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동안 논란이 심했던 금융 현안들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원화의 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발행문제, 적정외환보유고, 그리고 키보(Kibor)금리를 도입하는 방안들이다.다행스러운 점은 지난해 내내 한국은행과 재경부간에 갈등을 빚어온 금리인상 문제가 새해 들어 대외여건이 불안하고 국내 경기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일단락되고 있다. 가계부실과 부동산투기 해소차원에서 제기됐던 금리인상 문제도 총액대출한도 축소와 같은 연착륙 수단을 통해 총유동성을 조절하는 식으로 정책적인 조합점을 찾아가고 있다.금리인상 문제와 함께 한은과 재경부간의 입장차이가 뚜렷한 금융 현안이 바로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방안이다. 디노미네이션에 대해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승 한은총재다. 박총재는 “국제적으로 우리 경제위상에 걸맞은 통화를 운영하고 앞으로 있을 남북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원화의 디노미네이션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반면 전윤철 부총리를 비롯한 재경부는 “현재 우리는 원화의 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만큼 경제가 불안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현 시점에서 일종의 화폐개혁인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경우 경제적으로 혼란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 예로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논의 이후 서울 강남지역의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린 점을 들고 있다.원화의 디노미네이션은 언젠가는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정책 추진에 따른 비용이 워낙 크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원화의 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할 경우 예상되는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시간을 갖고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하고, 추진한다면 사전에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방안과 못지않게 갈등을 빚어온 현안이 고액권 발행이다. 원화의 디노미네이션과 함께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박승 한은총재는 “화폐의 본질적 기능인 거래의 편리성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경제규모에 걸맞은 권종을 가져야 되고 막대한 수표 발행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이에 대해서도 일부 재경부 관계자들은 현행 화폐사용에 따른 큰 불편이 없는 상황에서 고액권을 발행할 경우 인플레가 유발되면서 뇌물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어 고액권 발행에 부정적이다.정책당국의 의견차와 상관없이 이 문제는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화폐사용에 따른 불편함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81%가 고액권 발행에 찬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추진과는 별도로 고액권 발행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외환보유고 적정수준 넘어외환보유고를 추가적으로 적립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차기정부가 출범될 시점에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박총재는 1차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위기를 예로 들어 “추가적으로 적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그동안 지속적으로 추가 적립을 주장해 온 재경부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제는 운용수익을 적립하는 것 외에 인위적인 추가 적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이 문제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외환보유고는 모든 판단기준으로 볼 때 적정수준을 넘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민경제적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외환수요가 필요한 곳이 많다. 지금은 추가 적립보다 과다 보유분을 잘 운용해서 외환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논란거리는 아니더라도 그동안 한국은행이 외환금리의 국제 기준이 되는 새로운 지표로 주장해 왔던 키보금리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키보금리란 ‘Korea Inter Bank Offered Rate’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서울 시중은행간의 금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서울에서 이뤄지는 모든 외환거래에 적용되는 새로운 금리지표로 앞으로 도입될 경우 국내 외환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고 국제금융센터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면서 그동안 이 방안이 꾸준히 논의돼 왔다.일단 도입 가능성 여부를 떠나 그동안 동아시아지역 내에 속한 국가간의 금융협력을 위해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통화스와프 체결, 공동화폐 도입 등을 논의해 오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중간자 혹은 균형자(Balancer)의 위상을 강조해 온 만큼 키보금리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나름대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일반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런던 시중은행간 금리인 리보(Libor)금리를 사용해 왔다.다시 말해 유럽지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기준금리로 리보금리뿐만 아니라 유로랜드 내 시중은행간 금리인 유리보를 사용한다. 미국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는 3개월 재무성 증권수익률에 가산금리를 붙여 조달금리로 삼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만큼 갈수록 국제금융시장의 구조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키보금리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점이 전제가 돼야 한다. 하나는 국내 외환시장이 최소한 아시아 외환시장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의 대표성을 띠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인식 차원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보편성을 띠어야 한다.특히 키보금리가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존재하는 각종 외환금리간의 체계(Interest System)에 있어서 기준금리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키보금리가 아시아 외환 및 금융시장의 상황을 잘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이런 전제조건을 토대로 국내 외환시장의 여건을 점검해 보면 키보금리가 당장 도입되기는 힘들다. 무엇보다 국내 외환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올 들어 국내 외환시장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외환규모는 20억달러 정도에 그쳐 실질적으로 아시아 외환시장을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인식적 측면에서도 아시아 외환시장 가운데 기존의 도쿄 외환시장이나 싱가포르 외환시장, 홍콩 외환시장에 비해 국내 외환시장에 대한 인식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키보금리의 도입방안은 지금 당장은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국내 외환시장이 국제금융센터의 중심지로 발전하기 위해서 언젠가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다. 지금부터라도 키보금리를 도입하기 위한 제반 과제들을 착실히 준비해 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