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12월 어느 늦은 밤, 삼성물산 주택부문 이상대 사장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모델하우스에 격려차 들렀다. 그곳에서 만삭의 몸으로 현장을 챙기던 상품개발실 디자이너 추두원 대리(34)를 만났다. 건강을 염려하는 이사장에게 추대리는 “직접 디자인한 아파트여서 마무리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2000년 1월, 삼성은 새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의 광고모델로 추대리와 그의 갓난아기를 등장시켰다. 추대리의 열정을 눈여겨본 이상대 사장의 깜짝 아이디어였다. 광고 컨셉은 ‘새천년의 희망’.삼성아파트의 밀레니엄 이미지가 된 추두원 대리는 요즘도 모델하우스 공사현장을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주위 동료들은 그를 ‘삼성아파트 효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된 후 디자인 역량이 더 강해졌다는 평이다.“주부들 마음은 주부가 잘 알잖아요. 평소 불편을 느꼈던 부분, 개선되었으면 했던 것을 일과 연결시키니 호응이 따라오더군요. 무엇보다 사내에서 디자이너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게 좋습니다.”삼성물산 내부에서 추대리를 비롯한 주부 디자이너들은 재건축 수주, 분양률 증진의 일등공신으로 통한다. 특히 추대리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디자인에 적용해 주부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로 유명하다.생활+과학 인테리어 ‘100년 가는 집’ 지향추대리는 주상복합아파트 로얄팰리스 Ⅰ,Ⅱ와 지난해 가을 돌풍을 일으켰던 갤러리아팰리스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지난해 10차 동시분양에서 선보인 서울 동작구 상도2차 30평형은 19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밖에 수많은 서울 강남의 재건축 수주용 모델하우스가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손대는 것마다 ‘히트’를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늘 생활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세계적인 인테리어 박람회도 눈여겨보고요. 겉으로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같은 집은 정말 싫습니다. 생활과 과학이 접목된 ‘살면서 좋은 집’, ‘100년 가는 아파트’를 만들자는 게 모토예요.”추대리의 일과는 회사 디자인실과 모델하우스 공사현장 오가기의 연속이다. 한두 달에 1건 꼴로 프로젝트를 완수해야 하고 엄격한 사내외 품평회도 거쳐야 한다. 먼지 날리는 현장에서 밤 12시를 넘기는 날도 허다하다. 게다가 연초엔 항상 세계 트렌드를 엿보기 위한 해외 출장에 나선다.추대리의 올해 목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만든 집에서 살아보자’는 것. 경기도 광명의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1순위가 되는 3월부터 열심히 청약 신청을 넣어 기필코 당첨되겠다”고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