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통령선거의 막이 올랐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일찌감치 대통령후보를 확정짓고 6.13 지자체선거에서 치열한 정책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경제대통령’. 양당은 자신의 후보가 ‘진정한 경제대통령감’이라고 자랑하면서 상대후보를 깎아내리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경BUSINESS designtimesp=22409>는 경선을 통해 대통령후보로 최종 확정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의 경제정책과 이를 수립하고 수행해 나갈 경제브레인들을 입체적으로 취재했다. 그 첫번째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경제정책과 브레인들을 소개한다. 다음 호(341호)에는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편을 게재한다.“경기가 좋아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빈부격차 심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내린 현재의 한국경제 진단이다.정부의 경기부양과 내수호황으로 외양상 국가경제가 좋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병이 들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후보는 “다음 정권에는 이를 치유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직접 말은 안 해도 여기엔 ‘이후보 자신이 적임자’라는 확신이 강하게 깔려 있다. 측근들은 “이후보가 경제문제를 챙기는 일이 요즘 들어 부쩍 잦아졌다”고 전한다. 5월28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7층 대통령후보실에서 이후보를 만나 그의 경제관을 들어봤다. 인터뷰시간은 15분이었고, 질의응답은 서면을 통해 주로이뤄졌다.현 국내 경제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최근의 경제상황은 전반적으로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점도 많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투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투자는 곧 한국경제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빈부격차가 사상 최악이고, 서민경제는 파탄상태에 있습니다. 정부든 개인이든 빚이 너무 많습니다. 하이닉스 같은 부실기업과 부실금융기관들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매우 위험한 요인들이 있다고 봐야지요.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경제대통령이 돼야 합니다. 다음 정권이 가장 역점을 두고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국민의 과반수가 경제살리기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중요한 점은 과거 개발연대식의 경제대통령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자원배분을 통제하고 시장과 기업 위에 군림하면서 간섭하고 명령하는 식의 경제로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습니다.저는 새로운 성장의 엔진이 바로 사람과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교육과 연구개발에 정말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대통령은 반드시 교육대통령, 과학기술대통령도 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대통령이 돼야 합니다.이후보께서는 그동안 한국식 성장과 분배모델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십시오.성장과 분배는 경제발전 목표상 똑같이 중요한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성장 없는 분배는 허위이고, 분배 없는 성장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장잠재력의 확충, 좋은 일자리의 대량 창출, 복지제도의 지속가능성 확보가 삼위일체돼야 합니다.20년 이내에 1인당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한 성장잠재력을 확보하려면 기업과 개인에겐 경쟁국 수준의 자유를 줘 창의성을 발휘하고 기회를 찾도록 해야 합니다. 또 공정경쟁을 보장하되, 경쟁결과에 따라 도산 등 책임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이같은 시장규율의 강화와 함께 같은 차원에서 정부재정도 책임지고 규율을 확보해야 합니다. 한편 개방되는 한국경제는 경쟁국 수준의 기업환경 개선과 함께 선진국 수준의 기업경영의 투명성, 시장거래의 투명성, 정부운영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합니다.재벌정책과 관련해 집권하면 ‘출자총액 제한제’와 ‘기업집단 지정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히셨는데, 구체적인 방안을 말씀해주십시오.재벌의 분명한 문제에 대해선 더 엄격하게 규제할 것이고, 기업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할 부분에 대해선 규제를 풀 것입니다. 출자총액이나 기업집단지정과 같은 제도들은 단계적으로 풀어야 할 규제들입니다.그 대신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경쟁을 촉진하고,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부실기업의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엄격히 정리방식을 결정해야 합니다. 부실경영에 대해선 엄정하게 책임을 묻고, 상속·증여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선 김대중 정권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하려고 합니다.김대중 정권과 민주당은 겉으로는 백화점식 규제로 재벌을 규제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부실재벌들과 정경유착에 빠져 부실재벌기업들을 특혜금융으로 구제하느라 국민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겼습니다. 이 정권은 재벌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중소기업 및 벤처기업 육성책은 어떻게 펼쳐나갈 생각이십니까.벤처기업, 독립적인 부품·소재전문기업, 3D업종의 중소기업, 대기업의 하청기업, 영세상공인 등 다양한 특성에 맞게 ‘맞춤형 중소기업정책’을 펼치겠습니다.중소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는 기술혁신을 뒷받침해주고,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보기금의 보증을 중소기업에 한정토록 할 것입니다. 