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대회 개막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자 일본 시장에는 반짝 특수를 겨냥한 상품 출시가 러시를 이루고 있다. ‘타고난 장사꾼’이라는 평판에 걸맞게 일본 기업, 일본 상인들이 월드컵 대목을 겨냥해 내놓은 상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종류도 많을 뿐 아니라 기발한 센스와 아이디어를 동원한 것들이 적지 않아 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된다.지난 1월 말부터 부쩍 화제를 뿌리고 있는 경기관전 여행상품이 한 가지 예다.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노리고 군소 여행사들이 판매 중인 이 상품은 보통의 관광코스에 관전 티켓을 묶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신청자를 모집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 국내여행은 2박3일에 5만~6만엔이면 충분하지만 입장권을 묶은 상품은 이보다 가격이 10배쯤 더 비싸다.월드컵 관련상품의 대다수는 이처럼 화제가 되고 있고, 매스컴 또한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한몫을 잡을 것이 확실하면서도 보통 사람들의 시선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는 상품이 하나 등장했다. 바로 투명방호방패다. 투명방호방패는 말 그대로 속이 투명하게 비치도록 만들어진 방패다.이 방패가 일본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기능이 뛰어나서다. 투명방패는 방패를 사용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훨씬 더 잘 파악할 수 있으니 보통 방패와 효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방패 재질의 강도 또한 완벽에 가깝다. 5미터 앞에서 발사된 총탄도 방패를 뚫지 못하고 튀어 나간다. 방패를 만든 업체가 지방 소도시의 무명 기업이며 개발에 몇년동안 땀과 정성을 쏟았다는 점도 큰 화제가 됐다.투명방호방패 제작에 성공한 ‘낭와’는 동해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마주보고 있는 도야마현 다카오카시에 자리잡은 종업원 7명의 초미니회사다. 말이 좋아 회사지 가내수공업체 수준의 영세 유한회사다.1975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자동차부품과 골프 클럽의 하청생산이 주업무였다. 골프 클럽에서는 티탄헤드를 전문으로 제작했다. 다카오카시에 둥지를 틀고 있는 600여개 공장의 대다수도 낭와와 비슷한 일로 종업원들을 먹여살려 왔다.2002년 월드컵 때 공식 데뷔그러나 버블경제 붕괴 후의 장기 불황과 일본 제조업에 불어닥친 공장 해외이전 붐으로 이 회사도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안게 됐다. 죽어라 생산원가를 낮추고 버텨보려 했지만 수입은 줄어들고 일감은 끊어져 나갔다.상황이 악화되자 낭와는 90년대 중반 새로운 상품으로 돌파구를 찾아보고자 했다. 활로로 떠올린 것이 티탄을 재료로 해 만든 방탄조끼였다. 때마침 일본에서는 95년 경찰청장관이 괴한들의 총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청은 발칵 뒤집혔고 티탄을 소재로 신종 방탄도구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은 도야마현 경찰의 협조의뢰도 왔다.낭와는 이때부터 티탄으로 된 방패 개발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낭와는 다카오카 일대의 디자인센터와 시험장을 수없이 돌아다니며 협조와 의견을 구했다. 그리고 5년의 세월을 쏟아 마침내 투명방패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터사이클 등을 탈 때 쓰는 헬멧에 사용되는 폴리카보네이트가 가볍고 단단하다는 점에 주목, 이를 이용한 것이 적중했다.이 방패는 당초 2000년 7월 오키나와에서 열린 서방선진국 정상회담 때 첫선을 보일 예정이었으나 마무리가 늦어진 탓에 공식 데뷔를 이번 월드컵 대회 때로 미루게 됐다. 낭와에 경찰청장관 상을 줄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보인 일본 경찰은 8,600개의 방패를 구입해 놓고 있다. 이와 함께 이 방패가 훌리건 대책 등 경기장 경비에서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하청생산에 목을 걸고 도산 공포에 떨어야 했던 초미니기업 낭와는 방패에 쏟은 땀과 노력을 보상받은 데 이어 월드컵을 계기로 세계로 점프할 꿈에 부풀어 있다.양승득·한국경제신문 도쿄특파원 yangsd@hankyung. 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