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한국은 모든 것이 빠른 나라다. 펜션(Pension)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름조차 낯설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팽창을 거듭, 이제는 대중적인 레저용 숙박지로 자리잡고 있다.대표적 관련업체인 렛츠고펜션월드의 급성장 사례만 봐도 국내 펜션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는지 알 수 있다. 지난 2000년 5월 이 회사 이학순 사장은 평촌에 좁은 사무실을 얻어 펜션전문컨설팅사를 출발시켰다.직원은 고작 여섯 명. 그때는 만나는 사람에게 펜션이 무엇인지 입이 아플 때까지 반복해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펜션이 뭐냐”고 되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회사는 이제 서울 서초동에 160평짜리 사무실을 임대해 쓰고 있으며, 직원도 50여명으로 불어났다.정확한 숫자를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 500여개의 펜션이 있다고 추정된다. 휴펜션의 이정찬 사장은 “지금 건축 중이거나 건축예정인 곳까지 감안하면 올해 말에는 전국 펜션수가 800~1,000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또 서비스를 제공하는 펜션관련업체만도 2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펜션관련업체는 프랜차이즈업처럼 펜션을 가맹점으로 받아 예약을 대행해주거나 부지 선정이나 매입, 설계, 시공 등 펜션창업컨설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를 말한다.이런 업체 중에는 단순히 예약대행만 해주는 곳부터 종합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최근에는 난립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펜션이 여행객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이에 따라 순식간에 많은 펜션이 생겨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펜션’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더 이상 고객의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지는 상황. 그래서 갖가지 아이디어와 마케팅 능력으로 승부를 거는, 테마 펜션이나 이벤트를 앞세운 펜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일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 전례가 있다. 80년대 초반 일본에 처음 펜션이 도입된 후 몇 군데 펜션이 성공하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곧 수천개의 펜션이 들어서 과당경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많은 펜션이 정리되고 독특한 테마를 가진 곳만 살아남았다.빵 굽는 냄새로 여행객 사로잡아특징 있고 차별화된 펜션은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의 취미나 성격, 위치 등과 깊이 맞물려 있다. 강원도 평창의 ‘별빛사냥’은 유기농이 테마다. 펜션 바로 옆에 1,000여평의 허브 산나물 농장과 200평의 환경농산물 코너도 곧 문을 열 계획이다.주인이 유기농 작목반원이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유기농 테마를 형성하게 됐다. 펜션을 찾는 가족단위의 여행객들이 직접 유기농 농사를 지어보고 무공해 채소도 맛볼 수 있다. 떠날 때는 채소를 한보따리씩 안겨줘 넉넉한 인심까지 자랑한다.역시 강원도 평창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는 텃밭을 무료로 분양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음식을 테마로 손님을 유혹하기도 한다. 경기도 가평의 ‘히든 밸리’ 펜션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느지막히 잠을 깬 손님들은 구수한 누룽지 냄새를 맡는다. 아침식사로 누룽지탕을 주는 것. 물론 공짜다. 또 강원도 평창의 ‘포시즌’, 경기도 양평의 ‘화이트 캐슬’에서는 아침식사로 토스트와 원두커피를 내놓는다.여느 펜션과 마찬가지로 부부가 운영하는 화이트 캐슬의 아침풍경. 주인아주머니는 아침마다 제빵기로 직접 빵을 굽고 주인아저씨는 원두커피를 내리는 한편 직접 휘핑크림을 휘저어 추출한 커피에 얹어 비엔나커피를 만든다. 매일 오전 9시 30분만 되면 손님들이 향긋한 빵냄새 커피향에 맥을 못추면서 무엇에 끌려 나오듯 하나둘씩 객실에서 나온다.레포츠도 중요한 테마다. 강원도 평창의 ‘달과 물안개’는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하다. 주인이 패러글라이딩에 관심과 조예가 있어서 손님에게 공짜로 기본훈련을 시켜준다. 단양의 남한강변 가곡문화마을 내 ‘한울’은 단양 플라잉파크 근처에 있다.이곳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designtimesp=23893>의 패러글라이딩 장면 촬영장소이기도 해서 요즘 더 인기다. 이곳 주인은 원하는 손님들에게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선수의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소개해준다.또 주변의 동강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는데, 주인이 낚시에 취미가 깊어 손님들에게 낚시도 가르치고 장비도 빌려줘서 낚시 마니아들에게 인기다. 또 동강에서 래프팅의 재미를 만끽할 수도 있어 이미 레포츠 펜션으로 입소문이 퍼졌다. 강원도 인제 내린천의 ‘맑은 물소리’도 번지점프 낚시 래프팅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밖에도 문경새재의 ‘예인과 샘터’는 예술애호가인 주인이 비정기 실내악 공연을 열고 또 갤러리를 짓고 있는 등 예술 향기 가득한 곳으로 소문이 났고, 경기도 가평의 ‘오페라 하우스’는 모터보트 등 호반레포츠로 특화했다.휴펜션의 윤광진 이사는 “앞으로 완전한 휴식을 테마로 아예 전파차단기를 설치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게 하는 펜션, 강화 가마터에 자리잡아 도예를 테마로 설정하는 펜션 등을 선보일 예정”이라면서 “펜션의 차별화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