또한 하청 중소기업의 판로를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국내 개발부품에 대한 신뢰성인증제 도입 등 다양한 대안을 세우고 있습니다.특히 벤처기업에 대해선 정부지정제를 폐지하고 자본시장에서의 벤처선택제도로 전환하는 한편 벤처창업 관련 규제혁파에 힘쓰겠습니다.공기업의 민영화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이와 관련, 최근 민영화가 진행되고 있는 KT의 경우 재벌기업들의 물밑작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의 민영화가 바람직하다고 보시는지요.공기업을 민영화하지 못할 경우 정치인이나 공무원 출신보다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운영되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나 경영효율성 확보나 재정부담 경감, 새로운 시장개방과 국제적 산업개편 요구에의 대응을 위해서 민영화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어떤 형태나 절차를 선택할지는 민영화의 시기, 공기업이 속한 산업특성과 국내외 시장경쟁상황, 종업원이나 채권금융기관들과의 협의결과 등에 따라 사안별로 결정돼야 할 것입니다. 또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의 의견이 충분히 존중돼야 할 것입니다. KT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주5일 근무제와 관련, 정부와 노조가 적극 찬성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계에선 반대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에 대한 이후보의 견해를 밝혀주십시오.특히 중소기업에 경영부담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영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제도도입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각종 휴일의 조정, 시간외 임금할증률 조정 등 노사간에 상호양보하고 조정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합의와 조정이 전제가 된 후 도입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채권자 이익훼손 등 도덕적해이가 없는 상황에서 능력 있는 개별 기업단위로부터 도입 여부를 협의·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최근 중·장년층 실업자 증가가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후보께서는 ‘뉴 스타트’(새출발) 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하셨는데, 이를 소개해주십시오.‘뉴 스타트(New Start) 정책’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노령층·여성·장애우 등 모든 실업자의 50%를 적극적 고용정책으로 흡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근로능력자에겐 좋은 일자리를, 경쟁실패자에겐 재훈련·재도전의 기회를 준다는 야심찬 계획이고, 방법은 관치금융청산·국토개조·미래산업육성·서비스산업 진흥·중소기업의 일자리 더 좋게 만들기 등을 포괄합니다. 계층별 대책도 세우고 있습니다.현재 실업자의 능력계발을 지원하는 고용보험기금에서는 중·장년층이나 영세사업자같이 ‘단기훈련, 단기취업’이 필요한 실업자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을 단기간의 재교육으로, 기업이 매력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다시 무장시키는 게 불가능합니다.따라서 중·장년층이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지속적으로 활용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 예로 창업을 지원해야 합니다. 기업들이 자기 회사에서 실직되는 근로자에게 사내기금을 적립하고, 그 자금은 남아 있는 근로자와 주주가 부담하며, 정부는 세제상 지원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고용보험기금에서 일정 부분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과거보다는 낮은 임금으로라도 다시 취직할 수 있도록 고용정보은행설치 등 노동행정이 ‘취업지원 위주의 조장행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대기업의 무역업무 경력자를 중소수출기업이나 벤처기업으로 연계하는 방안 등이 그것입니다.이들이 창업이나 재취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재훈련 기회를 갖도록 피교육자가 교육기관을 선택하는 직업훈련 ‘바우처’(Voucher)제도를 도입하는 것입니다.국토개조사업이나 행정서비스의 민영화사업, 재래시장 현대화사업, 물류산업의 국제표준화사업, 다기능적 관광레저산업 등 새롭게 일자리가 창출되는 분야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등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4대연금과 건강보험에 대해선 집권과 함께 근본적인 수술에 착수하겠다고 했는데, 복안은 서 있는지요.첫째, 이들 사회보험기금의 재정건전화를 위해 ‘적정부담적정급여체제’를 확립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투명성 확보가 중요합니다. 둘째, 민간보험이나 연금을 개발해서 국가보험과 보완·경쟁기능을 갖도록 만들겠습니다. 셋째, 복지행정서비스의 전달체계를 좀더 효율적이고 공평하게 되도록, 또 책임성·전문성이 강화되도록 조직개편을 포함한 근본대책을 마련하겠습니다. 이러한 사회보험의 체제개편은 장기신뢰성 확보가 중요하므로 초당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입니다.인재양성에 대해선 남다른 철학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재에 대한 철학과 인재양성프로그램을 얘기해주십시오.DJ정부 4년간 심하게 훼손된 성장잠재력을 보충하고 밝고 건강한 선진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반듯하고 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이 필수적입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공동체의 기본질서를 지킬 줄 알며, 무엇이 정당하고 정의로운지를 판단하고, 사회적 연대와 결속의 증진을 위한 사회 기초소양을 갖춰야 합니다.동시에 세계화시대·정보화시대·자율과 분권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전문지식을 겸비해야 합니다. 이런 새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선 세계 수준으로 전문적이고 다양한 실용교육·평생교육이 필요하고, 이러한 교육기회는 저렴한 비용으로 공평하게, 또 체계적으로 부여돼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