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업계에서 도요타자동차가 차지하는 위상은 절대적이다. 일본 국내 시장점유율이 40% 밑으로 내려가 본 적이 거의 없는 마켓셰어가 그렇거니와 재무구조, 수익체질에서도 도요타자동차와 어깨를 겨룰 만한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자동차의 인기판도도 마찬가지다.차량별 판매순위로 본 ‘베스트10’ 중 도요타는 매년 6~7개 차종을 보란 듯이 올려놓고 있다. 외국인들의 귀에 익은 일본 자동차메이커 이름이 적잖지만 이들 회사가 만든 자동차는 베스트10 중 하나, 둘을 간신히 올려놓을 뿐이다.이 같은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2002년에 대이변이 일어났던 사실이 최근 밝혀져 흥미를 끌고 있다. 2001년까지 무려 33년간 단일 차종으로 일본 자동차 시장 1위를 달려왔던 도요타의 소형차 ‘코롤라’가 혼다의 ‘비트’에 선두자리를 내주고 왕좌에서 내려온 것.일본언론은 최근 1~2년간 비트의 인기가 가파른 상승세를 탔던 점을 감안,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순위가 뒤집히자 그 결과에 무척 놀라워하고 있다.60년대 후반에 등장한 코롤라는 일본의 ‘마이카시대’를 선도한 자가용 승용차의 상징적 존재이자 도요타에는 회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이었기 때문이다.배기량 1,300㏄ 승용차로 2001년 6월에 첫선을 보인 비트는 판매시작 후 5개월 만인 11월에는 단일 차종으로 판매랭킹 1위에 오르면서 일본 자동차 시장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2002년 들어서는 2월, 3월, 10월 등 3개월만 코롤라에 수위자리를 내줬을 뿐 나머지 기간은 선두를 유지하는 데 성공, 마침내 코롤라의 33년 영광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 일본자동차판매연합회의 조사에 따르면 비트는 25만대가 팔렸으며 코롤라는 22만6,000대, 닛산이 회사 리바이벌 플랜의 상징작으로 투입한 마치는 13만9,000대가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1위를 비트에 빼앗겼지만 도요타는 베스트10 중 지난해에도 6개 차종의 이름을 올려놓으며 철옹성 같은 명성을 재확인했다.일본언론과 산업전문가들은 비트의 쾌주 원인을 파격적인 기능과 디자인, 그리고 경쟁차들의 추격을 허용치 않을 만큼 뛰어난 연비를 자랑하는 경제성에서 찾고 있다. 비트는 우선 기존 차량들이 뒷좌석 부근에 설치했던 연료탱크를 앞좌석 밑으로 전진배치시키는 발상의 전환을 택했다.소형차이지만 뒷부분의 실내공간이 그만큼 넓어졌음은 물론이다. 비트는 또 뒷좌석을 앞으로 접으면 뒷부분이 화물적재함으로 쓰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이에 따라 비트의 실내 뒷부분은 접이식 자전거는 물론 레저용 장비를 상당수 실을 수 있어 특히 젊은 운전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트는 또 1,300㏄ 승용차의 경우 휘발유 1ℓ당 23㎞를 달릴 만큼 발군의 저연비를 갖추고 있어 혼다가 뽐내온 엔진 기술력을 다시 한 번 과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자동차전문가들은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비트 자체의 장점과 함께 자동차업계의 소형차 판매경쟁이 유난히 치열했던 점을 꼽고 있다. 혼다는 코롤라에 수위를 빼앗겼던 2002년 초 1,500㏄ 상급 차종을 같은 브랜드로 투입하면서 양면 포위작전으로 코롤라를 압박했다.이에 맞서 코롤라의 영광을 지키려는 도요타는 코롤라의 일부 개량 모델로 맞불을 놓는 한편 가격을 낮춘 보급형 모델을 긴급히 내놓기도 했다. 고객을 소개한 직원들에게는 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하며 전사적으로 총력전을 펼치기도 했다. 카를로스 곤 사장이 지휘하는 닛산 또한 소형차 마치를 회사 부활의 상징으로 육성한다는 전략하에 화끈하면서도 공격적인 광고 판촉 활동으로 비트를 추격해 왔다.코롤라의 영광에 막을 내리게 만든 비트의 질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일본언론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일본시장을 리드한 2002년 한 해 동안의 소비패턴이 연비, 경제성, 콤팩트한 기능의 세 가지를 중심으로 움직인 점을 감안한다면 삼박자를 고루 갖춘 비트의 앞길에서는 장애물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