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묶인 오늘날 토종업체와 다국적 기업간의 대결은 어디서나 흥미의 대상이다. 거대 조직과 풍부한 자금에다 난공불락의 브랜드 파워까지 갖춘 다국적 기업들의 상륙은 해당 국가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중소기업들의 반발과 저항을 동반하지만 최후의 결과는 대다수 다국적 기업들의 ‘소프트 랜딩’으로 끝나고 만다.하지만 다국적 기업, 특히 미국을 본거지로 한 초일류 기업의 글로벌 브랜드라고 모두 해외시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토종업체의 저항과 소비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반발, 편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거나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장사내용이 속 빈 강정에 그칠 수도 있다.일본 외식시장에서는 미국발 신화를 배경으로 전세계 최고의 명성을 굳힌 자이언트 브랜드와 일본산 토종 브랜드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어 화제다.한국시장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벅스 커피’와 일본에서, 일본인 기업가의 손으로 만들어진 ‘도토루 커피’가 링 위에 오른 숙명의 맞수다. 양측의 대결은 일본 최초의 셀프서비스 방식으로 지난 80년 문을 연 도토루가 일본 커피전문업체를 대표하는 넘버원의 아성을 굳히고 있는 상황에서 96년 스타벅스가 도전장을 내면서 시작된 후 갈수록 격전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언론과 업계 전문가들은 두 업체가 현재 쌍두마차로 시장을 리드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스타일과 실속에서 상반된 길을 걷고 있다며 배경과 싸움결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스타벅스의 예상치 못한 고전이다.스타벅스는 11월 초 공개한 자료를 통해 오는 2003년 3월 최종결산에서 22억엔의 흑자를 점쳤으나 기대와 달리 1억9,000만엔의 적자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밝혔다. 지난 3월 결산에서는 주당 75엔을 배당했으나 2003년 3월에는 무배당에 그칠 것 같다고 공개하는 한편 매출도 당초 예상을 60억엔 밑돌 것 같다고 덧붙였다.스타벅스의 부진은 일반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물론 일본언론에도 큰 충격이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일으킨 바람을 등에 업고 기세 좋게 일본에 깃발을 꽂은 스타벅스는 가는 곳마다 귀한 대접을 받으며 뜨거운 인기를 누려 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노른자위 상권은 물론 임차료가 턱없이 비싼 도쿄 도심의 일급지에도 스타벅스는 과감히 점포를 내며 일본 소비자들의 미각과 눈길을 사로 잡아왔다.녹색과 흰색이 잘 어우러진 스타벅스의 마크와 간판은 미국문화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먹을거리로 각인되면서 거뜬히 일본시장의 한축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2001년 10월 나스닥재팬에 상장한 스타벅스는 증시에서도 성장성이 높은 초우량주의 하나로 평가받으며 투자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스타벅스는 기업공개 때 들어온 130억엔의 자금을 신규점포 개설에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도쿄의 최고 심장부를 거침없이 공략해 들어갔다. 최고의 오피스타운으로 꼽히는 도쿄역 앞 마루노우치와 오테마치, 그리고 신주쿠 일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스타벅스는 기존 점포에서 수백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입지만 좋다고 판단되면 점포개설을 밀어붙였다.스타벅스의 이 같은 기세는 일본 토종업체들을 놀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경쟁업체인 도토루의 도리바 히로미치 사장은 “스타벅스가 상륙한 후 비싼 임차료를 내고도 커피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일본열도를 덮친 스타벅스의 인기에는 사각지대가 따로 없었다.지난 10월 말까지 415개의 점포를 열어 놓았지만 스타벅스 점포가 없는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자신들의 동네에서도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앞다퉈 구애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중부내륙지방인 나가노현에서는 여성대표자 15명을 포함한 5,000명의 주민이 스타벅스의 점포개설을 간청하는 연대서명 청원서를 2년 전 스타벅스 사장에게 보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스타벅스, 2년간 5~10개 점포 폐쇄스타벅스의 부진은 한 마디로 실속을 무시한 무리한 출점전략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도심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소비자들의 인기와 인지도를 높인 것은 좋았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신통치 않았다는 것이다.또 같은 스타벅스 점포와 멀지 않은 곳에 무리하게 점포를 신설한 탓에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경쟁이 벌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스타벅스는 앞으로 2년간 5~10개의 점포를 폐쇄하는 한편 2003년 3월까지의 신규 점포를 당초 목표보다 5개가 적은 115개로 묶기로 했다. 현실과 채산성을 무시한 대가로 수업료를 적잖게 냈으니 이제부터라도 근육질 경영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전문가들은 스타벅스의 고전과 달리 도토루는 철저한 실속경영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공세를 차단하고 있다며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이들이 꼽는 도토루의 쾌조비결은 결코 무리하지 않는 출점전략과 자신의 맛과 스타일을 고집하는 독창적 외길정신이다.스타벅스의 공세에 꿈쩍도 하지 않는 도토루의 파워는 숫자로도 뒷받침된다. 이 회사의 매출은 스타벅스와의 경합이 본격화된 지난 99년 이후에도 주춤하거나 내리막길로 후퇴한 적이 없다.또한 점포확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적도 없다. 올 한 해 새로 문을 연 점포만도 130개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스타벅스를 견제하기 위해 스타벅스 스타일의 분위기와 맛을 내걸고 있는 ‘엑셀시오 카페’의 점포들을 포함하면 모두 1,200여개에 이른다.외식업계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도토루의 장사노하우는 화려하지 않은 곳에서도 맛으로 고객을 끌어당기고, 비용을 압축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식이다. 도토루의 매장은 임차료가 비싼 일급지나 고급 오피스타운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길을 걷다 다리가 아프거나 피곤해지면 누구나 편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로변을 따라 집중적으로 개설돼 있다. 점포도 큰 규모를 고집하지 않는다.20~3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점포도 얼마든지 눈에 띈다. 같은 수준으로 맛을 비교하긴 어렵지만 커피값은 최저 180엔으로 스타벅스보다 약 30% 싸니 고객의 호주머니 부담이 덜하다.하지만 도토루의 장사스타일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맛에 대한 고집이다. 이 회사의 도리바 사장은 커피 원두는 물론 점포 내에서 사용하는 빵, 육가공품 등 각종 식자재에 관한 한 고품질을 고집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커피를 추출하는 기기는 물론 주방기기도 최상의 제품을 도입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품질을 유지하면서도 고정투자에 무리하게 돈을 쏟아붓지 않는 덕에 도토루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8~9%로 스타벅스의 3%대(2002년 전기)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원두가공공장 증설을 계기로 도토루는 간사이지역 영업망 확장에 적극 나서는 한편 앞으로 3,000개까지 점포망을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시장에도 간판을 내걸 방침이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