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의 사회활동 참여 폭을 넓혀주려는 것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통된 현상이다. 적어도 법치국가의 틀을 갖추고 인권을 존중하는 정책을 펴는 나라치고 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인색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일자리가 주어진다고 여성들의 고민이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 활동에 나선 여성, 특히 기혼여성들 앞에 놓인 장벽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그러나 취업주부들 앞에 놓인 최대 난관 중 하나는 단연 육아와 관련된 고민이다. 전통적 대가족제와 달리 가족 구성원이 기껏해야 두세 명에 불과한 핵가족 가정에서 직장을 가진 여성이 아기를 돌보아줄 사람을 제 마음대로 골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겸연쩍은 마음을 무릅쓰고 친정 부모나 시가 어른에게 의지하는 것이 가장 보편화된 방식이다. 고령의 어르신들이 힘겨워하는 것은 알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기 때문이다.여성의 사회 활동이 한국보다 일반화된 일본에서도 주부들의 육아 부담은 만만치 않다. 정규직이든, 시간제든 일자리를 갖지 않으면 쪼들리는 살림을 벗어나기 어려워 주부들마다 생활전선을 뛰고 있어서다. 일본 언론은 근로 활동이 가능한 전체 여성의 약 40%가 생계를 위해 일과 씨름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자연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여성들이 마음놓고 일터로 나갈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쏟고 있다. 매달 몇 천엔 정도의 비용만 내면 아이를 영아 때부터 맡길 수 있는 구립, 또는 시립 보육원을 행정구역마다 촘촘히 세워놓고 있다.하지만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공적 지원만으로 여성들의 육아 문제가 속 시원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의 근로 시간이 길어지고 사회활동 참여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운영방식과 지원형태에도 사각지대가 새롭게 생겨나기 때문이다.일본 언론은 이와 관련, 정부의 공적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틈을 메우면서 육아와 관련된 비즈니스를 신종 유망사업으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민간 기업들을 꼽고 있다. 민간 기업들이 특유의 순발력과 치밀한 사업 마인드로 보육 비즈니스의 씨를 퍼뜨리고, 묘목을 건강하게 키워가고 있다는 것이다.보육 비즈니스의 선두 주자로는 유아용품 전문업체와 인재파견 회사가 첫 손가락에 꼽히고 있다. 유아용품 업체 중 ‘콤비’는 자회사를 통해 지난해 11월 초 도쿄 나카노구에 보육원을 개설하면서 보육 비즈니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유괴, 상해 등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가 늘어나면서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의 불안심리가 높아진 점에 주목, 안전을 사업 포인트로 특히 강조하고 있다.보육원은 IC카드를 가진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감시카메라를 설치, 보안에 만전을 기했다. 부모들의 반응이 좋자 콤비는 앞으로 5년안에 도쿄, 카나가와, 사이타마 등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일대에 같은 형태의 보육시설을 12개 설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유아용품업체 중 한국에도 이름이 잘 알려진 ‘피죤’은 보육 대상 아기의 연령을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첫 돌 미만의 어린 아기를 가진 부모들의 보육원 이용 수요가 가장 많다는 점을 감안, 신생아 때부터도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립이나 시립 보육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부모들을 고스란히 고객으로 흡수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자회사가 운영 중인 탁아시설을 포함해 총 26개의 보육원을 개설해 놓고 있지만, 이를 앞으로 3년 내에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것이 피죤의 목표다.인재파견 회사들은 각 분야에 전문 인력을 파견하면서 축적한 업무 노하우와 인적 자산을 토대로 시장을 개척해 가고 있다. 이들은 어린 아이를 돌보아주는 베이비 시터 경험을 가진 여성 인력을 탁아시설과 보육원에 파견하거나 전문 자회사를 앞다투어 설립하고 있다.유아용품업체 ‘콤비’ 첫번째로 뛰어들어대형 인재파견회사 ‘퍼스나’는 상업지구나 맨션밀집 지역의 탁아시설 운영에만 전념해 왔으나 앞으로는 베이비 시터를 활용, 일반 주거지역에서도 탁아사업을 벌일 방침이다. 또 다른 인재파견 회사 ‘뎀푸 스탭’은 이에 앞서 베이비 시터 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를 세우고 보육원 사업에 뛰어들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보육 비즈니스 시장선점 경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움직임은 철도회사들의 동향이다. 철도(私鐵)를 운영 중인 민간 기업들은 별 어려움 없이 고객과 부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앞세워 보육 비즈니스 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철도를 이용해 출·퇴근 하는 주부들을 자연스럽게 보육원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데다 역 구내를 보육원 시설로 활용하면 무리 없이 고객 층을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 철도회사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업체로는 도쿄 일대의 경우 케이힌 전철과 오다큐 전철이 으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칸사이 일대에서는 난카이 전철이 선두 주자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들 철도회사는 철교 고가 밑이나 역 구내에 설치한 보육원을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어놓아 주부 고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사회인 교육을 전담해 온 컨설팅업체들의 보육 비즈니스 참여 붐도 눈길을 끌고 있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더 휴먼’은 도쿄 주변의 무사시노시에서 시범 운영 중인 보육원을 앞으로 칸토 지방 일대에까지 확산시킨다는 방침을 세우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민간 기업들의 보육 비즈니스 참여 붐은 보육 비즈니스 자체의 성장 가능성과 함께 일본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가 기폭제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도쿄도는 지난해 5월 민간 보육원에 대해 운영비의 최고 절반을 도가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 기업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주었다. 도쿄는 도가 운영하는 공립 보육원의 수가 모자라 많은 부모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점을 감안, 이를 민간 보육원의 힘으로 메운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를 위해 재정지원 대상의 민간 보육원 수를 오는 2004년까지 50개로 늘려 보육원 운영 기업을 적자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줄 계획이다. 가와사키시는 민간 보육원에 대한 직접 재정지원 대신 첫 돌 미만의 아기를 맡아 돌봐줄 경우 1인당 월 3만엔의 보조금을 보육원에 지급하기 시작했다.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도입한 육아지원책 또한 민간 기업들의 보육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을 높인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좀더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공립 보육원을 민간에 위탁하는 제도를 신설한 것이 기업들의 보육 비즈니스에 대한 시각과 마인드를 넓히는 데 자극제가 됐다는 것이다.한국의 경우 한명숙 여성부장관이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적극 지원에 나설 것임을 다짐, 정부가 보육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자신의 힘과 판단으로 보육 비즈니스를 새로운 시장으로 키워가는 일본의 실례는 민관 합동이 만들어가는 백년대계의 또 다른 형태라 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