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인 헤지도 못해 도산 … 환차손을 고객들에게 전가시키기도
“전례 없이 환율 변동폭이 커져 기업 스스로 적극적인 환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할 때다.”최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외환시장 동향과 기업 환리스크 관리정책 세미나’에서 강연에 나선 금융감독원 박동순 국제업무팀장은 이같이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박팀장은 “환차익을 노리는 공격적인 외환대책을 세웠다가 오히려 환차손을 입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일단 방어적인 관리방법을 마련하고, 무엇보다도 기업 스스로 내부규정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우리 주위에서 환관리 실패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직 기업들이 환위험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역업체 C사는 지난 2000년 11월 9,500만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입하면서 2001년 2월에 수입대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환위험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해 두지 않아 크게 손실을 봤다.2001년부터 2단계 외환자유화가 실시돼 원·달러 환율이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수입대금에 대한 헤지를 하지 않은 것은 C사 경영자의 큰 실수였다. 원·달러 환율이 수입 계약할 때 1,137원이었으나 대금을 결제할 때 1,247원으로 상승, 무려 104억원의 환차손이 발생했다. 회사의 존폐 위기에 몰려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해상 운송업체인 A훼리사는 대표이사의 환관리 인식이 부족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이 회사는 선박 도입 자금을 매 분기 말일에 100만달러씩 지불하기로 하고, 하루 전 달러 매수 시점을 결정하는 방식을 택했다.이 회사는 중·장기 전망 없이 결제일이 다가올 때마다 기계적으로 달러를 매입해 지불했다. 결제 당시 환율이 낮아지기만을 기다린 셈이었다. 선물환을 통해 헤지 거래를 할 경우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대표이사는 인식하지 못했다. 담당 실무자 역시 선물환 거래를 통해 헤지를 했을 경우 이익이 나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손실이 날 경우 상사의 추궁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굳이 선물환 결제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경영자의 무지와 실무자의 안이한 생각 때문에 A사는 막대한 손실을 봤다.국내 B항공사는 항공기를 수입하면서 환위험 헤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지난해 환차손을 입었다. 중요한 점은 항공사의 잘못으로 본 손실이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정부의 외환담당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선 요금이 오른 것은 B항공사의 환차손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B항공사는 환율이 올라 적지 않은 손실을 보게 되자 슬그머니 국내선 요금을 올렸다는 얘기다. 이처럼 아직 국내 기업들은 고객들에게 환차손을 전가시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이 없다는 점을 대변해준 경우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