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식업계에서는 ‘시간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불붙고 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유익하게 활용해 보려는 싸움이다. 싸움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한쪽이 1분 1초라도 시간을 쪼개 쓰기 위해 애쓰고 있는 데 비해 다른 한쪽에서는 고객들이 남는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도록 아이디어를 짜내는 싸움이다.일본의 대형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업체 ‘스카이 락’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일선 점포 객장에 터치패널식의 액정 화면을 갖춘 컴퓨터형 오락단말기를 테이블마다 일부 시험적으로 설치하기 시작했다. ‘플러스e’로 불리는 이 오락단말기는 단적으로 말해 고객들의 무료함을 달래고자 설치한 것.스카이 락은 자체 조사에서 고객들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이용하면서 갖는 가장 큰 불만으로 대기 시간을 꼽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주문을 한 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거나 불가피하게 조리 시간이 길어지면 고객의 불만이 한층 더 커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경우 점포 이미지와 매출에도 약영향을 끼칠 것은 뻔한 사실.스카이 락, 오락단말기 설치 호응플러스e는 DVD 및 통신위성에서 수신된 다양한 정보를 본체의 하드디스크에 저장시킨다. 그리고 이용 고객들의 지시에 따라 디스플레이 화면에 정보를 띄운다. 짧은 시간이지만 고객이 플러스e를 사용하는 용도는 제각각이다. 30~100엔만 내면 간단한 점도 칠 수 있고 재미있는 게임도 즐길 수 있다. 이용료는 식사값을 치를 때 함께 내도록 했다.시험 운영 결과 고객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대다수 고객이 플러스 e가 설치된 테이블을 요청하는가 하면 자리에 앉고서도 음식이 늦어지는 데 대한 불만을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 당연히 매장 분위기도 밝아졌다. 스카이 락의 스즈키 마코토 종합본부 사장실 매니저는 “플러스e를 도입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영업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며 “오는 4월 말까지는 일본 전역의 900여 점포에 모두 플러스 e를 깔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카이 락은 점포마다 테이블이 스무 개 안팎에 이르고 있어 줄잡아 1만 5,000개 이상의 플러스 e가 설치된다는 계산이다.그러나 플러스 e의 설치와 도입 확대는 스카이 락 1개사 만의 작품은 아니다. 액정화면 디스플레이가 딸린 컴퓨터를 1만 대가 훨씬 넘게 보급하려면 가전왕국 일본시장에서도 비용이 만만찮게 소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카이 락이 플러스 e의 도입을 맘먹게 된 직접적 계기는 JCM이라는 한 중소전문업체의 권유와 독특한 운영방식에 있었다. JCM은 한마디로 말해 디스플레이와 컴퓨터의 설치, 운영에서 수리, 콘텐츠 제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떠맡았다. 그 대신 오락단말기를 사용한 대가로 고객이 내는 콘텐츠 사용료와 광고수입의 상당부분을 넘겨받고 있다. 플러스 e를 도입하는 회사는 초기 투자비용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JCM은 JCM대로 리스회사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목돈 투자를 최대한 억제했다. 플러스 e가 테이블 하나당 하루 1,000엔 정도의 수입을 올려 준다고 가정할 때 JCM은 2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상각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제키 도시아키 사장)JCM은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선보인 플러스 e의 기능과 용도가 급속도로 다양화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휴대폰 단말기를 연결해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다운받을 수 있는 기능뿐 아니라 즉석 카메라 기능도 갖추도록 할 계획이다. 고객들은 이 경우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그 자리에서 프린트해 받을 수 있어 이용만족도 제고에 상당한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는 게 JCM의 판단이다.고객들의 대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첨단 도구를 도입하는 업체는 스카이 락만이 아니다. 어찌 보면 워낙 음식 나오는 시간이 빨라 시간에 관한 한 고객들의 불만이 전혀 없을 것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등장했다. 햄버거 업체인 일본 맥도널드는 어린이 고객을 대상으로 터치형 오락단말기 ‘터치데 아소보(아소보는 ‘놀자’라는 뜻의 일본어)’를 지난 2001년 가을부터 도쿄 일대의 수도권 점포에 일부 시험적으로 도입했다. 맥도널드는 이 단말기에 세가가 제공하는 오락콘텐츠를 띄워 어린이 고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맥도널드가 오락단말기를 설치한 데 대해 외식업계 관계자들은 업체간의 고객확보 싸움이 날로 치열해지는 데다 광우병 파동으로 햄버거 업계의 고객흡인력이 약해진 때문이 아닌가 보고 있다. 하지만 배경이야 어쨌든 맥도널드는 오락단말기 보급에 강한 의욕을 내비치고 있다. 맥도널드는 IT(정보기술)로 무장한 오락기가 일본 외식업계의 고객 쟁탈전에서 필수무기로 자리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판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메뉴 초스피드 제공 아이디어 넘쳐스카이 락의 사례는 고객의 무료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업체측이 지혜를 짜낸 케이스로 꼽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고기덮밥 업체인 ‘요시노야’의 시(時)테크는 일본 외식업체들이 원가절감 차원에서 얼마나 시간과의 승부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도쿄증시 1부 상장업체인 요시노야는 일본 최대의 염가형 고기덮밥 체인점이지만, 다른 경쟁업체와 달리 점포 내에 식권발매기를 설치해 놓지 않고 있다. 대다수 염가형 식당은 고객이 식권을 구입한 뒤 이를 주문할 때 내놓는데, 이와는 다른 풍경인 것. 그 대신 요시노야에서는 고객이 주문한 메뉴를 종업원이 카운터의 계산대에서 즉시 입력시키면서 음식값 지불에 응대하도록 하고 있다.요시노야는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머무는 평균 시간을 자체 조사한 일이 있었다. 고객들은 평균 9분을 머물면서 식사에 7분40초, 주문 후 음식이 나올 때까지 45초, 계산에 15~20초를 각각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을 찾은 본래 목적인 식사에 사용하는 시간은 85%로 다른 외식업체들을 월등히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 시간이면 한 자리를 적어도 여덟 번은 회전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식권발매기는 종업원들의 일 부담만 덜어 줄 뿐 회전율을 높인다거나 점포 내에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무얼 먹을까 망설이는 고객들 때문에 점포만 혼잡해질 뿐입니다.”(요시노야 사업총괄실 관계자)요시노야는 시테크 효과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취급 메뉴도 될 수 있는 대로 압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조리 절차가 단순해 주문 후 단시간 내에 내놓을 수 있는 덮밥 이외에는 불필요하게 음식 가짓수를 늘리지 않고 작업효율을 높이고 있다. 매출은 일본 덮밥체인들 중 으뜸이지만, 중심 메뉴는 고기덮밥과 정식 두 종류뿐이라는 점에서도 지독한 메뉴정예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카레라이스뿐 아니라 정식만도 여러 가지를 같이 끼워 파는 후발 경쟁업체들의 다메뉴 전략과는 철저히 대비되는 판매노선이다.커피 체인 도토루 또한 시테크 싸움에서 요시노야 못지 않은 기민함을 보여 준다. 도토루의 일선 매장에서 고객이 커피를 주문한 뒤 기다리는 시간은 불과 15초다. 철저히 표준화된 대응기법과 종업원들의 숙련된 동작이 고객의 귀중한 시간을 아껴 주는 한편 회사측에는 인건비와 제반 비용 절감효과를 안겨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