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셋 개더링' 신경영전략 선언 이후 조직개편 작업 한창

‘자산 모으기.’삼성증권이 최근 거듭 공표하고 있는 신경영전략이다. 흔히 우리말보다 ‘에셋 개더링’(Asset Gathering)이라고들 표현한다. 뜻은 글자 그대로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돈을 끌어모아 삼성증권이라는 바구니에 담아두게 하겠다는 것이다.전통적으로 재산을 담아두는 바구니 역할은 은행의 몫이었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이제 삼성증권을 경쟁자라고 하기는 어렵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은행이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은 이 같은 신경영전략을 내놓으면서 “은행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삼성증권과 PB 분야에서 정면으로 충돌할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하나은행의 김승유 행장 역시 “가장 긴장해야 할 경쟁상대는 삼성증권”이라고 말했다. 이쯤 되면 삼성증권은 이제 ‘주식매매도 할 수 있는 은행’으로 여겨질 법하다.삼성증권은 어째서 ‘증권사라면 모름지기 가야 할 길’로 여겨지던 방법을 버리고 은행의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일까.이런 전략을 택한 것은 증권사의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을 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주식시장이 상승해 투자열풍이 불면 수익이 늘어나고 장이 침체되면 돈을 벌 구석이 없는, 불안정한 수익구조의 문제점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다. 하지만 늘 ‘문제’라는 지적만 반복될 뿐 정말로 이를 벗어나 보려고 나선 증권회사는 아직 없었다.증권사별로 위탁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삼성 52%, LG 59%, 현대 72%, 대우 74%, 대신 76% (2001년도 기준) 등이다. 그러나 이처럼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탁매매의 수수료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위탁매매수수료율은 99년 0.48%, 2000년 0.36%, 2001년 0.22%, 2002년 0.20%로 감소해 왔다. 다른 증권사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수익성이 뚝뚝 떨어지는 장사에 계속 집착하다가는 언제 위기상황에 몰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 것도 당연하다.‘이미 무늬는 증권, 속은 은행’그대신 ‘새로 발굴한 돈 될 장사’라는 게 은행과 비슷한 영역이다. 가장 먼저 PB 분야에서 충돌했고, 수익증권에서도 만난다.삼성증권의 한 임원은 “규모에서야 비교가 안되겠지만 전략이나 지향 면에서는 내심 국민은행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삼성 특유의 일등주의가 이런 생각에 가세한 것도 사실이다”고 말했다.국민은행 자산규모가 204조원이고 삼성증권은 5조원, 다윗과 골리앗 격이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도 아니다. 국민은행은 2002년 9조3,000억원어치의 수익증권을 팔았고 올해는 10조원을 판매할 계획을 세웠는데, 수익증권 판매 분야에서 ‘삼성증권에 이어 2위’로 올라서는 것이 목표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말 판매잔액이 24조원이었다. 2001년 투신증권을 합병하면서 현금을 끌어모아 수익증권에 담으러 다니기에 분주하다. 개인자금뿐만 아니라 지역 새마을금고, 중소기업 등의 자금이 수익증권에 들어와 있다.최근 삼성은 ‘약정경쟁은 더 이상 하지 않고, 자산규모와 수익률로 영업을 평가한다’라는 황영기 사장의 청사진이 제시된 이후 이에 따라 개편작업이 한창이다. 우선 고객부터 분류했다. 단순히 삼성증권 창구를 통해 주식거래만 하기를 원하는 사람, 관리를 받고자 하는 사람, PB 서비스 수준까지 관리를 받고자 하는 고객들로 구분한 것이다.한편 지점장들을 대상으로 신경영전략을 설명하는 연수를 실시하고 있으며, 최근 지점에서 영업을 담당하는 이들의 직군 개편작업을 완료했다. 영업직원의 대부분은 이제 ‘FA’라고 불리는 자산관리자로 거듭나야 한다. 주식영업에서 성과가 특별하거나 이쪽만을 고집하는 영업직원 40여명은 ‘전문주식영업직’으로 분류돼 종로, 명동 등 지역특성상 주식거래가 강한 몇몇 지점으로 옮겨간다. FA로 분류된 직군은 예금·수익증권·대출에 보험까지 팔아야 하는 은행원과 마찬가지로 주식영업은 물론 수익증권영업, 자산관리 등을 모두 해내야 하는 것.물론 증권사는 은행이 아니다.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다른 점은 예금이냐, 투자냐 하는 부분이다. 은행은 높건 낮건 ‘보장된’ 금리를 제공하므로 ‘예치’의 성격이 짙다. 증권사는 모인 자산을 투자하는 데 노하우가 있다. 지점수나 인력 규모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하지만 이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인지 모른다. 이제 고유의 사업영역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는 일이 되고 있다. 은행에서도 투자를 하고 증권사에서도 얼마든지 예금을 할 수 있다. 주로 증권사를 통해 구입하는 채권의 경우 국공채를 사서 만기까지 보유하면 정해진 금리를 받는, 예금과 다를 게 없다.은행에서는 요즘 투자자산의 대명사인 수익증권을 파는 데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권관계자들은 ‘무늬는 증권, 알고 보면 은행’으로 거듭나려 하는 삼성의 실험 성공 여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