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130엔대 엔화환율,한국경제 부담...외환당국 적극적인 역할 검토할 때

올해 들어 일본의 위기설과 엔화 약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엔화 약세가 미·일간의 경제여건뿐 아니라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엔저 용인’이라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고,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통화마찰로 이어지고 있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앞으로 엔화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엔화 약세의 성격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도 이런 연유다. 즉 ▲일본경제가 과연 회복될 것인가 ▲미국과 IMF의 엔저 용인설은 왜 나오나 ▲엔저를 용인할 경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현 시점에서 급진전되고 있는 엔화 약세가 진정되기 위해서는 일본경제가 살아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일본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일본정부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위기설이 나돌 만큼 경제상황이 악화돼 있을 때에는 국민화합을 통해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 고이즈미 현 총리에 대한 저항세력들의 ‘강판 시도’와 함께 연합정당은 공명당과 보수당도 파트너 관계에 균열된 조짐을 보이고 있어 부담이 되고 있다. 한때 85%에 육박하던 일본 국민의 신뢰도 또한 60% 이하로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경제적으로는 국민소득(GDP) 기여도의 약 66%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소비가 회복되는지가 관건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 국민은 유동성 함정에 빠져 소득이 발생하면 저축해 민간소비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더욱이 일본은 지난 93년 하반기 이후 17차례에 걸쳐 회당 10조엔 이상의 대대적인 경기 부양대책으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11%, 132%에 이르고 있어 재정정책 면에서도 여유가 없다. 금리도 물가를 감안하면 이미 마이너스 수준이기 때문에 추가 금리인하 여지가 없는 상태다.최근 들어서는 고이즈미 또는 3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예상으로는 3월말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일본기업과 금융기관들의 실적이 전후(戰後) 최악으로 추정되고 있다. 만약 이런 추정이 현실화될 경우 닛케이 지수는 1만 선이 다시 붕괴되면서 대부분 일본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유동성 부족 문제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문제는 일본 금융기관들과 기업들이 유동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빌려준 엔화 자금을 회수할 경우 유동성 부족 문제가 여느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그런 만큼 앞으로 일본경제가 살아나지 못한다면 아시아 지역에서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그중 엔화 가치가 기조적으로 떨어질 가능성에 가장 유념해야 한다. 이미 일본 자체적으로는 경기부양 차원에서 엔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 특히 IMF와 미국이 엔저에 방관자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국제 외환시장의 커다란 질서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현 시점에서 일본이 엔저를 용인한 가장 큰 이유는 경기침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엔저를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의 협조를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는 방안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IMF와 미국도 엔저를 용인하는 의사를 표명한 것은 일본경제의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비록 일본경제가 세계 총소득(GDP)에서 9%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8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완충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일본경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미국과 세계 경제도 안정될 수 없는 점이 감안된 것으로 풀이된다.그렇다면 역(逆) 플라자 체제가 재현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번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95년 4월 역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은 무역적자 부담이 적었고 국제적으로 멕시코 사태에 따라 폭락했던 달러화 가치가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 어느 정도 회복돼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이번에는 일본경제 안정을 위한 엔저 대책은 별다른 이득이 없는 상태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일본은 최근처럼 금리가 낮은 상태에서 엔저는 수출증대 효과보다는 일본내 자금이탈에 따른 경기침체 효과(역자산효과, Negative Wealth Effect)가 더 크기 때문이다.미국도 엔저에 따라 추가적인 무역적자 부담을 안아야 한다. 특히 일본경제에 ‘안항적(雁行的) 경제구조’와 엔·달러 환율에 천수답(天水畓) 수출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엔저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자국통화의 평가절하가 불가피해 통화마찰까지 우려된다.이미 통화마찰이 불거지고 있다. 올들어 엔·달러 환율이 130엔대에 오르자 경쟁력 약화를 우려한 중국이 엔화를 대거 매입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자국통화의 가치하락을 용인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이 엔저 방지를 위해 공동 대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결국 이번에는 역플라자 시대처럼 엔·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로이터사도 54개 국제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환율서베이 자료에서도 135∼140엔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미 130엔대에 들어선 엔화 환율은 우리로서는 상당히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그렇다면 국내 외환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무엇보다 원화 환율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 점에 있어서는 정책 당국자의 안이한 자세가 문제다. 일부 정책 당국자를 중심으로 일본의 수입선이 한국으로 바뀔 경우 반사적 이익을 기대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낙관적인 시각이 올 들어 원·엔 환율이 2년 6개월 만에 100엔당 1,000원선 밑으로 떨어져 수출업체에게 타격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동시에 원화 환율변동을 더욱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의 경우 미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환율 변동폭은 상대적으로 커 현재처럼 엔·달러 환율이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자들의 참고지표(Reference Indicator)가 되는 상황에서는 원화 환율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따라서 현 시점에서 외환당국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최근처럼 국제 외환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는 현 외환당국의 입장처럼 시장자율에 맡기는 식의 정책대응은 자유방임에 가깝다. 국내 외환시장의 교란요인인 외국인주식 투자자금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해 환율 예측력 제고와 환율 변동폭을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