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체 사무실을 겨냥한 납품업체들의 주력 상품은 문구 등 사무용품과 복사지, 리본 등의 기타 소모품이 보통이다. 납품하는 업체들도 마찬가지지만 기업들 역시 먹고 마시는 먹거리와 가구, 생활용품 등을 한군데에서 종합적으로 조달하는 토털 서비스에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그러나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 오프라인 점포를 두지 않고 직거래 방식으로 납품하는 업체들의 취급품목이 수천종을 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단돈 몇 엔에 불과한 종이 한 장에서 먹는샘물 한 병과 수십만엔을 호가하는 컴퓨터와 고급 사무용 가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상품이 납품전문업체의 리스트에 올라 있다.직거래 납품전문업체 중 우량기업으로 독보적 명성을 누리고 있는 아스쿠루는 현재 1만3,400여종의 상품을 취급하고 있을 정도다. 사무실을 직장인들의 단순한 일터로만 보지 않고 종합적인 생활공간으로 파악하면서 잠재 수요 개척에 앞장서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기업체를 겨냥한 일본의 납품시장에서는 최근 대형 식품업체 하나가 소리 없이 판로를 넓혀가면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과자와 아이스크림 등에서 일본 제과업계 선두를 달리는 에자키 글리코. 이 회사는 기업체 사무실에 전용 상자를 설치해 놓은 뒤 담당 판매원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상품을 보충하는 세일즈 방식으로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방식은 간단하다. 비스킷, 초콜릿 등 이 회사의 제품이 담긴 3단 서랍의 전용 플라스틱 상자를 거래 기업에 우선 공급한 다음 사무실 직원들이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이용하도록 하는 식이다. 가격은 대략 개당 100엔이며 제품을 꺼내 가는 직원(고객)이 상자 위에 달린 동전 투입함에 돈을 넣도록 하고 있다. 담당 판매원은 일주일에 1~2회씩 방문해 제품을 보충하고 돈을 회수하는 동시에 상자 옆에 달린 설문지를 회수해 고객들의 기호와 희망 사항을 파악하면 된다.제과 및 커피전문업체까지 뛰어들어에자키 글리코가 이 같은 사업을 무작정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99년부터 시장성 조사에 착수한 이 회사는 충분한 채산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판단이 서자 2002년 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2년 11월 말 현재 도쿄에 5개, 오사카에 3개의 전담 센터를 두고 있는 이 회사는 모두 9,000여개의 상자를 기업체 사무실에 공급해 놓고 있다.물론 사무실에서 과자 등 간식을 한다는 것이 해당 기업체들로부터 부정적 평가를 받을까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외로 반응은 좋았다. 상자를 들여 놓은 기업들로부터 클레임이 제기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일부 기업의 경우 직원들이 정보교환을 위해 자주 모이는 장소나 흡연실에 상자를 설치해 직원들간의 대화를 활성화시키고 담배연기를 줄이는 효과를 거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별 것 아니게 보이는 과자상자가 직원들의 정보공유에 뜻밖의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인 셈이다.납품시장에서 새롭게 시선을 끌고 있는 업체는 에자키 글리코만이 아니다. 커피전문업체인 UCC 우에시마 커피는 2001년 가을부터 원두커피를 한 잔씩만 추출해낼 수 있는 이코노 타입의 신형 서버를 공급해 기업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납품시장이 치열한 경쟁으로 포화 상태를 맞고 있는 이상 차별화된 맛과 경제성으로 또 다른 수요를 찾겠다는 포석이다.일본 언론은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이 바둑판 돌처럼 촘촘히 깔려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납품업체들의 경쟁은 갈수록 불꽃을 튀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상품의 질과 가격, 서비스에서 우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현대판 심부름꾼’의 변신 노력은 사무실을 보다 편리한 리프레시 공간으로 만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