현 CEO의 지지 요청을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양사 통합으로 제품간 중복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좀더 강력한 회사로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HP 오너들이 그동안 고수해온 통합 반대 입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지원 발언도 그다지 힘이 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HP 경영진 실책까지 불거져사실 HP 오너들과 갈등을 빚어온 사람은 따로 있다. 세계 최고의 여성 CEO로 꼽히는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다. 그는 그동안 ‘HP-컴팩 합병’ 문제로 대주주 가문과 마찰을 빚다 최근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그러나 피오리나 회장은 여전히 “합병 추진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강행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지원군이 없는 것도 아니다. HP 이사회에서도 월터 휴렛을 제외한 8명이 합병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던 만큼 합병 반대 진영과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이에 대해 반대 진영의 기세도 만만찮다. 처음 합병 얘기가 나온 지 2달 후 휴렛가가 합병 반대의사를 표명한 데 이어 팩커드가도 이에 합세하면서 피오리나 회장을 계속 압박해 오고 있다. 두 집안은 HP의 지분 18%를 보유하고 있는데다 이미 세를 불리기 위해 다른 대주주를 상대로 설득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이처럼 합병이 지지부진하자 캠팩도 내심 포기한 눈치다. 차라리 고객들에게 역량을 집중해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자는 분위기다. 피오리나 회장 역시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설득전을 펼치고 있지만 힘에 부치는 게 현실이다.일각에선 피오리나 회장 취임 후 제기됐던 경영 방식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합병 추진을 계기로 불거졌다는 얘기도 나온다.실제로 지난해 5월 발표된 HP의 2분기 실적은 참담했다. 매출액은 전년 같은 분기 120억달러에서 116억달러로 4% 가까이 떨어진데다 영업이익마저 9억 3,500만달러에서 3억 1,900만달러로 폭락했다. 다음 분기 역시 매출액 감소폭이 16%로 늘어났고, 이익은 80%나 감소했다. 주가도 지난해 여름의 3분의 1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급기야‘해고하지 않는 전통’을 깨고 채 1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1만명이 넘는 직원을 내보내야 했다.이에 따라 모든 게 피오리나 회장 때문이란 비판이 제기되며 그녀는 갖가지 구설수에 시달렸다. 피오리나 회장의 무리한 경영 목표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2000년 말 경기 둔화조짐이 보이는 데도 2001년 15% 이상의 매출 성장을 장담했다가, 오히려 매출이 뒷걸음쳐 월가의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피오리나의 공격적인 경영전략도 이미 악화된 시장 환경에서는 실효가 없었던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피오리나 거취 문제는 오는 2월에 있을 HP와 컴팩 합병의 찬반 투표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지금 실리콘밸리는 피오리나를 중심으로 현 경영진과 휴렛·팩커드 일가 등 대주주들의 첨예한 갈등으로 한껏 달아오른 채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