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유통 조사는 최고의 히트상품...정치관련 여론조사는 '사절'

연일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각 매체에 실려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대선 때도 리서치의 위력은 빛을 발했다. 리서치에 대한 인기가 요즘 같은 때도 일찍이 없었다.리서치 분야에 뛰어드는 업체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70개사가 넘은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 전문 조사업체까지 가세하는 추세다.이같은 상황 속에서도 AC닐슨코리아(대표 권오휴·사진)의 존재는 군계일학으로 꼽힌다. 지난 1980년 미국 AC닐슨 본사가 100% 출자해 설립된 이 회사는 국내에서 시장조사(Market Res-earch) 분야를 개척한 리딩 컴퍼니로 국내 최대, 최고의 시장조사기관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매출액 면에서도 지난해 기준으로 240억원을 기록해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업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AC닐슨코리아의 인지도는 다른 경쟁사에 비해 결코 높지 않다. 이는 회사측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회사홍보에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권오휴 사장은 “실력으로 인정받으면 됐지 구태여 회사이름을 알리기 위해 경쟁력을 분산시킬 생각은 없다”고 말한다.그래서인지 이 회사는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인이나 정당으로부터 조사해 달라는 의뢰는 많이 들어오지만 정중히 거절한다. 지난번 대선 때도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끝내 ‘NO’를 외쳤다.사실 정치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할 경우 국내 유수의 신문이나 방송이 이를 보도하기 때문에 회사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다. 실제로 몇몇 회사들은 이것을 회사를 알리고 띄우는 데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C닐슨코리아는 요지부동이다. 권사장은 “입으로도 정치 관련 여론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강조한다.대신 이 회사는 시장조사 분야의 선두주자답게 이를 전문화하는 데 힘을 쏟는다. 특히 소매유통조사 분야는 오늘의 AC닐슨코리아를 만든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꼽힌다.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조사해 축적한 놓은 데이터와 100개가 넘는 제품군에 대한 분야별 조사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 제품군의 마케팅 성과와 추이를 분석하고, 전략적 정보를 제공하는 노하우 역시 업계 최고수준이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최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굳이 AC닐슨코리아를 이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KOREA HOMEPANEL’로 불리는 소비자패널 조사와 맞춤형 소비자조사, 미디어조사 서비스 등도 이 회사가 내세우는 주력상품이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어디서, 얼마나, 어떻게 사고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제품을 좋아하며, 판촉 등 마케팅 활동에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등도 정밀하게 관찰한다.맞춤형 소비자조사 가운데 신제품 컨셉 및 판매 예측조사, 시장 세분화 및 포지셔닝조사, 고객과 직원의 만족도 및 충성도 조사 등은 고유의 조사모델을 이용한 조사로 AC닐슨의 성가를 한껏 높이고 있다. AC닐슨의 대표적인 소매유통정보인 소매지표(ACNielsen Retail Index)는 이미 유통업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지표로 평가받고 있다.그렇다면 AC닐슨코리아가 시장조사 분야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지만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 쌓아온 노하우와 뛰어난 인적자원,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꼽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상숙 인사홍보담당 부장은 “지난 22년간 소매유통조사부터 미디어조사까지 다양한 리서치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수준 높은 분석력 등을 키울 수 있었고, 철저한 인력관리를 통해 고급인재를 많이 확보한 것이 회사의 파워를 키우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AC닐슨코리아의 경영지침 제1조는 성실과 정직이다. 고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 아래 조사의 정확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조사원이 수집해 온 결과를 다시 한 번 검증하는 시스템을 풀가동해 신뢰성을 높이고, 조사원 교육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1특히 검증을 통해 조사결과를 허위로 작성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해당 조사원이 조사한 것은 모두 폐기하고, 다음부터는 아예 조사에 참여시키지도 않는다. 권사장은 “조사의 생명은 신뢰성으로 이를 잃으면 존재가치 자체가 없어진다”며 “이런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온 것이 일등회사로 키운 원동력이다”고 강조했다.이 회사의 고객에 대한 투철한 서비스 정신은 사장실의 위치에서도 느껴진다. 누가 봐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안내데스크 바로 뒤에 자리잡고 있다. 자연 시끄럽고 번잡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사장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의 불만을 가까이에서 직접 듣겠다는 의도다. 사장의 명함에도 ‘CEO’ 대신 “Chief Client Service Officer‘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사장부터 고객들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위 자리에 오르기보다 이를 지키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있다. AC닐슨코리아 역시 뒤에서 따라오는 2위 그룹(TNS,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리서치인터내셔날 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정상의 자리를 지킬 것이냐”고 묻자 권사장은 “Back to the Basics”(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대신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리서치회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면 될 것이라는 얘기다.돋보기 / AC닐슨코리아를 이끄는 사람들본부장 최고전문가들로 구성AC닐슨코리아는 업계에서 ‘리서치사관학교’로 불린다. 최고의 인재를 뽑아 체계적인 교육을 시키기 때문이다. AC닐슨 출신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특히 이 회사는 여성인력을 잘 활용하기로 이름 높다. 전체직원 중에서 여성이 48%를 차지하고, 부장급 이상 19명 가운데도 7명이 여성이다.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권오휴 사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신문기자(구 서울신문)로 출발해 광고대행사(오리콤, 한컴, 나라기획 등)에서 잔뼈가 굵었다. 레오버넷코리아 사장으로 있다가 지난 98년 AC닐슨코리아 대표이사로 스카우트됐다. 시장을 읽는 눈이 빠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본부장을 맡고 있는 양영렬 전무(소매유통조사본부), 신은희 이사(소비자조사본부), 황덕현 이사(미디어리서치본부) 등은 각 분야 최고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교육학과 출신인 양전무는 미디어리서치 이사와 NFO코리아 부사장을 지냈다.신이사는 유타주립대 심리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으며 95년 입사해 마케팅조사 팀장 등을 거쳤고, 회사 내 첫 여성 임원으로 기록돼 있다. 황이사는 미국 오클라호마대 석사 출신으로 맥켄에릭슨 매체기획팀장과 부산방송 기획실 팀장 등을 거쳐 AC닐슨코리아에 영입됐다. 현재 고신대와 동의대의 겸임교수로도 활약하고 있다.직원들의 맨파워 또한 업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입사하면 직책과 업무에 따른 다양한 교육과정을 소화해야 한다. 특히 리더십 교육과 같은 일반관리자 교육뿐만 아니라 특정 제품이나 분석기법 등에 대한 실무교육을 체계적으로 받기 때문에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해외교육과 외부기관 교육도 빼놓을 수 없다.이에 따라 AC닐슨 출신은 업계에서 자주 스카우트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일반리서치회사보다 일반기업체의 마케팅이나 마케팅리서치 분야로 많이 진출한다는 점. 한국존슨, 한국코카콜라, LG, CJ, 한국타이어, BAT, 필립모리스를 포함한 많은 회사에서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