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윤·김원길 의원 등 당내 경제통 측면 지원 활발… 비선라인, 축소 움직임

지난 5월31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장재식 의원과 정세균 의원을 경제특보로 임명하는 등 18개 분야 20명의 특보명단을 발표했다.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노후보가 본격적으로 당의 공식적인 정책지원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풍’을 불러일으켰던 노후보는 막상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뒤 바람을 이어가지 못했다.일부에서는 ‘준비 안 된 후보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뒤 이에 걸맞은 경제공약이 곧바로 나오지 않자 이런 의문은 증폭됐다. 노무현 캠프 쪽에서는 “노후보를 지원하는 조직이 아직까지 완전히 정비되지 않은 데다 지방선거까지 겹치다 보니 상황이 이렇게 됐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노무현 캠프의 김만수 공보팀장은 이와 관련, “특보단에 이어 지방선거가 끝나는 6월 중순께 대선기획단이 구성될 예정”이라며 “기획단이 구성돼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 구체적인 경제관련 공약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한화갑 대표체제를 정비한 민주당은 당 안팎의 불안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민주당은 집권경험이 짧은 탓에 한나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통 관료층이 얇은 편이지만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당내 경제통으로는 김원길·박병윤·장재식·강운태 의원 등이 꼽힌다. 민주당은 5월 말 특보단이 구성되기 전부터 박병윤 정책위원회 의장을 중심으로 산하 전략연구소 등이 노후보에 대한 정책지원을 해 오고 있었다.민주당 내 한 인사는 97년 대선에서 여당으로 변신할 때 축적한 경험이 있고 팀도 살아 있어 당의 지원체계는 곧 정비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원길 사무총장은 자신이 사무총장을 맡지 않았다면 후보의 경제정책 개발을 떠맡았을 것이라며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전문경영인 출신인 정세균 의원과 함께 경제특보를 맡은 장재식 의원은 서울지방 국세청장, 주택은행장, 산업자원부 장관 등을 역임하는 등 민주당 내에서는 정통관료파 경제통으로 꼽힌다. 정통관료와 경영전문가로 경제특보를 구성한 만큼 당 안팎에서 이들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상황이다.당 내에서 이들과 함께 경제통으로 꼽히고 있는 강운태 의원측은 당 대선후보로서 요청이 있으면 돕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이번 특보단 구성에선 빠졌다. 그는 지난 5월6일 노후보와 국회 재경위·정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의 상견례 자리에서 공기업민영화신중론을 편 노후보에게 발전·송전·배전 등 분야에 따라 소유방식이 다르다고 설명해 공감을 얻은 일이 있다.노후보의 경제인맥으로 당 밖에서 거명되고 있는 인물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 김태동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등이 있다.김종인 전 수석은 경제개혁에 적극적인 인물로 노후보가 국가정책의 모델이라는 관점에서 호감을 보이고 있는 독일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노후보는 경쟁과 효율성을 살리면서도 사회연대의 정신을 강조하는 독일모델에 호감이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전수석측은 그러나 노후보를 직접 돕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재계와의 관계 정립이 과제개혁성향의 학자 출신인 전 전한은총재는 노무현 캠프의 모태인 자치경영연구원을 통해 노후보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후보를 돕고 있는 경제 가정교사로는 유종근 전북지사의 동생인 유종일씨(44)가 있다. 유씨는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있으면서 고려대 장하성 교수와 더불어 DJ정부 초기의 경제정책 방향을 입안하는 등 현 정부의 핵심브레인 역할을 했다.유씨는 경영투명성 제고와 산업자본-금융자본 분리 등 현 정부의 재벌개혁 ‘5+3’원칙을 지지하고 있는 인물이다.이 밖에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노후보에게 경제관련 조언을 하는 외부 전문가 그룹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DI 등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 중 10여 명 정도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대선후보경선 과정에서 대기업집단 등과 관련한 자문에는 민주당의 전문위원들이 응했다.그러나 노후보측은 비공식 라인에 의한 정책조언은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김만수 공보팀장은 “대통령후보의 경제관이 몇몇 인사에 의해 좌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노후보의 지론”이라며 “가능하면 공식적인 조직에서 모든 정책이 도출되도록 하려 한다”고 말했다.재계와 앞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는 점도 노후보에게는 큰 과제다. 후보경선을 할 때와 달리 요즘 들어 노후보가 “내 사고는 지극히 시장경제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재벌의 적대세력이 아니라는 의지를 밝히는 제스처로 볼 수 있다.앞으로 본선이 치러질 경우 노후보의 출신학교인 부산상고 동창들이 재계를 안심시키는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전망된다.돋보기 재계인맥재계·금융계에 부산상고 출신 두루 포진부산상고는 그동안 ‘야구 잘하는 학교’ 정도로 일반인에게 인식돼 왔지만 노무현 후보가 졸업한 학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107년 역사의 부산상고가 배출한 인물들이 현재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정계에서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43회)을 비롯해 이기택 전 민국당 공동대표(43회)가 부산상고 출신이다. 현직으로는 권태망 한나라당 의원(59회)도 있다.부산상고 출신들은 금융계에서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권경수 전 서울은행 상무(33회), 최연종 전 한국은행 부총재(43회), 안시환 전 삼성생명 사장(45회) 등이 원로급 부산상고 출신 경제계 인사다.금융계에서는 노대표의 두 해 선배인 51회 졸업생들이 특히 돋보인다. 김지완 부국증권 대표이사(사진 위 왼쪽), 옥치장 증권거래소 감사(사진 위 오른쪽), 이성태 한국은행 부총재보, 정형배 한국산업은행 조사부장 등이 부산상고 51회를 대표하는 금융계 인사들이다.재계에서는 오너보다 전문경영인(CEO)이 많은 편이다. 부산상고를 대표하는 재계인사로는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52회·사진 아래 왼쪽)을 꼽을 수 있다. 이본부장은 노고문의 한 해 선배인데 이본부장 외에도 52회 졸업생 중에서는 CEO로 성공한 인물이 적지 않다.송장식 동원수산 대표이사와 양천구 남성해운항공 대표이사가 이본부장과 동기동창이다. 김찬두 두원 회장(39회)은 재계와 정계에 두루 얼굴을 알린 인물이다. 김회장은 14대 국회에서 신한국당 전국구의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이와 함께 박안식 대창단조 회장(45회)도 빼놓을 수 없는 부산상고 재계인맥이다. 황두열 SK(주) 부회장(사진 아래 오른쪽)과 정종순 KCC 부회장은 부산상고 49회 동기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며 주목받고 있는 인사들이다.부산상고 동창회는 지난 4월 43회 졸업생인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을 11대 총동창회장으로 선출했다. 10대 동창회장을 맡았던 박안식 회장이 45회 졸업생이고, 지금까지 기수별로 동창회장을 선출했던 관행을 감안하면 기수가 역행한 것은 동문회 사상 처음 있는 이변이었다.부산상고 동문들의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