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융불안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이번 금융불안의 단초인 미국 기업들의 분식회계 문제는 미국 내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반면, 다른 국가에는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단계로 진전되고 있다.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는 국가는 오는 9월 말 반기결산을 앞두고 ‘위기설’이 나돌고 있는 일본이다. 현재 일본 경제는 경기회복의 관건인 소비가 살아나지 않고 있는데다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올 들어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수출마저 엔화 강세에 따라 둔화조짐을 보이면서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물론 시장의 예비적 기능을 감안할 때 위기설은 그야말로 ‘설’에 그치겠지만 만약 일본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부족사태에 몰리면 아시아 지역에 투자한 자금을 중심으로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일본 금융기관들은 아시아 투자자금을 상당부문 회수하고 있는 상태다. 미국 금융불안에 따른 또 다른 형태의 전염효과(Secondary Tequila Effect)인 셈이다.이에 따라 최근 고이즈미 일본총리는 경제난과 위기설을 타개하기 위해 약 1조엔 정도의 감세를 추진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물론 감세안에 따라 늘어난 일본 국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일본 정부의 의도대로 민간소비로 연결될 경우 경제난과 위기설을 타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현재 민간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것은 일본 국민들이 소득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본경제의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세안이 추진될 경우 재정수입은 줄어들어 가뜩이나 임계 수준에 와 있는 재정적자가 더욱 확대될 뿐만 아니라 감세로 늘어난 소득이 소비되지 않고 저축되는 현상(Crowding In Effect)이 발생될 경우 일본 경제는 더욱 위험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음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미 금융불안의 또 다른 피해 국가는 금융위기에 시달리는 개도국들이다. 이 중 중남미 국가들이 대표적이다. 현재 중남미 금융불안은 유동성 위기에서 시스템 위기를 거쳐 본격적인 실물경제 위축단계로 악화되고 있다. 올 상반기 중 아르헨티나 경제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5% 이상 퇴보했다.최근 들어서는 ‘중남미의 스위스’로 불리는 우루과이도 예금인출사태를 막기 위해 금융기관을 폐쇄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에 이어서 두 번째다. 브라질도 기대했던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이 무산되면서 레알화 가치가 폭락하고 있다.반면 미국의 금융불안에 따라 반사적인 이익을 보는 국가는 유로랜드와 중국이다. 유로랜드의 경우 미국발 금융불안에 따라 여러 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나 유로랜드의 상징인 유로화 가치는 ‘1유로=1달러’의 등가시대에 접어들어 외국인 자금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동시에 중국은 94년부터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운용하고 있는 고정환율제도가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인접국들이 미 달러화 약세로 자국통화가 강세를 보임에 따라 떨어지는 수출경쟁력을 고스란히 중국이 누리고 있는 셈이다. 그중에서 중국과의 수출경합 관계가 가장 높은 한국이 가장 큰 피해국이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지금까지 미 금융불안에 따른 평가는 대체로 낙관적이다. 풍부한 외화유동성과 건전한 거시경제 여건, 월드컵 이후 개선된 해외시각 등이 낙관론의 근거다.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미 금융불안뿐만 아니라 일본 금융기관들의 자금회수 가능성, 중국과의 높은 경쟁관계를 감안하면 우리는 어느 것도 자유로울 수 없는 상태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한국 경제의 차별성과는 달리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연일 이어지면서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한 것은 각종 글로벌 펀드들이 디레버리지(증거금 대비 총투자금액 축소) 과정에서 수익이 난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특히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각종 글로벌 펀드들이 그동안 주가하락으로 투자자들과 금융기관으로부터 손실된 투자원금을 보전해 놓으라는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하고 있는 점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 과거 러시아 채무불이행(모라토리움) 당시에도 각종 펀드들이 마진콜을 당하자 이를 보전하는 과정에서 국제신용경색(Credit Crunch)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다.이 같은 사실은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미국발 금융불안과 같은 대외환경 변화에 완충능력을 키우는 것이 경제의 안정성과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여러 가지 대책을 생각해볼 수 있으나 경상거래 면에서 외수와 내수간의 균형을 유지하고 수출시장과 품목을 다변화하는 노력과 함께 품질, 디자인, 기술과 같은 가격 이외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가격경쟁력에 의존하는 수출구조는 그 자체가 덤핑(Dumping)과 마찰 소지가 높기 때문에 고부가·고기술·고품질 구조로 전환돼야 한다.자본거래 면에서는 외환거래체계를 좀더 강화해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고 기관투자가들을 육성해 외국인들에 의해 전적으로 휘둘리는 시장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동시에 인접국과는 통화스와프와 같은 정책풀(Pool)을 구성해 미 금융불안과 같은 대외환경 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