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현금이 넘쳐나면서 주식시장에서 기업인수합병(M&A) 테마가 꿈틀거리고 있다.사모M&A펀드가 2001년 허용된데다 시장침체로 최근 주가가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국내에도 M&A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기반은 마련됐다고 할 수 있다. 기업사냥을 전문으로 하는 사모M&A펀드의 경우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수익률이 괄목할 만한 수준이다. 지난해 6월 설립돼 케이아이씨 M&A에 성공한 ‘베스트M&A 1호 펀드’의 경우 20%의 수익률을 기록했다.한국증시에서 대표적인 적대적 M&A 성공으로 꼽히는 사례들은 지난 94년 한솔그룹이 한솔종금(당시 동해투금)을 인수한 것과 96년 사보이호텔이 신성무역을 인수한 것을 들 수 있다. 한솔은 당시 한국증시 사상 처음으로 공개매수제도를 활용, 동해투금 인수에 성공했다. 비록 외환위기 직후 한솔종금이 퇴출되기는 했지만 삼성에서 분가한 한솔이 신생그룹으로서 외연을 넓혀간다는 사실을 내외에 천명한 사건이 한솔종금이었다. 이후 한솔은 광림전자(한솔텔레콤으로 개명), 한국마벨(한솔전자), 영우화학(한솔케미언스), 영우통상(한솔CSN) 등을 잇달아 인수, 괴력을 과시했다. 신성무역은 공개매수 발표로 주가가 급등한 대표적 케이스였다. 사보이호텔이 96년 여름 공개매수를 선언하면서 2만원대였던 신성무역의 주가는 7만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반면 한화종금을 두고 벌어졌던 한화그룹과 박의송 우풍상호신용금고 대표와의 지분경쟁과 미도파 인수경쟁은 양측 모두 상처만 입고 실패한 불명예 사례로 꼽힌다.최근에는 새롬기술의 경영권 분쟁이 촉발되면서 M&A가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경영권 양도계약을 체결한 오피콤의 주가가 6일 동안 50% 가까이 올랐고, 현대정보기술과 현대멀티캡도 모기업인 하이닉스반도체가 자회사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M&A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이 밖에 드림원, 인투스, 엔터원 등이 경영권 양도 또는 경영권 분쟁으로 M&A 테마에 포함된 코스닥 기업들이다.실적 자산가치 우량주에는 관심 둬야지난 2000년 ‘닷컴기업 1호’로 꼽히던 골드뱅크(현재 코리아텐더) 인수 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적대적 M&A 케이스인 새롬기술의 예를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기업들이 M&A대상에 오를지 짐작할 수 있다. 새롬기술은 새롬벤처투자 홍기태 사장이 최근 이 회사 주식 427만1,104주(지분율 11.79%)를 장내매집해 최대주주로 떠오르면서 경영권분쟁에 휩싸였다. 홍사장은 주식 취득 사유를 ‘경영참여’라고 밝혀 경영권 확보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지금까지 최대주주는 360만4,432주(지분율 9.55%)를 가진 오상수 현 사장이었다. 홍사장측은 지난 8월10일 이사회 소집신청서를 회사에 제출하고 오사장 등 주요이사를 해임한 후 신규이사를 선임하자는 안건을 내세웠다. 당연히 현 경영진이 거부, 오는 10월 초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종결론이 날 전망이다. 홍사장측은 새롬기술의 현 경영진이 수익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방만한 경영을 해 회사의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경영정상화를 위해 경영진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홍사장측이 ‘경영진의 무능’을 M&A의 이유로 들고 있지만 사실은 새롬기술이 보유한 현금에 더 관심이 많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새롬기술은 지난 99년 말과 2000년 초에 유상증자 등을 통해 확보한 3,700여억원의 자금 중 현재 1,800억원대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새롬기술은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기 때문에 현 주가(6,600원)를 기준으로 300억원 정도만 투자하면 1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 새롬기술은 홍사장측의 M&A 시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소위 ‘쥐약을 먹는’(포이즌 필)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즉 인터넷 전화사업 이외의 부문을 분사시켜 인터넷 전문회사로 만든 뒤 미국 자회사인 다이얼패드와 합병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1,800억원을 웃도는 새롬기술의 현금성 자산이 부실회사인 다이얼패드로 옮겨가는 결과를 낳게 되고, 결국 M&A를 추진할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경영권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그러나 시장 일각에서는 새롬기술의 M&A는 이미 노출된 재료인 만큼 추격매수는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롬기술의 펀더멘털로 볼 때 이미 주가가 상당히 고평가돼 있다는 설명이다. 새롬기술은 올해 상반기에 매출액 106억원에 당기순손실 84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또 적대적 M&A는 한국에서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료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보증권 임송학 투자전략팀장은 “국내 정서상 ‘기업을 탈취한다’는 인식이 강한 적대적 M&A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계속 지분변동을 신고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적대적 M&A는 활성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M&A 전문 부티크인 ACPC의 이황상 대표는 “대주주들이 공개된 지분율의 두 배 가량을 어딘가에 숨겨 놓았다는 건 증시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꼬집었다.증권업종에서는 적대적 M&A보다 구조조정에 필요한 합병으로 M&A 테마가 형성되고 있다. 메리츠증권 황건호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안에 M&A를 통해 대형사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앞서 리젠트와 일은증권이 합쳐서 출범한 브릿지증권의 에버링턴 사장도 “추가 합병을 통해 덩치를 키운 다음 제3자에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8월21일 주식시장에서는 증권주들이 대거 상한가에 진입하며 반등장을 이끌었다. 대우증권이 M&A설에 휩싸인데다 이미 굿모닝과 신한증권의 합병이 성공작으로 평가되면서 시장에서 증권사들의 M&A설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견 D증권과 또 다른 D증권도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어 앞으로 증권업계는 합병바람에 휩싸일 전망이다.이런 분위기에서 과연 M&A재료가 최근 침체분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주식시장에 한줄기 빛이 될 것인가. 시장 관계자들은 적대적 M&A가 활성화되지 못한 현재 상황에서 M&A 재료가 주가를 크게 끌어올리지는 못하겠지만 대주주지분율이 낮고 실적과 자산가치가 우량한 기업들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서울증권 박문서 애널리스트는 “M&A 가능성이 제기된 종목의 주가는 종합주가지수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며 “그러나 부실기업에 대한 M&A는 장기적인 주가상승보다 단기적인 시세차익을 노리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애널리스트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지분율이 30% 이하이고, 부채비율이 200%이하,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각각 10과 1보다 작은 기업이 M&A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