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투명성과 책임성 높여...당장 도입가능성은 희박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빠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올해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선제적인 차원에서 어떤 경제처방이 필요한가. 여러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인플레이션 타깃팅 정책이 급부상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타깃팅이란 물가안정에 책임을 지고 있는 중앙은행이 인플레 목표치를 정한 후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책이다.이 제도의 기본구상은 특정 인플레이션 지표를 미리 선정해 1~2년의 중기시계하에 인플레이션 지표를 목표범위 내로 유지할 것을 대외에 공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준칙이라고 하면 ‘공식에 따라 금리를 고정하거나 통화공급을 일정 증가율로 확대’하는 것인 데 반해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몸에 꼭 끼는 의복’이라기보다 ‘헐렁한 의복’으로 비유된다.인플레이션 타깃팅을 도입하면 우선 중앙은행의 신뢰성뿐만 아니라 통화정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왜냐하면 인플레를 타깃팅할 경우 인플레 위험을 미리 차단하기도 하지만 물가가 목표수준 아래로 내려갈 경우 통화정책 완화를 통해 디플레 위험을 막을 수도 있어 중앙은행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반면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단점도 많이 안고 있다. 무엇보다 인플레이션 지정목표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부분 중앙은행들은 소비자물가지수(CPI)와 핵심소비자물가지수(Core CPI)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경우 민간소비지출(PCE) 디플레이터와 핵심민간소비지출(Core PCE) 디플레이터를 중시하고 있다.따라서 선택된 물가지표에 따라 인플레이션의 양상이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지표간의 차이로 인해 현재의 상황을 놓고도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또 지표간의 차이가 커질 경우 특별히 숫자로 정한 인플레이션 목표(a specific numerical inflation)는 유익하지 못하고 그릇된 정확성만 표시할 수도 있다.한 나라의 경제에 있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인플레이션 타깃팅은 오히려 각국 중앙은행들의 경기침체에 대한 대체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들은 그 대안으로 ‘비밀타깃팅’(stealth targeting)을 채택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그렇다면 현시점에서 인플레이션 타깃팅 제도가 급부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세계 각국들이 정책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문제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미 일본과 같은 국가는 정책당국에서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경제주체들이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좀비경제 국면에 몰리고 있다.이미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통화정책의 반감론 혹은 무용론이 제기된 지 오래다. 경제주체들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케인즈언의 통화정책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 통화공급 → 금리인하 → 총수요 증가 → 경기회복)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상황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이제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는 점이다.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따지는 테일러 준칙(Taylor’s rule) 등을 통해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낮게 나온다.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debt deflation syndrome)을 이용하기 위해 이미 적정수준보다 낮은 금리를 더 떨어드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이마저 가계부채 부실과 같은 경제주체들의 현금흐름(cash flow)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문제는 최근과 같은 증시와 경제여건하에서 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 총재들이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금리인하 정책들이 아무런 효과를 나타내지 못함에 따라 정책실기론과 함께 올 들어 잇달아 중앙은행 총재들이 교체되고 있다.그동안 그린스펀 의장은 고령문제로 계속해서 퇴임론에 시달려 왔다. 최근 들어 ‘금리를 적기에 내리지 못해 증시와 경기가 더 침체되고 있다’는 정책실기론까지 겹쳐 내년 임기 말에는 교체될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연초에는 영란은행 총재가, 지난 3월19일에는 일본은행 총재가 교체된 데 이어 오는 6월 말에는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교체된다.이처럼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갈수록 재정정책이 경기부양 수단으로 선호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중국과 같이 재정상에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방안이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과 일본처럼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국가들은 세금감면을 마치 유행처럼 추진하고 있다.공통적인 것은 두 가지 방안 모두가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효과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재정지출을 늘리는 방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총지출이 위축되는 소위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경기부양효과가 반감되고 있어 주목된다.세금을 감면하는 방안은 더욱 문제다. 요즘처럼 세율이 문제가 되지 않은 상태(래퍼곡선(Laffer curve)상 세율과 세수간의 ‘정(positive)의 관계’에 있는 정상지역)에서는 세금을 감면할 경우 우선 정부의 세수가 줄어들어 재정사정이 악화된다.동시에 민간 부문에서는 세금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정책 당국의 의도대로 소비되지 않고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저축됨에 따라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그만큼 총지출이 줄어들어 경기를 더욱 위축시킨다(crowding in effect).우려되는 것은 자국 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무력화 문제에 직면한 세계 각국들이 점차 인접국 혹은 경쟁국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수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물론 이 과정에서 통화마찰 혹은 통화전쟁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올 들어 위안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일본은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은 이런 요구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론적으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정책을 ‘근린궁핍화(近隣窮乏化) 정책’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런 점을 감안하면 디플레이션 타개책으로 인플레이션 타깃팅의 도입 필요성이 계속해서 제기될 것으로 보이나 지금 당장 도입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종전처럼 중앙은행 총재와 금리결정기구(우리의 경우 금융통화운용위원회)의 재량에 따라 통화정책이 결정되는 방식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