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수입선 다변화' . 항공 '헤지수단 마련' . 해운업계 '운임인상' 등
‘이대로 가면 큰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지가 더욱 분명해지면서 유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정유, 항공, 해운업계 등은 그야말로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돈다. 이들 기업은 유가급등은 물론 전쟁발발 즉시 별도의 비상대책팀을 가동해 준비해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단계적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정유업계가파른 유가 오름세와 더불어 이라크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정유업계의 고민은 가격과 수급문제로 좁혀진다. 업계는 보통 배럴당 1달러가 오를 경우 국내 유가에 13원 정도 반영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1월부터 3월 초까지 3회에 걸친 잇단 유가인상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는 상황이다.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마냥 기름값을 올릴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유가가 40달러까지 올라가면 적어도 지금보다 20~30원 이상 인상요인이 생기지만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뒤따른다.더 큰 문제는 돈이 있어도 원유를 살 수 없거나 구입한 원유를 우리나라까지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다. 물론 이번 중동사태가 ‘제3차 오일쇼크’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수입선 다변화 등 비상대책을 수립하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SK(주)는 본사 및 두바이, 런던지사 등을 통해 석유시장 및 유가동향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등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SK의 유가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첫째, 이라크 내 국지전으로 조기 종결될 경우 배럴당 35달러 이상 일시에 급등했다가 20~25달러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둘째, 이라크의 무차별적 보복응전으로 석유시설 및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인접 석유국들이 수출에 차질을 빚으면서 배럴당 35~40달러, 최고 50달러까지 치솟는다는 것. 셋째, 전쟁위험이 해소될 경우 유가가 점진적으로 하락해 25달러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최악의 상황인 두 번째 시나리오에 대한 대비책도 이미 마련했다. 우선 중동 주요 산유국과의 유대관계를 활용해 유사시에도 도입물량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물량 우선권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것.이와 함께 나이지리아, 앙골라 등 서아프리카, 러시아 및 브라질, 베네수엘라, 멕시코 등 남미산 원유를 조기에 확보해 수입선 다변화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SK 관계자는 “중동지역과의 장기계약은 총도입물량의 65%선으로 원유도입선 다변화를 꾸준히 추진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LG정유도 이라크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에 대비해 다각적인 대책마련에 나섰다. 시나리오는 단기전(1개월 전후)과 장기전(4~6개월)으로 구분했다.이중 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이라크 주변국가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중심으로 원유 도입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정유업체 중 중동 의존도가 50%로 가장 낮은 편이지만 그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원유공급선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최소의 비용으로 원유수급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현대오일뱅크는 전쟁이 없거나 4~6주 단기 3개월 정도 중기, 장기 등 네 가지 시나리오 중 4~6주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예측했다. 만약에 장기화될 경우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 의존도가 80%로 리스크가 적잖은 형편이지만 최악의 경우 정부 차원의 비축유 활용을 검토하고 있다.에쓰오일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100% 원유를 공급받고 있지만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페르시아만(걸프)에 문제가 생겨 항구가 봉쇄되더라도 건너편 홍해 쪽에서 수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항공업계항공업계는 유가급등에 따른 피해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보통 배럴당(항공유) 1달러가 오르면 대한항공은 월 25억원, 아시아나항공은 8억원 가량이 공중에서 날아가 버린다. 따라서 각종 헤지를 통한 피해 축소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대한항공은 당초 올 1분기 항공유가격을 배럴당 34달러로 예상했지만 3월 중순 들어 35억달러를 넘나드는 탓에 걱정스러운 모습이 역력하다. 다만 이 같은 오름세가 단기간에 끝날 경우에는 자체 비축유만으로도 충분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현재 대한항공은 인천공항 인근 율도에서 자체 비축기지를 운영 중이다. 이곳에는 한국발 항공평이 한달간 사용할 수 있는 85만배럴의 항공유가 저장돼 있다. 또 한국공항공사와 인천공항급유시설주식회사가 비축하고 있는 90만배럴 중 40만배럴을 이미 확보해 놓고 있어 한시름을 덜었다.이밖에 국제금융기관과 투자회사를 통한 헤지도 염두에 두고 있는 대응책이다. 이미 전체 항공유 소요량의 30%까지 헤지를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사용하면 오히려 비용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유가동향을 지켜보면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아시아나항공은 요즘 ‘소모성 경비 10% 줄이기 운동’이 한창이다. 판촉비 및 광고선전비는 아예 3월 말까지 집행을 유보했다. 물론 신규투자도 보류했다. 아시아나항공은 SK(주)와 맺은 헤지 계약을 통해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더라도 큰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올 1월부터 3월 말까지 3개월간 총구매량의 약 40%에 달하는 90만배럴을 상한 35.78달러, 하한 28.60달러에 구입하기로 계약을 체결한 것. 이 계약을 통해 3월 말까지 항공유가가 40달러를 넘어서더라도 상한 35.78달러 이하에서 항공유를 공급받게 된다. 굳이 3월 말까지 계약을 체결한 것은 미국의 대이라크 공습이 현실화되더라도 단기간에 끝날 것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해운업계해운업계는 유가급등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가비용 때문에 울상이다. 선박연료유인 벙커C유가격이 톤당 180~210달러 선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선박연료 유가가 급격히 상승함으로써 연간 770만t, 금액으로는 10억달러 이상의 연료유를 소비하는 우리나라 해운업계는 적어도 5억달러 이상 막대한 손실이 뒤따를 것으로 우려했다.한진해운은 지난 1월부터 서울 여의도 본사와 부산운항팀에 ‘비상대책반’을 설치하고, 모든 선박 및 전세계 각 지점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비상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면 대책반 인원을 늘릴 계획이다.한진해운은 국제유가 인상에 따른 헤지 차원에서 장기선의 경우 대다수 화물을 연간 운송계약 체결 때 3개월마다 연료비 증가요인을 반영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주항로는 (40피트 기준) 2003년 1분기 185달러 수준이나 유가상승에 따라 2분기 230달러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단기대책으로 유가부담 최소화를 위해 각 항로별로 유가가 저렴한 로테르담항과 싱가포르항에서 연료를 집중 공급받기로 했다.현대상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운임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현대상사 관계자는 “유럽항로의 경우 20피트 기준으로 1월 56달러, 2월 70달러, 3월에는 97달러, 4월에 112달러 정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이처럼 유가가 올라가면 유가할증료가 덩달아 올라가기 때문에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전쟁이 발발할 경우 선박안전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보고 비상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 놓고 있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