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기업에서 우량기업으로, 그리고 앞으로는 위대한 기업으로….’산더미 같은 적자에 짓눌려 퇴출위기 직전까지 몰렸다가 우량회사로 탈바꿈한 일본 닛산자동차가 언론으로부터 또 한 번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지난 10월24일 아침, 잉크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조간신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자동차메이커들의 약진을 이날의 핵심 경제뉴스로 올리며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도요타 중간결산에서 사상 최고이익 기록, 닛산자동차 V자 회복, 전세계적 불황 태풍에도 자동차는 호조.’유력신문들의 시선과 관심은 전날인 23일, 9월 중간결산 실적을 공개한 두 회사의 발표내용에 집중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은행 불량채권 소식으로 지면을 모두 채우거나 국가 경제가 당장이라도 고꾸라지고 말 것 같은 뉴스만 다뤄 왔던 일본 신문들에 도요타와 닛산의 선전은 가뭄 속 단비와도 같은 낭보였기 때문이었다.지난 3월 말 결산(2001회계연도)에서 일본 기업들 중 사상 최초로 ‘꿈의 경상이익 1조엔’을 달성하며 신화를 쏘아올렸던 도요타는 중간결산에서 7,600억엔의 이익을 신고하며 더 큰 야망을 꿈꾸고 있음을 알렸다.‘승승장구 도요타’ ‘일본 최강의 기업’ ‘일본 재계의 마지막 자존심’이라는 찬사가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성적이었다.하지만 이날 언론의 진짜 관심은 수치상으로 도요타에 비해 훨씬 뒤진 닛산자동차에 쏠렸다. 경상이익과 매출규모 등에서 닛산의 성적은 도요타의 절반 수준에 그쳤지만 결산수치보다 그 뒤에 가려진 에너지와 변신 비결이 언론의 핫이슈로 부각됐다.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닛산의 9월 중간결산은 그동안 닛산의 부활에 부정적 시각을 가졌거나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던 비판론자들의 트집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닛산은 영업이익에서 전년 동기 대비 84%가 늘어난 3,480억엔의 실적을 올린 한편 매출은 10.2%가 증가한 3조2,800억엔에 달했다고 공개했다.올 상반기에 새로 투입한 신차들의 판매호조에 힘입어 수출이 138만6,000대로 전년 동기보다 7.6%가 늘어난데다 일본 내수시장에서도 쾌조를 보이며 시장점유율이 높아진 덕이라는 설명이었다.이에 따라 매출에서 차지하는 영업이익의 비율(영업이익률)도 10.6%로 껑충 뛰며 2003년 3월 결산(2002회계연도)에서 도요타, 혼다 등 선두 라이벌업체를 제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닛산은 판매호조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원가압축과 유이자부채 감축을 통한 금융비용 절감이 영업이익의 대폭적인 증가에 결정적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사실 닛산자동차가 흑자 결산 실적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3월에도 그랬고, 2001년 3월에도 흑자를 신고했다. 불가능할 것처럼 여겨졌던 탈적자의 꿈을 불과 2년 만에 이뤄내며 대규모 흑자가 났다고 공개한 2001년 3월에는 이번 중간결산 때보다 더 큰 각광을 받았다.언론은 닛산이 부활에 성공했다며 죽음 일보 직전에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환자가 건강한 몸으로 벌떡 일어나 나왔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닛산 부활의 운전대를 잡은 카를로스 곤 사장의 개인 캐릭터와 경영수완, 회사 재건 노하우에도 조명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그러나 일본 재계의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언론에서는 곤 사장을 ‘경영의 천재’ ‘죽은 환자를 살려낸 명의’로 치켜세우기 바빴지만 재계는 그를 노골적으로 이단자 취급했다. “사람을 자르고 협력업체를 윽박질러서 이익을 내는 것은 재건이 아니다. 자산을 내다 팔고 직원들을 쥐어짜면서 장부 수치를 바꾸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이름 석자만 대면 일본 국민들 누구나 알 만한 재계 원로는 대놓고 이런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종업원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협력업체와의 공생을 철칙으로 삼아온 일본적 경영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 곤 사장의 닛산 수술방식이었다는 것이다. 닛산을 비판하는 재계 인사와 라이벌 기업, 그리고 평론가들은 일본사회의 분위기와 특성을 무시한 채 무자비하게 칼을 대고 보는 곤 사장의 닛산 처방이 얼마나 더 약발을 낼 수 있겠느냐고 회의적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장부가 검은 글씨로 바뀌었다고 닛산이 부활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숙제는 팔리는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덴츠종합연구소의 후쿠가와 신지 고문은 닛산의 변신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소비자들의 신뢰와 제품력에서 닛산이 아직 많은 숙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었다.지난 99년 6,843억엔의 적자에서 2년 후 3,310억엔 흑자로 급회전하며 일단 세상을 놀라게 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완전한 부활을 선언하기에는 불투명하고 부족한 점이 적지 않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23일 발표된 9월 중간결산 실적은 외부의 불안과 불만을 깨끗이 날려버린 홈런이었다. 곤 사장을 ‘도살자’ ‘코스트 커터’로 부르며 그의 경영능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깎아내렸던 일본 재계의 비판론자들을 꼼짝없이 고개 숙이게 만든 쐐기였다.일본 언론과 닛산은 중간결산이 본격적인 확대경영의 출발점이 됐다는 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군살을 빼고 뼈대를 튼튼히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수술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근육질을 불리고 덩치를 키우는 외형확대 쪽으로 거침없이 내달리겠다는 것이다.닛산은 우선 2004회계연도 말(2005년 3월)까지 해외 판매대수를 360만대로 현재보다 100만대 늘리고, 매출액에 대한 영업이익률을 8%로 끌어올리는 한편 유이자부채는 제로(0)로 만들겠다는 ‘180’ 플랜을 세워놓고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률은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03년 3월 결산에서 목표를 껑충 뛰어넘을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해외 판매대수 또한 지난해 대비 9.3%가 늘어난 283만8,000대에 달할 것으로 보여 목표 도달까지 64만대만을 남겨 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한편 닛산은 해외판매에 공격적으로 나서면서도 이익을 갉아먹는 헛장사는 하지 않겠다는 선을 분명히 그어 놓고 있다. 판매일선에서의 지나친 할인, 할부이자 면제 등 목표달성을 위해 일선 영업사원들이 무리를 감수할 소지를 없애고 좋은 차, 강한 브랜드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올 상반기 동안 북미지역에서의 판매대수가 8.7%가 늘어난 37만8,000대를 기록하면서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무려 2.3배나 불어난 1,140억엔에 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는 주장이다.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 designtimesp=23165>가 실시한 기업 이미지 조사에서 닛산은 종합점수가 2000년의 135위에서 2001년 34위로 도약, 변신 노력이 일본 국민들로부터 후한 평가를 받고 있음을 입증했다. 미국의 <타임 designtimesp=23166>지와 CNN에 의해 2001년 글로벌 비즈니스 파워 전세계 1위로 선정됐던 곤 사장은 최근 일본 정부로부터도 재계를 리드하는 5명 중 1명으로 꼽혀 일거수 일투족이 여전히 주목받는 인물임을 보여주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