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30개국에 ‘코레이’ 수출… 토털패션 사업으로 제2의 증흥 꾀해

지난 1984년 말 육동창 (주)서전 회장(당시 54세)은 깊은 고민으로 밤잠을 설쳤다. 중견건설업체 전무로 일하던 그가 갑작스레 안경테사업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주변의 반대가 극심했기 때문.특히 그의 아내는 “남은 인생 편하게 살면 되지, 이 나이에 웬 사업이냐”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85년 1월 육회장은 “열악한 국내 안경시장에서 새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으로 직원 3명과 함께 기어코 출사표를 던졌다.그로부터 18년이 지난 현재, 무모하게 보였던 그의 다짐은 ‘놀랍게도’ 이뤄졌다.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톱브랜드로 성장한 것이다. 국내 안경테시장에서 (주)서전의 명성은 독보적이다. 각종 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최고급 안경테로 인정받는다.최근 한국능률협회 선정 소비자디자인선호도 조사에서 안경테 분야 1위를 차지했다. 또 올해 초 한국안경신문이 현직 안경사를 대상으로 한 ‘국산 안경테 브랜드 톱10’ 선정에서도 당당히 1위에 올랐다.브랜드와 품질 면에서도 외국업체들에 밀리지 않는다. 지난 93년 안경 분야에서 세계 4대 전시회 중 하나인 ‘뉴욕 비전 엑스포’에 첫 진출했을 때다. 해외바이어들은 한결같이 ‘이게 정말 한국제품이 맞느냐’며 탄성을 내질렸다.한 달간의 전시기간 중 약정된 수출계약만도 100만달러어치. 전시회가 막을 내리면서 서전은 해외 300여개 유명 브랜드를 제치고 당당히 최우수 전시품으로 선정됐다. 이후 해외시장에서도 탄탄대로를 걸었다. 세계 30여개국에서 서전의 해외 수출 브랜드인 ‘코레이’(KOURE) 제품이 200~300달러에 팔리고 있다.기술개발비 매출의 10% 사용서전이 한국의 ‘톱브랜드’로 발돋음한 비결은 뭘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고급화’로 차별화를 꾀했다는 점이다. 타성에 젖어 남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도태된다는 게 육회장의 지론이다.그래서 창업 이래 지금까지 기술개발에 회사경영의 최우선 순위를 뒀다. 기술개발비도 아끼지 않아 매출액의 10% 이상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닐 터.서전은 선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85년 공장을 세우기도 전에 11명의 고졸직원을 뽑아 일본 협력사 이사야마에 보내는 당시로는 보기 드문 결단을 내렸다. 이후에도 해마다 10여명의 산업연수생을 일본에 보내는 등 인재양성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단기간에 일본에 버금가는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신소재 개발과 디자인 개선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안경테 소재도 국내 최초로 하이니켈과 티타늄을 사용했다. 금속안경테는 대부분 니켈을 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일반 안경테의 경우 니켈 함유량이 15~25%에 불과하다.서전은 과감하게 니켈이 80% 이상 함유된 하이니켈 소재를 사용, 가볍고 탄력성이 뛰어난 안경테를 만들었다. 도금은 변색을 막기 위해 일반 안경테보다 3배나 두껍게 했다. 일반 안경테는 150여개의 공정을 거치지만 서전은 250개의 공정을 통해 하나의 안경테가 완성된다고 한다.디자인도 ‘최고’를 지향했다. 86년부터 국내 최초로 디자인실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당시만 해도 외국제품을 적당히 모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러다 보니 국내 업체들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하청만 맡아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서전은 처음부터 독자 브랜드로 해외시장을 뚫고자 했다. 이를 위해 10여명의 디자이너를 뽑아 디자인실을 꾸렸다. 기회가 되는 대로 일본 연수도 시키고, 해외 유명 디자이너도 초청해 실력향상을 꾀했다.이들은 색소폰 형태의 안경테, 나뭇잎과 꽃잎 등 자연에서 이미지를 따온 안경테를 비롯해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며 국산 안경테의 디자인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안팎의 평을 듣는다.특약점 제도 도입 등 판매망 구축 과정에서도 차별화를 꾀했다. 처음에는 지역별로 300여 우수 점포를 선정해 ‘서전 특약점’이라는 간판을 걸게 했다. 현재 ‘서전 특약점’ 점포는 2,000여개를 헤아린다.올해 수출 500만달러 예상이밖에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 데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서전이 국내 안경테업계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붙인 일들을 적잖게 했지만, ‘최초의’ TV광고도 그중의 하나다. 또 ‘애프터서비스(AS) 제도도 처음으로 도입했다.서울과 부산, 정읍 등 3곳에 대규모 AS센터를 만들었다. 안경점에서 AS가 어려우면 이곳에서 수리한다. 이밖에 전북 정읍 공장 내에 ‘안경전시관’을 만들어 전국의 안경학과 학생들을 초청하는 등 미래의 고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국내 안경테업계가 고가품은 유럽과 일본산에, 저가품은 중국산에 떠밀려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500여개 업체가 지금은 300여개로 줄어들었다고 한다.이 와중에 서전도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매출액이 300억원에 불과했다. 따라서 서전은 해외시장에 마케팅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내수와 수출비중은 70대30이다. 이를 중장기적으로 50대50으로 만들겠다는 것.지난해 250만달러의 수출규모도 올해 500만달러 이상으로 대폭 늘려 잡고 있다.또 고급화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이미 비장의 카드를 내놓을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우선 기존 티타늄을 개량해 더욱 가볍고 탄력성이 우수한 안경테를 준비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 중에 선보일 예정이다.또 도금이 아닌 티타늄 금장 제품으로 티타늄 소재에 금을 얇게 입힌 금장 안경테도 내놓을 계획이다. 기존 서전 안경테 제품이 10만~15만원대인 데 비해 금장 안경테는 50만원이 넘는다.이밖에 넥타이, 스카프 등 안경과 매치할 수 있는 토털패션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기로 했다. 육회장은 “국내외 시장에서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서전이 국산 안경테업계를 지켜내는 보루가 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