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익 큰폭 하락으로 주가 추락할 것”

흔히 리서치를 일컬어 ‘증권사의 꽃’이라고 한다. 주가를 맞히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리서치센터에는 기업의 주가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 외에도 ‘이코노미스트’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그들이 하는 일은 금리나 환율 등의 경제지표를 분석해 주식시장의 큰 그림을 그려주는 것. 올해로 이코노미스트 경력 8년차인 고유선 메리츠증권 과장(32)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분석으로 주목받고 있다.경제변수의 흐름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주식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기 때문이다.3월4일 발간된 <톱다운 방식으로 본 기업이익 흐름과 회복 모멘텀 designtimesp=23564>은 일부의 낙관론을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증권가에서 화제가 됐다. 이 낙관론은 ‘올해 기업이익이 많이 날 것이란 점을 감안할 때 주가하락은 저가매수의 기회’라는 것. 고유선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이익, 큰 폭으로 줄어들 가능성 있다’는 화두를 던지며 주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내비쳤다.톱다운(Top Down) 방식이란 무엇이며 어떤 이유로 이 방식을 쓰셨나요.말 그대로 큰 경제흐름을 이용해 기업이익을 분석하는 방식이죠. 이를 이해하려면 바텀업(Bottom Up)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는 톱다운과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분석기법이죠.증권사의 중장기적 투자견해를 뜻하는 ‘하우스뷰’는 바텀업 접근방식으로 산출돼요. 쉽게 말해 일단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의 주가를 전망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주가지수를 예상하는 것이죠. 애널리스트들이 거래소와 코스닥의 모든 종목을 분석하지 않지만 적어도 시가총액의 80~90%에 해당하는 종목은 분석을 하거든요. 반면 바텀업 방식의 문제점은 거시경제 흐름 분석이 다소 약하다는 점입니다.이와는 반대로 톱다운 방식은 거시경제, 즉 환율이나 물가 혹은 수출 등의 변수를 고려한 뒤 이것이 기업의 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변수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바텀업 방식이 효율적이죠. 개별기업의 주가움직임까지 알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처럼 경제변수의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오히려 톱다운 방식이 효과적입니다.톱다운 방식을 적용해 본 결과는 어떻습니까.기업이익이 생각만큼 좋지 못하리란 결론을 얻었습니다. 증권사들은 으레 연초면 기업의 이익전망을 하죠. 올해의 경우 국내 기업이 벌어들일 예상이익은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를 훌쩍 넘는 수준이라고 분석된 바 있습니다.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니 오히려 지난해보다 기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선 무역수지와 교역조건의 악화가 이유입니다. 또한 기업의 이익수준을 좌우하는 큰 변수인 내수도 뚜렷한 회복이 기대되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입니다.그렇다면 과연 무역수지는 얼마나 줄어들까요. 또한 증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무역수지 흑자규모는 지난해의 108억달러에서 올해는 50억달러대로 추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원인은 유가 및 교역조건 탓입니다. 요즘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치솟고 있습니다.이는 국내 기업의 원유 수입금액을 급증시키며 이에 따라 무역수지 악화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실제 올 들어 무역수지는 2개월 연속 적자입니다. 반면 미ㆍ이라크전쟁이 끝난다면 유가도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증시에 호재죠. 하지만 이후에는 교역조건 악화(표2 참조)로 인해 수출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울 듯합니다.교역조건이란 쉽게 말해 만일 환율이 올랐을 때 그대로 인상폭을 취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예컨대 1달러에 1,000원이던 환율이 1,500원으로 오른다면 앉아서 500원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가령 수출업자의 힘이 약하다면 수입업자는 환율인상을 이유로 단가를 내리려고 하겠죠.국내 기업의 과거 사례를 분석해 보니 환율이 인상됐을 때는 수출단가도 크게 낮아지고, 반대로 환율이 인하될 때는 수출단가 인상폭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올해는 환율인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운데다 혹시 인상이 되더라도 그것이 기업이익 상승으로 이어지는 폭은 크지 않을 전망입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증시에는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기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두 번째 근거로 내수 수요 부진을 들었습니다.올 한해 내수소비는 부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가계 부문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죠. 또한 경기가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데다가 전쟁에 대한 불확실성 문제도 있기 때문입니다.아울러 국내 경기가 물가는 오르는 가운데 성장률이 둔화되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것도 문제입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성장률은 둔화되면서 물가는 높았던 98년에 기업의 이익은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태그플레이션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당분간 기업이익 둔화세는 불가피할 것입니다.당분간은 주가흐름이 좋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군요. 그렇다면 회복기미는 없습니까.주식시장의 영원한 화두는 ‘주가는 기업이익에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제쯤 기업이익이 회복할지를 먼저 알아봐야 하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3~4분기에는 회복신호가 나타날 듯합니다. 이런 결론은 영업이익지표를 통해 얻을 수 있었습니다.이것은 경제성장률(매출액)에서 임금상승률(노동비)과 생산자물가 상승률(생산비)을 뺀 영업이익이 언제쯤 개선될 것인지를 본 것입니다. 비록 경제성장률의 상승폭은 작을 것으로 보이지만, 유가 및 생산자물가는 2분기 이후 안정세가 예상됩니다. 따라서 영업이익도 늘어나게 되는 셈이죠.이와 더불어 2분기에는 ‘반짝’ 상승도 기대해 봄직합니다. 장기투자자라면 미ㆍ이라크전쟁 이후부터 서서히 주식 보유비중을 늘려가는 전략을 세우는 것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합니다.부부가 모두 이코노미스트라고 들었습니다. 의견교환은 어떻게 하시는지요.처음에는 서로 ‘갑론을박’하며 의견을 교환했죠. 요즘은 잘하지 않아요. 결국 싸우게 되거든요. 사실 의견은 서로가 속한 증권사의 투자전략팀과 조율하는 편입니다. 또한 한국은행의 정책과, 재정경제부의 경제분석과와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한은에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자료를 보냅니다. 재경부에는 제가 쓴 보고서를 모두 e메일로 전송해요. 가끔은 재경부로부터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며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