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매출액 500억원 예상…국내 전기밥솥 시장 60% 점유

봐야 인생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배고파도 먹을 게 없어 굶다시피 밑바닥 인생살이를 한 사람.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겪은 쓰라린 인생경험이 오히려 최고의 기업을 탄생시킨 인생단막극의 주인공을 만들었다.다름 아닌 대웅전기산업의 김용진 사장(58). 그는 국내 밥솥 시장을 평정한 전기밥솥의 ‘대부’로 통한다. 그가 1992년 출시한 전기압력보온솥은 세계 최초로 개발해낸 것으로 이후 국내 전기밥솥 시장의 패턴을 바꿔 놓았다.김사장은 “요즘 의료기기 분야로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인생의 기쁨을 다시 맛보고 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김사장은 군산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 1964년 국민대 야간학부에 입학한다. 밭떼기 농사로 근근이 생활하던 처지에 대학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주경야독을 해서라도 대학을 다니겠다는 신념으로 상아탑에 들어갔다. “집에서 한푼의 지원도 없는데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기 어려워 대학을 다닌다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그래서 그는 학생증을 맡기고 아이스크림통을 들고 시장을 누비고 막노동 현장을 기웃거리며 학비를 벌어보려고 온갖 일을 다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학비를 벌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김사장은 결국 1학년을 다니다 학업을 포기한다.그리고 이듬해 신촌에 3평짜리 사무실을 임대해 직원 2명과 옥외간판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밑천도 없이 시작한데다 기술도 없어 4년 만에 문을 닫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김사장은 밥을 배불리 먹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할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그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70년 초 전기밥솥(당시는 쌀만 가능했다)을 만들던 대원전기에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대문이 열려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들어갔습니다. 악착같이 팔았어요.” 실적이 좋자 회사에서는 그를 관리사원으로 배치해 방문판매 조직을 맡겼다.그당시 국내 밥솥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일본의 ‘코끼리’ 밥솥 등 수입품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국내 업체들도 10여개로 늘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국내 전기밥솥 시장이 뜨겁게 달궈지자 대원전기의 공동대표 중 한 사람이 1979년 대원가전을 세웠고 그도 함께 새둥지로 옮겼다.김사장은 대원가전에 5년 동안 근무하면서 전기밥솥 분야의 국내 선두권 업체로 키워냈다. 당시 업계는 김사장을 “전기밥솥 시장에서 큰일 낼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가 언제 창업할지가 늘 관심의 대상이었다.김사장은 1985년 4월 성수동에 20평의 허름한 공장을 임대해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경험을 살린 첫 제품으로 파티쿠커(냄비식 프라이팬)를 만들어 팔았다. 이어 6개월 후 고온에서도 깨지지 않는 플라스틱 약탕기를 내놓았다.그러나 플라스틱 약탕기에 문제가 생겼다. 용기에 이끼가 끼고 약도 잘 달여지지 않아 소비자들이 외면했다. 재산을 모두 날린 김사장은 친구가 끊어준 어음으로 회사를 근근이 꾸려나가며 여과기를 내장한 유리용기 스타일의 약탕기를 1986년 초 내놓으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가더라고요. 3년 동안 매월 2만개 이상 팔았습니다.” 그는 이때 주문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공장을 개봉동으로 확대 이전했다. “아침에 들어온 자재로 꽉 찼던 공장이 저녁에는 텅 비었죠.” 당시 약만 지어주던 한약방에서까지 약탕기를 사다가 약을 달여주었을 정도로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김사장은 시장을 읽는 혜안을 갖고 있다. 한약방에서 한약재를 달여주기 시작하자 가정에서의 약탕기 구매가 줄 것으로 판단하고 새로운 제품개발에 들어갔다. 역시 그의 예측은 적중했다. 약탕기 수요가 매년 줄어 현재 월평균 4,000~5,000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그가 1992년 10월 ‘전기압력보온솥’을 내놓자 업계는 깜작 놀랐다. 기존의 전기밥솥과 달리 쌀, 잡곡 등을 함께 넣어도 가마솥에서 한 것처럼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었던 것.밥솥은 주부들이 매장에서 줄을 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리에 팔려나갔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일본의 ‘코끼리’ 밥솥을 눌렀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현재 국내 전기밥솥 시장에서 점유율 60%를 상회할 정도다.김사장은 개발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내부 솥을 코팅해야 하는데 밥을 하고 나면 코팅비닐이 들뜨거나 열에 의해 솥의 형태가 망가지는 등 수백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그당시 맨손으로 솥의 열기를 확인하다 덴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있다.“대웅이 만든 밥솥을 우습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만든 밥솥이 일본 제품을 누르면서 TV, 냉장고 등 일본의 다른 가전제품이 국내에 발을 제대로 붙이지 못하도록 막은 일등공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대웅전기산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는 일본, 미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 10여개국에 수출도 하고 있다.김사장은 요즘 수술 후 요양 중인데도 회사에 나와 새로운 사업을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지난 2001년에는 큰곰의료기라는 법인을 세우고 발마사지기, 온열자극기(브랜드 드림파크)를 개발해 팔기 시작했다. 4월에는 환경사업을 추진할 대웅가이우스산업도 설립했다.“밥솥시장에 대기업들까지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21세기 산업의 키워드인 건강과 환경분야에 뛰어들게 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김사장은 특히 “온열자극기는 찜질ㆍ취침 자동 기능이 있어 소비자가 이용하는 데 편리하다”며 “이 같은 이유로 최근 한국표준협회로부터 신기술 으뜸상 ‘대상’을 수상했다”고 강조했다.회사측은 특히 온열자극기를 인도네시아의 한 기업과 2년간 900만달러 상당을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김사장은 “이번 계약은 인도네시아 업체가 대만과 일본의 제품을 비교 평가한 후 선택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큰곰의료기의 또 하나의 주력상품인 홍삼액제조기도 방문판매에서 벗어나 대형할인점, 백화점 등으로 다양한 판매망을 구축해 매출을 늘려나가기로 했다.김사장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장기적으로 중국에서 부품을 생산하기로 하고 중국의 한 기업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올해는 지난해보다 100% 가까이 신장된 매출 500억원과 경상이익 25억원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031-321-9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