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히트 다마고치, 외화내빈의 장사…시장개발팀 운영 3년 만에 고수익 체질로 변신

일본에 ‘반다이’라는 완구회사가 있다.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지난 97년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휴대형 전자장난감 ‘다마고치’를 만든 메이커다. 손바닥보다 작은 전자장난감 내부에서 공룡알을 키우는 식으로 갖고 놀도록 만들어진 ‘다마고치’의 인기는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일본의 경우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여고생, 직장여성, 샐러리맨들까지 열광하면서 ‘다마고치’는 한때 일본의 대표장난감으로 각광받았다. 품귀사태가 오래가면서 물건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시중에서는 반다이가 재고를 조절하는 식으로 인기를 조작하고 있다는 악성루머까지 나돌기도 했다.물건을 창고에 쌓아놓고 있으면서도 소비자들의 애를 태우고 붐이 오래가도록 하기 위해 시중에 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반다이 본사에는 왜 물건을 내놓지 않느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일본 완구업계에서는 97년 한 해 동안 팔려나간 ‘다마고치’가 줄잡아 2,000만개는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당 1,000엔씩 친다 해도 잘 만든 장난감 하나가 200억엔의 거금을 반다이에 안겨주고 돈방석에 올려놓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하지만 현실은 영 딴판이었다. ‘다마고치’ 대박이 터진 직후인 98년 반다이의 매출은 3,000억엔에 육박했지만 이익은 날개가 꺾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99년에는 경상손익에서 47억엔의 적자를 냈다. 겉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전형적인 외화내빈의 장사를 한 것이었다.초대형 히트를 날리면서도 엉뚱하게 산더미 같은 적자를 끌어안은 반다이의 실패원인은 한마디로 시장분위기를 읽지 못한 데 있었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다마고치’ 붐이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으로 믿은 채 뒤늦게 생산량을 마냥 늘린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97년 당시 관리업무를 관장하고 있던 다카스노 다케오 현 반다이 사장은 “무언가 이상했다”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다마고치’를 구하러 여기저기 상점을 돌아다니는 소비자들의 모습이 TV 화면에 비칠 정도로 일본 열도가 ‘다마고치’ 열풍에 휩싸이자 홍콩 등 해외에서는 모조품 업자들이 잽싸게 가짜를 내놓기 시작했다.일본시장에 물건을 대느라 해외로 눈을 돌리지 못했던 반다이가 나중에 유럽시장 개척에 나섰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홍콩산 모조품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서 반다이는 오히려 “가짜가 아니냐?”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시련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선 완구점들에 물건을 대주기 위해 위탁생산공장을 있는 대로 늘려놓았던 반다이에 이번에는 재고문제가 엄청난 골칫거리로 다가왔다. ‘다마고치’의 인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일선 완구점들은 경쟁적으로 물건확보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품귀 현상이 오래 가기라도 한다면 그만큼 손해라는 인식에서였다.완구점에 차질 없이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라인은 잠시도 쉬지 않고 24시간 풀가동했다.그러나 열기가 식자 ‘다마고치’는 한순간에 찬밥신세로 변해버렸다. 싫증을 낸 소비자들은 아무리 ‘다마고치’가 상점 앞에 수북이 쌓여 있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일선 완구점들로부터는 불만, 불평과 함께 반품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다카스노 사장은 “당시 회사측의 판단이 3개월 늦었던 탓에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며 “한 달에 무려 100만개씩이나 재고가 늘어났다”고 혀를 내두르고 있다. 그는 현장, 다시 말해 판매 일선의 분위기를 잘아는 젊은 사원들의 목소리가 상층부에까지 전달되지 못했던 데서 실패의 싹이 텄던 것이라며 정확한 시장정보를 몰랐던 것을 지금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대히트와 대실패를 함께 겪은 ‘다마고치’의 사례를 지켜보면서 다카스노 사장은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직후인 지난 99년 4월 시장개발팀이라는 이름의 별부대를 신설했다. 