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만 제일기획 사장(59)은 지난 4월1일 노동부가 주관한 ‘2003 남녀고용평등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여성이 전체인력의 25%에 이르는 등 그 비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인력의 능력을 육성, 활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물론 삼성은 90년대 중반부터 남녀 및 학력을 따지지 않는 인사원칙을 적용해 왔다. 따라서 배사장은 그 원칙을 잘 지켜온 삼성의 경영자들 중의 한 사람일 뿐 이다. 그럼에도 제일기획에 유독 여성인력이 많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이에 대해 그는 “여성을 위한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도 아닌데 광고업의 특성상 매년 여성의 입사율이 높았다”며 “여성이 남성보다 도전정신이 강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겸손해했다. 실제 올 2월에 채용된 신입사원 중 50%가 여성이었다.배사장은 부인과 두 딸 등 세 여성에게 둘러싸인 가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단지 남녀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 우수한 능력과 업적을 보인 직원에게 보상하는 ‘공평한 경영자’일 뿐이다.그가 여성에게 ‘특별배려’를 하는 게 있다면 여성전용 휴게실인 ‘애뜨락’을 운영하는 게 전부다. 이 같은 그의 남녀평등원칙에는 남다른 경영철학이 있다.“한마디로 요약하면 ‘파란(破卵)경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기존의 관습과 틀에서 벗어난 발상의 전환을 핵심가치 창출과정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강화시킴으로써 고객만족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특히 광고분야는 업의 특성상 여성인력의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되는 분야 중의 하나로 여성인력에게 차별이 주어지는 기존의 고용방식은 회사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경과만 초래합니다.”배사장은 파란경영의 3요소로 3C, 즉 ‘Change’(변화) ‘Competition’(경쟁) ‘Customer’(고객)를 강조한다. 이와 함께 파란경영을 뿌리내리기 위해 ‘파란 경쟁력 위원회’를 구성, 매월 각 부문별 과제의 추진현황을 점검하고, 사장과 사원이 격의 없이 대화하고 토론하는 ‘파란마당’, 매주 토요일에는 직급 및 직종을 떠나 동료애를 느낄 수 있는 ‘Storytelling Breakfast’(이야기가 있는 아침)을 운영하고 있다.배사장의 공평하고 능력위주의 인사는 지난 2000년 30대 카피라이터 최인아 여성팀장을 임원으로 전격 발탁, 상무로 승진시킨 데서 잘 나타난다. 최상무는 삼성그룹에서 유일한 공채출신 여성임원이다. 또 여성간부의 비율도 매년 꾸준히 증가해 최근 4년 동안 여성간부 비율이 2배 이상 증가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임직원의 역량을 육성하기 위한 국내외 장단기 연수 등 교육에 있어서도 남녀를 불문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인력 중에서 선발하는 사내공모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해외 장기 연수 대상자 10명 중 50%인 5명이 여성이고, 이중 3명이 기혼여성이었습니다.”삼성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핵심인재에 대해 유난히 강조해 왔다. 때문에 삼성 계열사들이 핵심인재를 스카우트하고 키우는 데 주력해 왔다.배사장의 핵심인재관은 뭘까.“회사명인 CHEIL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Creative(창조), Humanity(인간성), Enthusiasm(열정), Intelligence(지식), Leadership(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얘기합니다.”배사장은 이 같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재 양성 프로그램으로 CPBM(Cheil Power Brand Management), GCNP(Global Cheil Northwestern Program), 선진기업 파견 등을 들 수 있다.그중 CPBM은 지난 2001년 성균관대와 공동으로 산학이 연계한 국내 최초 및 최고 수준의 브랜드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GCNP는 글로벌 마케팅 과정으로 미국의 노스웨스트대에 마케팅 과정을 개설해 글로벌 핵심인력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총 10주 과정으로 5월부터 시작할 예정이다.선진기업 파견 프로그램은 제일기획과 업무제휴를 맺고 있는 미국의 FCB사와 CCA(Cheil Communications America), 일본의 하쿠호도사에 직원을 파견해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실제 선진사의 광고업무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현재 매년 10여명의 직원이 파견되고 있으며 미국은 1년, 일본은 6개월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향후 광고시장은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커다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광고업계 최대회사의 CEO인 배사장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급변하는 기술발전의 여파로 미디어의 변화방향은 크게 디지털화, 통합화, 쌍방향화, 그리고 개인화가 돼가는 추세입니다. 이런 변화와 관련해 볼 때 광고시장 역시 매스미디어에 기반한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부터 이제는 소비자 개개인의 직접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동시에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갈 것으로 보입니다.”제일기획은 지난해 광고취급액이 1조원을 넘어서는 등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광고대행사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국내가 아닌 해외로 눈을 돌릴 시점이다. 배사장은 이 부분에서 나름대로 확고부동한 소신이 있다.“아마도 광고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글로벌’일 것입니다. 글로벌 능력 없이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죠. 따라서 제일기획의 21세기 비전은 한마디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광고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5년 후 광고업계는 완전히 글로벌시장에 편입될 것입니다. 현재 외자계가 국내 시장에 들어 온 것은 자본 참여에 불과한 수준으로 점유율은 50%에 가깝지만 경쟁력은 여전히 국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5년 후에는 국내도 완전히 글로벌 수준의 경쟁에 도달할 것으로 보입니다.”배사장은 취미는 그림감상이다. 틈틈이 서울 인사동 등의 화랑을 돌아다니며 전시된 그림을 보노라면 쌓였던 스트레스가 오간 데 없이 확 가신다고 한다.약력: 1944년 충주출생. 63년 보성고졸. 67년 고려대 축산학과졸. 73년 중앙일보 개발본부 축산사업부 입사. 93년 호텔신라경영지원실 전무. 94년 삼성그룹 비서실 전략홍보팀장. 96년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 객원연구원. 97년 에스원 대표이사. 2001년 3월 제일기획 대표이사 사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