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지어 주세요. 원하는 이름을 붙일 권리를 팝니다.’일본을 대표하는 극우보수 인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시하라 신타로 지사가 이끄는 도쿄도(都)가 최근 이색적인 상품 한 가지를 매물로 시장에 내놨다. 경기장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다. 대상 물건은 2001년 3월 완공된 도쿄스타디움. 도쿄 도심에서 전차로 3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전원도시 ‘조후’에 총공사비 307억엔을 들여 세운 초현대식 경기장이다.5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매머드 규모인 데다 프로축구 J리그의 ‘도쿄 베르디1969’와 ‘FC 도쿄’의 2팀이 본거지로 삼고 있어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스포츠 시설이다.고객이 스타디움에 원하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 다시 말해 명명권(命名權)이 매물로 나온 것은 2001년 11월. 연간 5억엔, 10년간의 계약 조건으로 고객을 찾고 있으며 오는 3월 말까지 기업 등 법인들을 대상으로 새 이름의 주인을 계속 물색할 예정이다.도쿄도가 일본 전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잘 지은 도쿄스타디움의 고유 이름을 새것으로 바꾸려는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해 ‘돈’ 때문이다. 긴축재정에 허덕이는 도의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기 위해 짜낸 아이디어다.도쿄도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여 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돈을 지불한 후 스타디움 앞에 원하는 이름을 붙이면 된다. 예컨대 도요타 자동차가 계약자로 선정될 경우 도쿄스타디움은 ‘도요타스타디움’으로 향후 10년간 간판을 바꿔 달게 되는 식이다. 이른바 네이밍(Naming) 비즈니스의 일종이다.일본 기업과 언론, 그리고 지자체들은 도쿄도의 네이밍 비즈니스를 공공부문의 새로운 수익원 창출 시도로 보고 그 결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도쿄도의 이번 시도가 일본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장사라며 성공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장사에 천부적 자질과 근성을 갖고 있는 일본인이라 하더라도 경기장 앞에 이름을 붙일 권리를 남에게 판다는 것은 지금까지 좀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쿄스타디움은 공공 스포츠 시설의 하나여서 일반 상품들과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는 점이 이들의 또 다른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공공부문 새수익 창출시도 ‘관심집중’오는 5월 한·일 공동주최 월드컵을 앞두고 일본 각지에 대규모 경기장이 경쟁적으로 새로 들어선 것도 도쿄스타디움의 네이밍 비즈니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 지자체들은 월드컵에 대비, 니가타, 삿포로, 사이타마현 등을 중심으로 저마다 막대한 경비를 들여 새 경기장을 건립해 놓았다. 따라서 이로 인한 재정부담 최소화가 공통의 고민으로 대두된 상태다.삿포로시의 경우 422억엔을 들인 돔 경기장의 수입 확대를 위해 갤러리, 대중음식점, 전망대 등 부대시설을 마련해 놓고 있다. 또 경기장 내부를 관람하는 관광상품까지 판매하는 등 초기 적자 구멍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월드컵 폐막 후 상당기간 동안은 경제적 후유증이 불가피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도쿄스타디움의 네이밍 비즈니스 결과는 도쿄도의 이해관계를 떠나 비슷한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다른 지자체들에게도 길잡이가 될 것으로 일본 언론은 보고 있다.민간 기업과 관청이 힘을 합친 ‘제3섹터’방식으로 도쿄스타디움을 건립한 도쿄도가 스타디움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은 한 해 약 8억엔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그라운드 사용료와 펜스 등 시설물을 이용한 광고료 수입이다.뮤직 콘서트와 오토바이 같은 신상품 전시회 개최, 결혼식장 대여 등을 통한 부대 수입도 짭짤해 도쿄도의 걱정거리 해결에 제법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고정 경비는 물론이고 초기 투자비 300억여엔을 조기 회수하는 데는 상당한 한계를 안고 있어 이름 붙일 권리 매각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도쿄도측의 설명이다.도쿄도는 현재 복수의 일본 기업들과 물밑 교섭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빠르면 오는 2003년부터 새 이름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도쿄스타디움 관계자들도 교섭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이들은 도쿄스타디움이 프로축구의 2개팀 본거지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최고의 매력으로 들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친다 하더라도 보통의 다른 구장에 비해 게임이 2배로 열리니 광고효과도 2배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업측 입장에서 보더라도 계약 내용에 따라 그라운드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축구 시합의 지정석을 고정 확보하게 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부대효과도 엄청나다고 다카하시 부장은 강조하고 있다.도쿄도가 일본 공공부문의 네이밍 비즈니스에서 첫번째 테이프를 끊은 셈이지만 이같은 장사는 구미의 경우 낯선 방식이 아니다. 우선 일본이 배출한 미국 메이저리그의 천재타자 이치로가 활약 중인 시애틀이 좋은 사례이다. 이치로의 소속팀 시애틀 마리너스가 본거지로 쓰고 있는 세이프코 필드 구장은 미국 보험회사 세이프코가 명명권을 갖고 있는 곳이다.세이프코사의 회사명을 따 구장 이름이 지어졌다는 얘기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전체 구장의 약 절반이 이처럼 네이밍 권리를 가진 기업들의 이름을 따 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미국에서는 명명권을 둘러싼 거래가 지난 80년대부터 급속히 활성화되고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를 잡았다.미국과 비교할 때 20년 이상 늦은 셈이지만 도쿄스타디움의 명명권 매각은 일본 스포츠계의 네이밍 비즈니스 성공 여부를 가늠할 잣대로 인식되고 있다. 고객 기업 확보에 성공하고 이를 통해 도쿄도의 재정 운용에 숨통이 트일 경우 뒤를 좇을 지자체나 공공단체가 크게 늘어날 것이 확실하다는 판단에서다.하지만 도쿄도의 네이밍 비즈니스가 성공의 휘파람을 불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적지 않다는 것이 주위의 지배적 관측이다.첫째가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얻는 일이다. 아무리 살림이 어렵다 해도 세금으로 지은 공공 시설물에 기업 이름을 붙이는 것에 머리를 끄덕할 주민들은 아직 많지 않다고 도쿄도는 털어놓고 있다.기업 이름을 붙이는 데 따른 리스크도 무시 못할 고려 대상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휴스턴 애스트로즈가 본거지로 삼고 있는 ‘엔론 필드’ 구장이 대표적 케이스다. 구장측은 휴스턴에 뿌리를 둔 에너지 대그룹 엔론과 손잡고 30년간 총 1억달러 계약에 명명권을 넘겨줬다. 그러나 2000년 계약을 체결한 엔론이 2년도 채 못 된 시점에서 파산하는 바람에 약속 이행은 물론 구장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손상을 입게 됐다.장기간 계약 상태에서 간판을 바꾸거나 무너질 염려가 없는 기업, 스포츠에 대한 이해가 높은 기업.이같은 회사를 찾는 것이야말로 도쿄도 뿐 아니라 일본의 네이밍 비즈니스 성패를 가늠할 것이라는 게 일본 언론의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