일선 완구점들의 돌아가는 사정, 소비자들의 목소리, 시장분위기를 보다 생생하게 듣기 위해서였다.시장개발팀은 15명의 젊은 신입사원들로 구성돼 있다. 반다이의 기존 사내 분위기와 문화에 젖지 않은 사원들일수록 보다 객관적으로 반다이를 평가하고 바라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사원은 매주 월요일 오후 1시만 되면 캐주얼 차림으로 본사 회의실에 모인다.그리고 자신들이 회의 당일 아침까지 취합하고 작성한 50~60쪽 분량의 ‘순회보고서’를 토대로 동료팀원들과 대화하고 머리를 맞댄다.순회보고서의 내용은 상세하기 이를 데 없다. 일선 완구점 주인의 요망사항에서 전일 열린 판촉 이벤트의 상황, 경쟁사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 매장 개선 효과에 이르기까지 회사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빼곡히 들어 있다. 도표, 사진도 수두룩이 있다.이 같은 보고서는 오전 11시까지 사장과 각 사업부에 전해진다. 보고서를 접한 각 사업부는 부 차원의 의견과 대응방안을 서둘러 마련한 뒤 책임자를 오후의 시장개발팀에 참석시켜 뒷일을 협의한다.예컨대 “봉제인형을 사러온 주부고객이 인형의 대상연령이 12세 이상으로 표기된 것을 보고 그냥 돌아갔는데 굳이 연령을 그렇게 정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개발팀의 지적에 사업부가 개선책을 조속히 마련해 내놓겠다고 답변하는 식이다. 시장개발팀 직원들은 일선 시장의 정보를 하나라도 더 주워담기 위해 회사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월요일 오후에만 회의를 위해 들를 뿐 철저히 시장과 현장을 누비고 다니도록 지시를 받고 있다.시장과 소비자의 소리를 듣고 수집하는 것 외에 시장개발팀에 주어진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붐’에 의한 경영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기와 붐에 취해 시장에 나타난 적신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을 막아주는 조기경보 차임벨과 같은 것이다. 열기가 식어버릴 때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 채 생산량을 마구 늘렸다 홍역을 치렀던 과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음은 물론이다.다마고치 선풍 세계로 확산 야욕시장개발팀원들은 일선 완구점에 수시로 들러 상점분위기를 살피는 데 안테나를 최대한 곤두세운다. 특히 가게 입구나 매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쏟으며 이를 통해 언제 상품의 인기가 사그라질지를 감지한다. 따라서 팀원들에게는 완구의 주고객인 초등학생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절대적인 단서가 된다.“우리 학교에서는 A라는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은지 한참 됐는데….”이런 류의 대화는 금쪽같은 판매정보가 된다. 팀원들은 아무리 도쿄의 수많은 학교에서 특정 장난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해도 2~3개의 학교에서는 반드시 싫증을 내기 마련이라며 이 같은 대화, 신호가 나타날 때야말로 인기, 붐이 식을 것에 대비하는 보고서를 작성할 때라고 믿고 있다.다카스노 사장은 시장개발팀원들이 캐오는 시장정보와 분위기야말로 판매와 재고 데이터를 아무리 분석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라며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이와 함께 매출이 쑥쑥 늘고, 판매에 신바람이 날 때일수록 이 같은 정보에 더 유념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반다이는 시장개발팀을 본격 가동한 이후 톡톡히 효과를 보고 있다. 99년 3월 말 결산에서 38%에 달했던 비수익 아이템(팔아봤자 별 돈이 되지 않는 장난감들)이 3년 만인 2002년 3월 24%로 뚝 떨어지는 단맛을 봤기 때문이다. 또 이 같은 호조를 바탕으로 오는 3월 말 결산(2002회계연도)에서는 245억엔이라는 사상 최대의 경상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다카스노 사장은 경영개혁, 비수익사업의 정리와 함께 철저한 이익중시 경영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만족해하고 있다. 그는 반다이가 고수익체질로 탈바꿈하는 데는 시장개발팀의 공로가 특히 컸다고 지적한 뒤 앞으로 1~2년 후 ‘다마고치’를 다시 한 번 시장에 내놓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시장상황과 수요 예측에 실패한 탓에 대히트의 빛이 바랬지만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면서 ‘다마고치’ 선풍을 세계시장으로 확산시키겠다는 다짐이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