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시타 중국 본부의 장충원 부사장이 최근 베이징에서 기자들을 만났다. ‘마쓰시타의 21세기 중국 전략’이 주제였다.“중국에서 밀리는 기업은 세계시장에서도 설자리를 잃게 될 것입니다. 마쓰시타는 오는 2005년까지 해외 생산공장의 3분의 1을 중국으로 옮길 것입니다. 또 중국 내수시장 판매액을 75억7,000만달러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이미 구체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있습니다.”장부사장의 말대로 이 회사는 최근 들어 공격적인 중국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쑤저우에 반도체 관련 공장을, 7월에는 이웃 우시에 초경량 건전지 생산공장을 새로 설립키로 했다. 특히 중국 IT 가전업체인 TCL과 손잡고 중국 내수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마쓰시타의 ‘21세기 중국전략’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마쓰시타의 사례는 일본 기업의 대중국전략이 바뀌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 사업에 대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그들은 미국, 유럽, 한국 등의 선진 기업들이 중국으로 달려갈 때 전통적인 생산기지 동남아를 고수해 왔다. 지난 60년대부터 그래 왔다. 게다가 10년 이상 계속된 불황의 여파로 해외 신규 투자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중국이 강력한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일본 기업 역시 중국을 다시 보고 있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좀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투자의 질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단순 가공시장이었던 중국이 세계 최대 소비 및 기술시장으로 일본 기업에 다가선 것이다.가장 큰 변화는 투자급증이다. 일본 대장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의 대중국 직접 투자액은 1,802억엔(약 15억2,400만달러)에 달했다. 전년 동기 대비 64%나 증가한 수치다.지난해 투자액 전년대비 64% 증가도시바의 경우 약 6,000만달러를 투자해 항저우에 아예 ‘도시바 IT단지’를 건설했다.캐논은 오는 10월 쑤저우에 9,000만달러를 투자, 프린터 생산공장을 건설키로 했다. 이 회사가 갖고 있는 프린터 공장으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일본 기업들이 상하이 주변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둘째, 중국 기업과의 연합이 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산요와 중국 최대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제휴다. 이 제휴로 산요는 중국 내에서 하이얼의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하이얼 유통점이 산요 제품을 취급하게 되는 것이다. 산요는 중국시장 침투의 가장 난제였던 유통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반대로 산요는 하이얼 제품의 일본시장 유통을 돕게 된다.일본 혼다와 하이난다오의 오토바이메이커인 신다저우의 제휴도 주목할 만하다. 혼다는 그동안 총칭에서 오토바이를 생산해 약 9,000위안(약 130만원) 선에 판매해 왔다. 그러나 저가 유사제품이 쏟아졌다. 비슷한 품질의 중국 가전업체 제품이 5,000위안(약 72만원)에 팔리기도 했다. 경쟁이 될 리 없다.혼다는 신다저우와 제휴, 신다저우 공장에서 ‘혼다’ 브랜드 제품을 출시했다. 가격은 4,498위안(약 65만원). 일본 혼다의 브랜드파워와 신다저우의 제조능력을 결합한 것이다. 혼다는 이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신다저우가 맡는다. 윈윈(Win-Win)전략이다.셋째, 첨단기술 투자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업체들은 그동안 본국에서 부품을 들여와 중국에서 가공, 이를 세계시장에 수출하는 형태로 중국 사업을 해 왔다. 그들에게 중국은 가공공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국 내수시장이 급성장하고, 중국 기업의 기술흡수력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첨단산업도 과감하게 이전하고 있다.최근 일본 NEC는 중국 최대 네트워크 IT업체인 화웨이와 제휴, 중국 IT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NEC는 상하이에 인터넷 통신 및 제3세대 이동통신시스템을 연구, 개발하게 될 합작사 상하이위멍을 설립했다. NEC의 글로벌 기술과 화웨이의 중국 기술이 결합하게 된 것이다. ‘중국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세계시장으로 나간다’는 게 이 회사의 모토다.일본 기업들은 또 중국에 연구개발(R&D)센터를 잇달아 설립하고 있다. 일본 기업은 그동안 ‘R&D는 일본에서, 생산은 중국에서’라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이제 R&D는 제조센터에 근접해야 한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마쓰시타, 올림푸스, 소니, NEC, 캐논 등 대부분의 주요 일본 기업들이 이미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에 R&D센터를 갖고 있거나 설립을 추진 중이다.일본 기업들이 중국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중국 부상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세계시장을 침투하고 있는 중국에 밀릴 경우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결국 중국과 함께 성장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호랑이 등에 타기로 한 것이다. 신흥 중국시장을 뚫지 않고는 글로벌 경쟁에 뒤질 것이라는 생각도 중국행을 재촉하는 요소다.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이 ‘D램 반도체의 교훈’을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일본은 기술보호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기술자를 파견하거나 또는 기술인력을 수입, 반도체 기술을 습득했다. 결국은 일본을 따돌렸다. 이를 통해 일본 기업들은 ‘기술보호가 능사가 아니다’라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일본 기업이 택한 전략은 ‘중국과의 공생’이다. 넘겨야 할 기술은 과감히 주되 중국의 제조업 능력을 기업경영에 활용한다는 계산이다. 일본의 기술과 중국의 제조능력의 결합이다. 또 일본의 브랜드파워와 중국의 제조능력을 활용해 값싼 일본제품을 세계시장에 뿌리겠다는 뜻도 엿보인다.일본 기업의 공격적인 중국 비즈니스는 우리나라 기업에 커다란 부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값싼 일제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최근 세미나 참석차 베이징을 방문한 김영래 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충북대 교수)은 “일본 기업은 중국과 함께 성장하는 법을 터득했다”며 “중국에서 생산된 저가 일본 브랜드가 한국시장으로 쏟아진다면 우리나라 제품은 설땅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따라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본의 중국전략을 면밀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