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ㆍ사진/유연태 여행작가 kotour21@hanmail.net전남 담양군은 가사문학의 산실이며 정자문화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예전부터 담양에는 큰 지주가 많았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봉건시대의 식자층이 상당수 탄생했다. 중앙정계로 나갔던 그들은 나이 들어 벼슬에서 물러나거나 각종 사화의 와중에 권력에서 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연고에 따라 이곳저곳에 원림과 정자를 꾸민 뒤 자연에 묻혀 한세월을 살았다. 면앙정, 송강정, 식영정, 소쇄원, 명옥헌, 독수정들이 그때의 문화유산이다.그 정자와 원림들은 수양과 은둔의 공간이면서 학문과 세상일을 토론하는 장소이기도 했고 선비들이 모이는 곳이었던 만큼 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총체적인 문화활동은 바로 이런 정자나 원림에서 이뤄졌다.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1인자였던 송강 정철과 관련된 유적과 조선 중기의 대학자였던 면앙정 송순의 숨결이 서린 정자도 이곳에 있다. 그래서 담양은 가사문학의 태자리라고도 불리는 것이다.88올림픽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담양지방 여행의 들머리로 잡는다. 담양톨게이트에서 읍내 방면으로 가다 보면 먼저 죽물박물관을 만난다. 담양이 대나무의 고장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소이다.담양읍 천변리의 죽물박물관은 죽물전시실, 죽물생활실, 기획전시실, 그리고 야외 죽종장으로 꾸며졌다. 죽물전시실에는 죽제품을 제작하기 위한 도구와 과거에 생산되었던 죽제품을 전시해 놓은 공간. 밀랍인형을 이용해 1900년대 초반 담양의 가정집을 재현해 놓고 쉽게 죽제품 제작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것이 돋보인다.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문의 061-381-4111)담양읍내에서 순창 방면으로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금성면 면소재지를 지나 석현교에서 우회전, 봉서리 비내동마을로 들어가면 대나무골 테마공원이 기다린다. 한석규가 등장하는 이동통신 광고를 비롯해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바로 이곳에서 촬영됐다.1973년부터 이곳에 대나무숲을 가꿔온 신복진씨는 언론인 출신이다. 사진기자로 반평생을 보낸 그는, 지난 1996년에 정년퇴임 후 늘 대나무숲을 돌보며 사계절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낸다. 대나무밭의 규모는 3만여평. 여행자들은 죽향에 취하며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를 감상하며 잠시 시름을 잊는다.담양에 대나무가 많은 이유는 식생환경이 가장 적당해서 그런 것이고, 그로 인해 죽세공예가 발달했다. 이곳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대밭에서 뛰놀며 대쪽 같은 선비정신을 가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고 있다.이번에는 담양의 정자문화 기행에 나설 차례. 담양읍내에서 가장 가까운 정자는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있는 면앙정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은 고향인 이곳에 정자를 짓고 땅을 내려다보고 하늘을 쳐다보아도 부끄럼이 없기를 열망했다. 면앙정을 만나려면 돌계단을 160여개쯤 올라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댓잎이 떨어져 뒹구는 계단을 다 오르면 널찍한 평지가 나타나고 한쪽에 수수한 정자가 서 있다. 면앙정은 이 정자의 이름이기도 하면서 송순의 호이기도 하다.송순은 41세 되던 해인 조선 중종28년(1533)에 이 정자를 지었다. 당쟁에 휘말렸던 그는 고향에 내려와 뒷산에 아담한 정자를 짓고 시를 읊으며 소일했다. 송순이 지은 면앙정가는 유유자적한 생활과 자연에서 절로 얻은 흥취를 노래한 것이다. 이는 송강의 성산별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정철을 비롯해 김인후, 임억령, 고경명, 양산보, 기대승 등도 이곳을 드나들며 시짓기를 배우고 즐겼다.