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이 미워!’ 농심이 라면업계를 휩쓸며 ‘천하통일’을 눈앞에 둔 요즘 경쟁사 CEO들의 입에서 이런 말이 거침없이 나오지 않을까. 징조는 여기저기서 포착된다.최근 라면의 원조회사 ‘삼양식품’의 대표이사가 돌연 오너 2세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바뀌었다. 삼양식품이 전문경영인 체제로 되돌아간 것은 농심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 것에 따른 고육책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삼양의 CEO 교체가 있기 보름 전 빙그레는 라면사업을 포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빙그레가 백기투항한 셈이다.패자가 있으면 승자가 있는 법. 이처럼 경쟁사 CEO들이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반면, 신춘호 농심 회장(71·사진 )은 요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애써 감추기에 바쁘다.40년 전 친형인 신격호 롯데 회장과 결별하고 식품회사를 차릴 때만 해도 성공여부는 자신도 반신반의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국내 굴지의 유통그룹을 일군 신격호 롯데 회장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성공했다.농심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대. 그것도 지난 수년간 파죽지세의 기세로 영토를 확장해 왔다. 라면뿐만이 아니다. ‘새우깡’으로 대표되는 스낵과 ‘삼다수’로 알려진 생수(페트병)시장에서도 경쟁업체들을 멀찌감치 따돌렸다. 지난해 1조3,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순이익만 800억원. 부채비율은 70%에 불과해 롯데그룹의 74%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다.이처럼 라면시장에서 ‘농심천하’를 일군 신회장은 어떤 사람일까. 연간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기업의 오너이지만 그를 잘아는 이가 많지 않다. 그래서 ‘베일에 싸여 있다’는 소리도 흔하게 듣는다. 지난 40년 동안 한 번도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 외에는 일절 대외활동을 하지 않는다.2000년 고희를 맞아 자서전<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 designtimesp=23734>을 출간했지만, 이를 비매품으로 해 일절 바깥에 나돌지 못하도록 했다. 오죽하면 기업홍보팀도 신회장 관련 자료제공을 거절하는 것은 물론 아예 ‘묵비권’을 행사할 정도다.이처럼 신회장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나서기를 꺼려하는 것은 ‘경영자가 밖으로 나돌면 회사가 어려워진다’는 철학 때문이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그렇지만 사업에서만은 정력적인데다 철두철미한 스타일이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부산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형 밑에서 일하던 신회장은 1963년 롯데공업사(농심의 전신)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을 꿈꾼다.처음에는 향료와 TV조립공장을 세우려고 했지만 이 계획이 유야무야되면서 라면개발에 나서게 된다.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면 한국에서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지만 당시 신격호 롯데 회장은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자서전에서 “오히려 형의 반대가 일종의 오기를 불러일으키면서 나의 라면사업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국내에는 이미 삼양식품 등이 라면을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첫 제품의 브랜드명을 ‘롯데라면’으로 지었다.그러나 하마터면 라면사업을 접을 뻔하기도 했다. 라면시장에 진출한 지 4년이 넘도록 시장점유율이 10%대를 맴돌았기 때문이다. 누적적자로 1969년 말 부채비율이 1,000%가 넘었다. 할 수 없이 선발업체와 라면설비의 매각협상을 추진하게 된다. 이 와중에 1970년 2월 내놓은 인스턴트 자장면이 히트를 치면서 한숨을 돌렸다.위기를 넘은 신회장은 결국 롯데 짜장면 이후 소고기라면, 짜파게티, 육개장사발면, 김치사발면, 너구리, 안성탕면, 신라면 등 히트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라면왕’에 등극하게 된다.이들 제품 중 안성탕면이 1985년 농심을 라면업계 1위로 끌어올린 역작이라면 ‘신라면’은 세계적인 라면회사로 거듭나게 한 ‘결정적’ 작품이었다. 신라면은 현재 세계 70개국에 수출되며, 지난해에만 국내에서 1,000만개, 9,000억원어치가 팔린 ‘불멸의 히트작’이다.신라면에 버금가는 히트작인 새우깡은 국내 스낵시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라면신화’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새우깡의 탄생은 신회장이 일본출장길에서 새우스낵 한 봉지를 사먹은 것이 계기가 됐다.바삭바삭한 질감과 씹고 난 뒤에 입 안에 남는 고소한 향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때 신회장은 ‘바로 이거다’ 하는 영감이 스쳤다. 제품명도 직접 지었다.발음이 서툰 어린 딸이 ‘아리랑’을 부른다는 것이 ‘아리깡 아리깡~’ 하고 부른 데서 착안을 해 ‘아리’를 떼고 ‘새우’를 붙였다. 지난 30년간 새우깡의 누적판매량은 54억6,000만 봉지. 지구둘레를 약 34바퀴 돌 수 있을 정도의 대기록을 달성했다.85년 라면시장 1위 차지농심 관계자들은 신회장에 대해 한마디로 ‘보수적’이라고 표현한다. 그를 아는 재계 사람들은 ‘(보수성에서) 송상보다 차원이 높다’며 고개를 흔든다. 실제로 신회장은 곁눈질을 하지 않고 한우물만 판 것으로 유명하다. 80년대 들어 라면시장에서 1위에 올라서고 스낵시장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때 회사 내부에서는 사업다각화 목소리가 높았다.이에 신회장은 육가공 및 음료사업을 검토하기도 했지만 결국 보류시켰다. 1990년 후반 벤처 붐이 거세게 불 때도 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벤처투자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농심의 한 관계자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지 않을 정도’로 비관련사업에 대한 투자에 신중을 기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그렇다고 아예 고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농심기획과 농심엔지니어링은 그룹의 광고업무와 기술발전을 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분명히 신회장이 추진한 신사업이다.또 IMF 시절인 99년 과감하게 ‘제주 삼다수’ 판매사업을 시작한 것도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보게 한다. 당시 다른 회사들이 주춤거릴 때 상대적으로 막대한 광고비와 판촉비를 쏟아부으며 시장을 공략, 지금은 페트병 분야에서 50% 가량을 점유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말이다.신회장은 미래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하다. 국내에서는 이제 경쟁상대가 없다고 보고 있다. 해외시장도 1991년부터 진출, 10년 이상의 노하우를 갖고 있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현재 중국 상하이, 칭다오, 선양 등에 공장을 세워 현지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올해 해외부문에서 1억달러 이상을 올릴 것으로 자신한다.신회장은 올해 경영지침을 ‘질’로 정했다. 대다수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과 인재육성, 경영혁신 등을 화두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질’은 시대에 뒤처진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질”이라는 그의 경영관이야말로 오늘의 농심을 일군 원동력이 아닐까.돋보기 농심가 자식농사도 ‘대성공’3형제 경영참여 …서경배 태평양 회장은 사위신춘호 회장은 자식농사도 성공한 것으로 통한다.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는데 현재 3형제가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남 동원씨(45)는 1993년 부사장을 거쳐 부회장 자리에 앉아 안방살림을 맡고 있고 차남 동윤씨(45)는 율촌화학의 사령탑이다.삼남인 동익씨(43)는 대형슈퍼체인인 메가마트의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2세들은 신회장의 경영스타일을 빼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실경영’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녀 윤경씨는 서경배 태평양 회장과 결혼했다.신회장은 고 서성환 태평양그룹 명예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형제간은 과거에 불화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맏형인 신격호 롯데 회장과의 불화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돌았지만 이 또한 지금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농심 관계자의 귀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