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년차를 맞아 가입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날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다.아이러니한 것은 중국경제가 부상하면 할수록 한편으로는 동북아지역에 있어서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 속한 국가간에 협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점이다.그동안 논의돼온 동북아지역의 협력문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한·중·일 3국이 중심이 되어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진전돼 온 금융협력 방안이다. 마지막으로 민간차원에서는 동북아 비즈니스 협력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이런 움직임에 중심(Hub)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무엇보다 이런 협력 논의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동북아지역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중국처럼 배후시장 규모가 큰 국가들이 WTO에 가입하게 될 경우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국가가 가입하는 것보다 개방에 따른 경제적 효과(Open Effect)가 크게 나타난다.실제로 중국이 WTO 가입 1년차인 2002년 들어 세계경제가 동반침체 속에도 중국경제는 상반기에 7.6%, 하반기 들어 3/4분기에는 8.3% 성장했다. 더욱이 16차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새롭게 출범한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가 2003년을 기점으로 개방을 좀더 속도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여 중국경제 성장률은 더욱 제고될 것으로 예상된다.국제금융시장에서도 중국의 부상이 갈수록 눈에 띈다. 물론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태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기채(起債)시장에서는 화교계 자금이 제1선 자금으로 떠오르고 있다.특이한 것은 화교계 자금은 유동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선진 다국적 기업들이 대부분을 조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화 자금과 달리 조달비용 면에서 저렴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유동성 면에서 문제가 없는 다국적 기업들이 화교계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세계 최대의 잠재시장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국시장 진출’이라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추세는 중국의 WTO 가입으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의 경제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중국간의 통상마찰이 불거진 지 오래고 일본과 중국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과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상태다.사실 일본과 중국의 갈등은 아시아경제 중심축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보통 경제중심축은 세계 최대시장에서의 무역성과로 평가된다. 이미 2000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특히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일본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점이 향후 동북아지역의 협력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변수다. 현재 일본경제는 ‘좀비경제’라 불릴 만큼 경제활력이 떨어진 지 오래다.또 일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음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사요나라 닛폰’이란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외국자본과 외국기관들이 철저하게 일본경제를 외면하고 있다.한때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꿈꿨고 무역흑자국의 상징이었던 일본이 악순환 국면에 몰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일본시장 잠식과 일본 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 일본기업들의 중국 이전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특히 위안화 가치가 중국경제 기초여건(Fundamentals)에 비해 낮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 일본의 진단이다. 현재 중국은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94년부터 유지해오고 있다.실제로 실질실효환율로 위안화의 적정수준을 추정해 보면 달러당 6.8∼7.0위안으로 나온다. 이에 따라 일본은 중국이 시장잠식을 뛰어 넘어 ‘산업찬탈’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일본기업을 유치하고 있다는 인식이다.따라서 일본이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경제여건에 맞게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일본이 자체적으로 엔화 가치를 대폭 절하한다는 입장을 잇달아 밝히고 있다.이에 대해 중국은 자국 내 디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기 보다 절하해야 한다고 일본의 요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이처럼 중국과 일본이 환율문제를 놓고 미묘하게 갈등을 빚는 시점에서 일본 시즈오카 재무상은 엔·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이 현 수준보다 약 30엔 정도가 높은 150∼160엔이라며 두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곧이어 구로다 재무차관도 엔저를 용인하는 발언을 해 비슷한 시각을 밝혔다.문제는 일본의 이런 엔저 정책은 우리나라와 같은 인접국들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본이 엔저 정책을 추진해 개선된 경쟁력은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인접국들의 경쟁력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만약 이런 특성을 외면하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엔저 정책을 계속해서 고집할 경우 인접국들과 통화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접국들은 일본의 엔저 정책에 따라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엔화 가치를 내린 폭만큼 인접국들도 자국의 통화가치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이론적으로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의 문제는 대표적인 ‘이웃 궁핍화정책’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다시 말해 어느 한 나라가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해 얻어지는 수출과 경제성장 측면의 이득은 인접국 또는 경쟁국들의 희생과 다름없다는 견해다. 최근처럼 글로벌화 시대에 있어서는 가장 경계하는 정책수단이다.2003년에도 동북아지역에서는 아시아 주도권과 결부돼 일본과 중국의 마찰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상대적으로 유럽경제권과 미주경제권에서는 통합 모습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어 대조적이다. 결국 2003년도 아시아 국가간의 협력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한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특히 동북아지역의 중간자 혹은 균형자(Balancer) 입장에 놓여 있는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독특한 지위를 활용해서 그동안 한·중·일 3국간에 논의해 온 자유무역협정(FTA)이라든가, 통화스와프 협정, 공동통화기금 설정, 공동화폐 도입문제 등을 원만히 매듭지어야 동북아지역에서의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