면앙정 남쪽, 고서면 원강리로 내려가면 송강정이 반긴다. 조선시대 시인이자 정치가인 송강 정철(1536~1593)의 행적이 어린 곳이다.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인 진영에 속했던 정철은 49세 되던 해인 선조17년(1584) 동인의 탄핵을 받아 대사헌직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 와서 정자를 짓고 지냈다. 그는 다시 우의정이 되어 관직에 나가기까지 4년 가량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그때 <사미인곡 designtimesp=23449>과 <속미인곡 designtimesp=23450>을 비롯한 뛰어난 가사와 단가들을 남겼다.정자는 정면 3칸에 측면 3칸이며 가운데에 방이 마련돼 있고 앞과 양옆이 마루로 되어 있다. 옆에는 1955년에 건립된 사미인곡 시비가 있고 뒤쪽에는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얕은 담처럼 둘려 있다.호남고속도로 아래를 통과, 887번 지방도를 타고 광주호 인근으로 내려가면 식영정, 가사문학관, 소쇄원 등이 차례로 나타난다. 남면 지곡리의 식영정은 명종15년(1560)에 지금 식영정이 있는 곳 아래쪽에 서하당을 세우고 지내던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석천 임억령에게 새로 지어드린 정자이다. 임억령은 정자 이름을 짓는데도 시인다운 기질을 발휘했다. 식영정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다.식영정까지 갔다면 식영정과 1.2㎞ 떨어진 소쇄원을 지나칠 수 없다. 중종 때 사람인 양산보의 별서정원이다. 소쇄원은 호남 제일의 명승으로 불릴 만큼 유서 깊은 고적으로 한국 민간정원의 정수를 보여준다.사적 제304호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 중종 때 조광조의 제자인 양산보가 무등산 정남에 솟은 까치봉과 장원봉의 줄기에 펼쳐진 계곡을 중심으로 조성한 정원이다. 요즘 들어서는 이 지역에 사는 젊은이들의 신혼앨범 촬영장소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다.식영정과 소쇄원 중간에는 가사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2000년 문을 연 가사문학관은 가사문학이 발전했던 고장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지은 문학관으로 3개의 전시실에는 송순, 정철, 임억령, 양산보, 김인후 등의 문집과 목판 등이 전시되어 있다. (380-3240) q맛집 / 전통식당40여가지 남도음식 ‘푸짐’고서면 고읍리에 위치한 모범음식점으로 한정식을 잘한다. 식당건물은 살림채를 그대로 쓰고 있어 허름한 편이지만 마당 가운데의 장독대가 예사로운 맛집이 아님을 방증한다. 전라남도 지정 남도음식명가 가운데 하나이다. 한정식은 1인분에 2만원, 2만5,000원 두 종류가 있다. 반찬의 가짓수는 40여가지를 헤아릴 정도로 푸짐하다.철마다 싱싱한 나물류, 집에서 담근 각종 장아찌류, 민물참게장 등 젓갈류, 청국장찌개, 굴비 등이 상에 오른다. 2만5,000원짜리는 여기에 삭힌 홍어와 편육이 잘 어울린 삼합, 갈치구이, 쇠고기전, 새송이버섯전 등이 추가된다.영업시간은 점심 무렵부터 오후 9시까지다. 신용카드는 사용 가능. 좌석수는 120석이고, 방이 6개 있다. 주차 수용능력 30대. 최근에는 된장, 고추장, 물엿, 참게장, 김치류, 젓갈류, 장아찌류 등을 택배로 판매하기도 한다. (예약문의 061-382-3111)◆여행메모(지역번호 061): 담양은 호남고속도로와 88올림픽고속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호남고속도로 장성인터체인지 → 24번 국도 → 담양읍 코스 또는 호남고속도로 → 고서분기점 → 88올림픽고속도로 담양인터체인지 → 담양읍 코스를 달린다.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담양행 버스가 하루 5회 운행된다. 담양 공용버스정류장(381-3233), 숙박시설로는 담양읍내에 파레스호텔(381-6363), 성림장(382-9951), 그린파크여관(383-2020) 등이 있다.맛집으로는 담양읍내에 신식당(떡갈비ㆍ382-9901) 민속식당(죽순회ㆍ381-2515)이, 봉산면에 쌍교식당(순두부백반ㆍ381-2201) 황토식당(황토닭구이ㆍ381-1666) 등이 있다. 가사문학관 옆 전통찻집 ‘보리와 이삭’(381-9333)에서는 대추차, 유자차 등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