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선택따라 5년 생존좌우" 대선캠프 인맥 줄대기 '한창'

대통령선거가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재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재계의 한 중역은 “순간의 선택에 따라 향후 5년, 때에 따라서는 생존여부까지 결정짓기에 솔직히 넋 놓고 바라만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따라서 대선출마자들의 성향 및 경제정책 분석은 기본이고 유력한 후보자를 가능한 빨리 읽어내 인맥을 두텁게 쌓기 위한 물밑정보전이 점입가경이다.‘기업정보맨’ 국회 및 인근 정당으로 몰려정보력이 막강한 그룹으로 단연 삼성이 꼽힌다. 파워의 원천은 정보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중앙일보 designtimesp=22935>와, 메트릭스처럼 잘 짜여진 ‘지인제도’시스템에 있다. 이중 지인제도시스템은 10만명이 훨씬 넘는 직원들의 다양한 인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이를 통하면 웬만한 정치권 실세라도 한다리만 건너면 인맥이 닿을 정도라는 게 전직 삼성 인사담당자의 귀띔. 지인제도와 함께 정보의 산실은 대외협력부서, 일명 ‘대협단’ 소속 직원들이다. 원래 이들은 평상시 각 계열사들의 대정부업무를 맡고 있지만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그룹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예정보망으로 돌변한다.지난 94년 200여명에 달했던 이들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빅3의 연합저지작전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자동차사업을 따내는 첨병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하지만 오랫동안 조사업무를 맡아온 삼성 관계자는 “IMF 이후 ‘돈만 쓰는 부서’로 낙인 찍힌 기획조사 및 대협단 소속의 직원들은 대거 타 부서로 전출시키는 등 규모를 축소해 지금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애써 평가절하했다. 실제 한때 200여명에 달했던 대협단 소속 직원들은 100여명으로 절반 가량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삼성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은 정보력이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 시사잡지의 정치부 중견기자는 “정치정보의 경우 현대는 인력 등에서 삼성에 비교가 안될 정도”라며 “그러나 SK는 최근 SK텔레콤을 중심으로 정보망을 강화시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하지만 그래도 정보조사인원은 각 그룹별로 10~20명 선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이들 그룹은 홍보전문대행사들에 정보조사를 일임하기도 한다고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SKT의 경우 손길승 회장 라인, 최태원 회장 라인, 표문수 사장 라인 등 3개 정보라인이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기업 정보맨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서울 정치 1번지 여의도다. 특히 국회 및 인근 각 정당, 주변 식당, 카페 등은 정보사냥에 나선 국가기관, 기업, 홍보대행 소속 정보맨들로 북적인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대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의원회관의 방문객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정보맨들은 정무위 소속 보좌관 및 비서관들을 주요 정보수집 대상으로 삼고 있다. 때문에 몇몇 그룹은 아예 국회 상주반을 가동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무위를 제외한 몇몇 상임위 소속 의원의 보좌관들 사이에서는 국정감사 때를 제외하곤 지금껏 기업사람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푸념들이 나오고 있다.일부 대기업 ,정몽준 의원에 곱지 않은 시선재계는 민주당 및 한나라당보다도 무소속 정몽준 의원 진영에 모든 안테나를 높이고 있다. 정의원은 9월17일 공식 출마를 선언했지만 재계는 이미 그 전부터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각 그룹별로 대응전략을 세워놓은 것으로 전해진다.일단 정경분리선언 등 중립을 선언한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와 아직 공식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적대적인 위치에 서지 않을 현대그룹, 현대산업개발, 한라그룹, 성우그룹, KCC그룹 등 범현대 계열사를 제외한 대기업들은 대부분 정의원에 대해 못마땅해하는 눈치다.이도 그럴 것이 단순하게만 볼 때 정의원이 당선될 경우 현대계열 외에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오랫동안 정보조사업무를 수행해온 삼성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현대가 우리의 막강한 경쟁상대라는 점에서 정의원이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여러 삼성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의원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이를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한다.LG 및 SK는 정의원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도 애써 말을 아끼고 있다. 때문에 재계 일각에서는 ‘이들이 상대적으로 정보력이 취약해 무신경해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정도다.하지만 재계는 최근 LG칼텍스가스가 공개적으로 한나라당에 정치후원금을 낸 배경에 대해 상당히 궁금해 하고 있다. 이회사는 정의원이 대선출마을 선언하기 일주일 정도 앞선 9월11일 ‘한나라당 중앙당후원회에 현금 2억원을 후원금으로 지급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회사측은 “기부금이 자본금의 10%를 넘어서면 증권거래법상 공시를 하게 돼 있는 데 따른 것이다”고 설명했다.문제는 이번 정치후원금 제공이 이 회사의 단독 결정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으로 안다”고 말해 재계 정보맨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이에 따라 재계는 ‘LG가 의도적으로 LG칼텍스가스를 택해 기부대상 및 금액을 드러나게 한 것’ 아니면 ‘다른 계열사들도 자본금 10% 이내 규정을 초과하게 되자 불가피하게 LG칼텍스가스를 선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후자의 경우라면 LG가 다른 계열사를 통해 최소한 한나라당에 제공한 금액 이상을 민주당에 이미 지원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나 전자의 경우라면 극과 극의 해석이 나온다. 예컨대 LG가 극단적으로 한나라당에 줄서기로 작정한 것이거나 재계에 ‘정치권에 대한 후원금 규모를 이 정도로 정하자’는 단순 제스처일 수 있다는 것이다.어쨌든 재계에서는 경영의 투명화로 올해 대선자금 지원규모는 지난 92, 97년 대선 때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