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엔 직거래 시장 활성화시키고 유로화 등 이중통화시장도 개설해야

미국 달러 약세 현상이 빨라지고 있다. 5월에만 세계 모든 통화에 대해 평균 2% 정도 하락했다.주목되는 것은 존 스노 재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경제각료들이 그동안 강한 달러정책을 추진해 온 공화당의 전통을 깨고 달러약세를 용인할 뜻을 비치고 있는 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경기가 어려운 유럽과 일본도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각각 유로 약세, 엔 약세로 대항할 뜻을 비치고 있어 세계통화 전쟁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이라크 전후 달러 약세가 급속히 진행되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경기 회복이 절실한 데 반해 경기 회복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제약돼 있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현재 부시 정부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모든 정책을 경기 회복에 주력하고 있다.반면 금리정책은 금리수준이 이미 경제여건에 비해 낮고 효과도 종전만 못하기 때문에 올 들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인하의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실제로 단행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정책도 올 회계연도만 3,600억달러의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앞으로 달러 약세 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부시 행정부는 경기 회복이 최우선 과제이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최대 현안이다. 내년 대선을 겨냥한다면 경제주체 가운데 기업인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달러 약세는 이 세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에 달러 약세 정책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문제는 특정 국가가 자국의 통화가치 약세를 유도해 경기 회복을 모색할 경우 인접국이나 경쟁국에 반드시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보통 이런 정책을 ‘근린 궁핍화 정책’(近隣 窮乏化 政策)이라 해서 국제적으로 금기시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특히 미국이 자국의 경기 회복을 위해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는 것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경쟁력을 빼앗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들은 달러 약세에 따른 경쟁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자국의 통화가치도 떨어뜨려야 한다. 현재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경기가 좋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매우 높은 상태다.물론 이런 상황이 발생되면 세계통화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뜩이나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세계경제가 대공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 과거 30년대에도 세계경제가 침체될 무렵에 세계 각국들이 협조보다 무역장벽을 높이거나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보호주의ㆍ이기주의’로 치달았던 것이 10년간의 대공황에 빠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었다.중요한 것은 세계통화 전쟁이 일부 우려대로 과연 일어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디플레이션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달러 약세를 선택할 경우 분명히 경기 회복과 경상수지 적자 축소, 기업 실적 개선 등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반면 달러 약세는 증시에서 자본이탈을 초래해 미국경기를 더욱 침체시킬 가능성이 높다(역자산 효과, 자본이탈 → 주가 하락 → 자산소득 감소 → 민간소비 위축 → 추가 경기 침체). 대외적으로도 다른 국가들의 반발을 초래해 미국이 국제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세계경제를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일본과 유럽경제도 달러화 약세에 따라 엔화와 유로화 강세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한다. 최근 일본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경기 회복의 관건인 일본국민들의 소비심리가 살아나지를 않고 있다.현재 일본국민들의 소비는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좀비경제 국면에 놓여 있다.통화정책 면에서는 금리가 제로 수준에 된 지 오래됐고 재정정책 면에서도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각각 GDP의 11%와 132%에 이르고 있어 여유가 없어진 상태다. 마지막 경기대책으로 고이즈미 정부가 희망을 걸고 있는 감세정책도 초기단계부터 일본 내 경제주체들의 반발에 시달리고 있다.일본경제의 아킬레스건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도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본정부는 공식적으로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 규모를 37조2,000억엔으로 밝히고 있으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이것보다 최소한 3배, 많게는 5배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경우 엔고에 따른 디플레 효과로 경기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정책당국자들이 엔화환율의 적정수준을 현 수준보다 30엔 높은 150~160엔이 돼야 한다고 계속해서 외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유럽경제도 유로랜드의 중심국인 독일과 프랑스는 일본경제처럼 구조병에 시달리고 있다. 만약 올해 영국, 스웨덴, 덴마크가 유로랜드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독일과 프랑스의 경기침체가 다른 회원국에 확산되면서 유럽경제는 침체될 가능성도 있다.최근 들어 유로화가 초강세를 보임에 따라 경기에 미칠 부정적 시각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회원국의 합의가 이뤄진 상황에서 달러 약세를 유도한다는 데 동조하지 않을 전망이다.현시점에서 6월에 있을 G8 회담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회담을 통해 과연 선진국들이 점점 고조되고 있는 통화전쟁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고 경기 회복을 위해 공조방안을 도출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향후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앞날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G8 회담에서 선진국들이 어떤 방안을 내놓든지 우리로서는 달러화 약세ㆍ원화 강세 추세에 대비해야 한다.무엇보다 정책당국의 시장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환율 움직임이 너무 급변하지 않도록 노력(Smoothing Opera-tion)해야 한다. 우리처럼 소규모 개방국가이면서 엔화 이외에 이종통화 시장이 개설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미국과 일본, 유럽간에 통화마찰 조짐이 조금만 있어도 원화 가치는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현재 달러 이외에 이종통화로서 유일하게 개설해 놓은 원/엔 직거래시장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유로화 등 다른 이종통화시장도 개설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처럼 세계 3대 경제대국간에 통화마찰 조짐이 있을 때는 이종통화 환율이 재정(Cross Rate)거래로 결정될 경우 환율변동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국내 기업들도 원화 강세에 견딜 수 있는 체질과 환위험 관리체제를 마련해 놓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종전처럼 원화 강세가 되면 외환당국에게 원화 약세를 요구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동시에 환율에 의문이 있을 때는 수시로 자문할 수 외환전문기관과 외환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도 구축해 놓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