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길에 떨어져 있는 100달러짜리 지폐를 줍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허리를 굽혀 돈을 줍는 데 걸리는 몇 초가 아깝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돈이라면 역시 록펠러를 빼놓을 수 없다. 하루 품삯이 2달러를 밑돌았던 시절 록펠러는 1초에 2달러를 벌었다. 그 또한 길에 떨어진 달러를 줍지 못했을 것이다. 현대경영의 초석을 놓았고 재벌에의 길을 열었으며 거부(巨富)라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준 존 D 록펠러는 협잡과 사기, 폭력과 공갈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끝에 기어이 세계 최고부자의 반열에 올랐었다.독점금지법의 효시가 된 셔먼법이 그 때문에 만들어졌고 그의 스탠더드 오일은 21년간의 조사 끝에 회사분할 명령을 받았다. 1만2,000페이지에 달하는 고발장이 작성됐고 450명의 증인이 법정에 선 치열한 재판을 거쳐 1911년 5월 미국연방 대법원은 스탠더드 오일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판시했다. 결국 스탠더드 오일은 엑슨, 모빌, 아모코 등 34개 기업으로 해체됐다. (엑슨모빌은 몇 년 전 다시 합병했다.)골프장에서 대법원의 판결내용을 전해들은 록펠러는 같이 골프를 치던 친구들에게 서둘러 스탠더드 오일의 주식을 사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회사분할은 오히려 그의 재산을 3억달러에서 9억달러로 늘리는 데 기여했다. 당시 9억달러는 미연방 예산 7억달러보다 2억달러나 많은 액수였다. 어떤 경영사학자는 록펠러에 대한 독점금지법 위반 재판을 ‘어리석게도 운명(기업 성장과정의 필연적인 상황)을 재판했다’고 썼다. 여기에는 석유산업의 자연독점 문제라는 오랜 논쟁도 들어 있다.노무현 신정부 인사들의 재벌에 대한 공세가 거침없이 계속되고 있다. “대기업은 육성하되 재벌은 안된다”는 것은 당선자 자신의 말이기도 했다. 당선자의 어떤 측근은 “재벌 오너가 제멋대로 경영자들의 보수를 정하기 때문에 보수를 공개하는 방법으로 (노조 등 사회적 감시를 통해) 오너를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독점재벌은 과연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취미삼아 자동차회사를 만들어 망해먹기 일쑤고 국민경제에 축이나 내며 걸핏하면 탈세를 일삼는 모습도 재벌의 일그러진 이미지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록펠러에 대한 독금법 재판을 ‘운명을 재판한 것’이라고 한다면 소위 개혁론자들의 재벌에 대한 공세는 귀신을 재판하고 허공에 떠도는 관념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풍차(헛것)를 보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와 닮아 있다.자동차 실패를 말하지만 반도체의 성공도 오직 병상에 누워서도 외로이 투쟁했던 오너의 몫이었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단지 실패를 이유로 단죄하기로 들면 고뇌에 찬 기업가의 길을 갈 사람은 아무 데도 없다. 혹시 공기업이라면 “오케이! 기업은 재무전문가에게 맡겨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기업 캠페인이 정치권의 상부에까지 파고든 상황에서 경제가 잘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아마추어 사외이사들을 불러다 기업의 운명을 가름할 수백, 수천억원의 투자안(삼성전자는 수조원이다)을 승인하라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기업들은 이미 한참을 나아갔지만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개발연대의 유령을 뒤쫓고 있다. 재벌 오너가 기분 내키는 대로 경영자 보수를 정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업경영을 어떤 모양새로 만들어 놓을지 정말 걱정이다. 기업은 세계에서 싸우고 정치인은 안방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투명하고 보기에도 좋고 거기에 자선사업가적이기도 한 그런 이상적인 대기업은 불행하게도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것은 선과 악을 공유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너무도 닮아있는 존재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