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 해도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 국제통화기금(IMF)이 잇따라 용인하면서 2001년 말부터 불거지고 있는 엔저 문제다. 벌써부터 1995년 4월 이후 3년 반 이상 지속됐던 역(逆) 플라자 체제가 다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그렇다면 역(逆) 플라자 체제가 다시 재현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19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우선 미국의 무역적자 부담이 적었고, 국제적으로 멕시코 사태에 따라 폭락했던 달러화 가치가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 회복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가능했다.이에 비해 현 시점에서 일본경제 안정을 위한 엔저 대책은 별다른 이득이 없는 상태다. 당사자인 일본은 최근처럼 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엔저는 경쟁력 개선을 통한 수출증대효과보다는 일본 내 자금이탈에 따른 경기침체 효과가 더 큰 상태다.미국도 엔저·달러고에 따라 추가적인 무역적자 부담을 안아야 한다. 특히 일본경제에 ‘안항적(雁行的)’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엔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하다. 이는 통화마찰까지 우려돼 미국경제나 세계경제 안정에 도움이 안 된다.결국 이번에는 미국과 IMF가 엔저를 용인한다 하더라도 역플라자 시대처럼 엔·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엔·달러 환율은 올해는 일시적으로 130엔선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으나 평균 125∼130엔 범위대가 예상된다. 물론 지난해에 비해서는 5엔 정도 상승한 수준이다.중국 위안화 가치의 향방도 올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무역규모를 감안할 때 중국으로서는 WTO 가입으로 1994년부터 ‘1달러=8.28위안’을 중심 환율로 운영해 온 고정환율제를 포기해야 된다. WTO 가입 이후 수시로 변하는 외환수급을 환율로 흡수하지 못할 경우 물가 등 내부적으로 부담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앞으로 중국이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 기본적으로 위안화는 중국이 가지고 있는 외환수급에 따라 결정되는 자유변동환율제를 채택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지난해 11월 말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000억 달러 내외로 일본에 이어 세계 제2의 규모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제2선 자금(back-up facility)인 홍콩의 외환보유고까지 감안한다면 3,000억 달러에 근접한다. 올해 무역거래에서도 200억 달러 이상의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이런 외환사정이라면 위안화는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올해는 실질적인 유로화 시대가 열렸다. 이미 지난 1일부터 일상생활에서 유로화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오는 3월부터는 기존의 회원국 통화는 법적효력이 상실되면서 유로화만 공식 법화(法貨, legal tender)로 인정된다.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유로화 도입은 일단 성공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출범 4년을 맞는 유로랜드 경제는 연평균 2%대 이상의 성장세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한때 0.80달러대까지 떨어져 2류 통화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던 유로화도 미 테러사건을 계기로 안전통화로서 부각되면서 0.91달러대로 회복되고 있는 상태다.유러화 ‘1유로=1달러’ 등가수준 회복할 듯유로랜드는 유로화 도입 이후 예상과 달리 긍정적 효과가 많이 나타남에 따라 지난해에는 그리스를 새로운 회원국으로 맞았다. 그동안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영국, 스웨덴, 덴마크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유로랜드에 가입할 의사를 비치고 있다. 대체로 올 상반기에는 유로랜드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된다.현재 가입 협상 중인 폴란드, 체코, 헝가리도 올해에는 결말이 날 가능성이 높다. 그후 러시아 일부 지역, 북부 아프리카로 유로랜드의 권역이 확대되면서 범(汎) 유럽경제권으로 발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요인을 감안하면 유로화 가치도 올해에는 ‘1유로=1달러’의 등가수준은 무난히 회복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그렇다면 국내외환시장은 어떻게 될 것인가. 2000년에 이어서 지난해에는 연말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원화 환율이 급등하고 환율변동폭이 커진 한 해라고 할 수 있다.지난해 말 환율이 급등락을 거듭하는 가운데 외환당국이 보이고 있는 입장을 감안해 보면 엔화 환율이든 외국인자금유 출입이든 아르헨티나 모라토리움 사건이든 간에 설령 예기치 못한 환율 변동요인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원화 환율 움직임은 시장에 맡기고 있는 분위기다.따라서 올해 원화 환율은 대내외적으로 환율 변동요인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시장에서 흡수해 나간다는 것이 외환당국의 기본방침으로 이해된다. 올해도 많은 변수가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나 대체로 1·4분기까지는 엔화 환율 움직임에 따라 원화 환율이 좌우되고 그 이후에는 외환수급요인이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일단 대외적인 여건은 좋지 않다. 현재 일본경제가 처한 여건을 감안할 때 지난해 말부터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엔저 기조가 꺾여 원화 환율의 안정요인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올해도 연초 이후 한동안은 엔화 환율수준에 따라 원화 환율 움직임이 좌우되는 지난해 말의 외환시장 모습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만약 최근에 일본 정부가 용인하는 마지노선으로 알려지고 있는 달러당 140엔선까지 엔화 환율이 올라갈 경우에는 원화 환율도 1,400원선까지 간다는 전제를 국내기업들이 수용할 자세를 갖고 준비해 놓아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오는 4월을 고비로 외환시장의 모습이 크게 바뀔 가능성이 높다. 3월 말 일본기업들의 회계연도 결산이 끝나고 국내경기가 회복될 경우 국내외환시장은 외환수급요인에 따라 환율수준이 결정되는 정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원화 환율은 점진적으로 하락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올해 외환수급요인을 따진다면 지난해보다 더 나쁜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경상거래 측면에서는 경기가 회복될 과도기적인 단계(대체로 6개월 정도)에서는 수입증가율이 수출증가율을 앞질러 무역수지는 더 악화되는 것이 관례다.주요 예측기관들은 지난해 90억 달러 내외의 흑자를 기록한 경상수지가 올해는 절반 이하로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대체로 30∼50억 달러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결국 관건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유입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추가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은 지난해보다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올해는 경제기초 여건 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져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추가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따라서 올 2·4분기 이후 외환수급요인에 따라 국내외환시장 움직임이 좌우되는 여건이 형성된다 하더라도 원화 환율이 크게 하락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환율변동폭이 커질 것으로 보여 환위험 관리에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