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는 금보다 귀하다?’불황한파로 소비 최전선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곳이 일본시장이지만 금값보다 훨씬 비싼 초고가 화장품(크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 화제다.일본의 금값은 소매가를 기준으로 할 때 1g당 1,500엔 안팎. 40~50g의 꼬마용기에 담긴 여성용 고급 화장품의 판매가는 대략 3만엔을 전후한 수준에 형성돼 있지만 개당 9만~10만엔을 호가하는 초고가 제품이 소리 없이 상한가 인기를 누리며 업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금보다 비싼 화장품이라는 닉네임의 효시가 된 고세의 코스메데코르테AQ크림 밀리오리티(45gㆍ9만엔)는 2000년 12월 첫 발매 후 2년이 지났지만 회사 관계자들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인기가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시세이도가 지난 96년 선보인 25g에 5만엔짜리의 크림은 2001년 리뉴얼 후 매출이 급상승, 올해는 지난해보다 판매량이 줄잡아 30%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00년 1월부터 40g, 7만엔의 가격으로 센추리 에센스 크림 발매에 나선 가네보는 목표로 잡았던 연간 1만개의 두 배에 달하는 실적을 꾸준히 올리고 있어 함박웃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초고가 화장품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외국 브랜드 제품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의 시슬리를 비롯한 구미 화장품업체들은 일본여성들이 고가 진열대로 몰려들자 앞다퉈 고가 신제품을 투입하며 판로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일본 메이커들은 메이커들대로 시세이도가 2002년 말 40g에 10만엔을 호가하는 크림 ‘엔파워라이저’를 신전략 상품으로 내놓는 등 후속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애용여성들, “노화방지를 위한 선행투자”초고가 화장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소비자들의 상당수가 가격저항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용이론의 진보와 최신성분의 개발로 초고가 제품이 노화방지 등에 좋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심리가 적잖다는 지적이다.이들은 소비자들이 화장품에 치르는 돈(비용)대 효과의 만족도는 연령과 개인적 주관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피부가 탄력적인 젊은 소비자들로부터는 ‘별 효과 없이 값만 비싸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향기와 분위기를 즐기며 자신을 위한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으려는 고객들은 계속 제품을 찾는다고 전문가들은 덧붙였다.화장문화연구소의 무라사와 히로히토 대표는 “피부과학과 미용기술의 발달로 화장품들간에도 가격만 가지고 비교할 수 있는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피부노화를 걱정하기보다 차라리 기분만이라도 젊음을 유지하며 여기에 육체를 맞춰 보려는 심리가 초고가 화장품의 인기 이유가 된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전문가들의 진단은 소비자들의 경험 및 반응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도쿄 미나토구에 거주하는 40세 주부는 “옷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것을 살 수 있지만 피부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초고가 제품에) 과감한 투자를 했다”고 털어놓았다.이 주부는 깜짝 놀랄 만큼 값이 비싼 것은 사실이지만 3일간 시제품을 써 본 후 선택했다며 피부가 맑아진 것 같다고 만족해하고 있다. 회사원인 45세의 여성은 “금값보다 비싼 화장품을 쓴다고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노화방지를 위한 선행투자로 생각했다”고 말하고 있다.초고가 화장품 메이커들은 가격이 파격적으로 높게 책정된 데 대해 워낙 값비싼 원료를 많이 쓰는데다 연구개발기간이 오래 걸려 어쩔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그러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언론은 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불황한파에 강한 기업만이 살아남는 것이 일본경제의 오늘이지만 젊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구 덕에 화장품 시장은 디플레이션의 무풍지대가 되고 있다는 시각에서다.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