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LG유통 본사는 활기가 넘친다. 6월 들어 매주 1회 호프데이가 열리고, 팀장간 워크숍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경영진은 팀장 워크숍에서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게 하는 등 ‘신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LG마트(할인점), LG25(편의점), LG슈퍼마켓 등의 신규점 개설 계획도 적잖게 잡아놓고 있다. 여기에다 구본무 LG 회장이 “정유, 건설, 유통사업을 허씨가에게 넘길 것”이라고 못박은 점도 분위기를 돋운다.이렇게 되면 유통사업에 대한 투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LG유통의 한 관계자는 “머지않아 유통업계에서 ‘빅3’ 자리는 충분히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는다. 과연 그간 ‘마이너리거’ 신세였던 LG의 유통사업이 기존 업계의 판도를 흔들며 당당한 ‘메이저리거’로 올라설 수 있을까.이제까지 LG의 유통사업은 그룹에서 ‘서자’ 취급을 받았다. 전자, 화학 등 그룹의 ‘적자’ 앞에서 함부로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그룹 차원의 투자순서도 늘 뒤로 밀리는 아픔을 겪었다. 집에서 구박받는 자식이 밖에서도 구박받는다고 했든가. 이러다 보니 업계에서도 ‘마이너’ 대접에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더군다나 다양한 업종을 갖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약점을 드러냈다. 실제로 LG처럼 백화점, 할인점, TV홈쇼핑, 슈퍼마켓, 편의점, 인터넷쇼핑몰 등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하는 곳은 드물다. 유통강자 롯데와 신세계가 갖지 못한 TV홈쇼핑도 보유한데다 슈퍼마켓, 편의점 등이 전국에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을 정도로 네트워크는 뛰어나다는 평이다.그러나 업계에서 언저리 취급을 받은 것은 백화점, 할인점 등 주력 업태에서 롯데, 신세계 등에 일방적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LG백화점은 94년 안산점을 시작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지난 10년간 부천점(96년)과 구리점(98년) 등 8년간 3개점을 열었을 뿐이다.시장점유율도 4%대에 불과하다. 할인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96년 11월 경기도 고양시에 1호점을 개설했으나 지금까지 7개의 점포를 추가하는 데 그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시장점유율도 4%대를 넘지 못했다.여기에다 각 사업부문이 힘을 합하지 못하고 따로 놀았다. LG마트는 LG상사, 편의점과 슈퍼마켓은 LG유통, 백화점은 (주)LG백화점 등 운영주체가 각기 달랐다. 이러다 보니 각 분야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을뿐더러 종합적인 전략수립도 부재했던 것이다. 구본무 LG 회장이 부르짖는 ‘1등 LG’는 유통사업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오랜 무명생활을 견디고 스타반열에 오른 연예인처럼 LG의 유통사업이 최근 변신의 계기를 마련한 배경은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우선 유통사업이 허씨가로 넘어가면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정유와 건설은 현재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한데다 향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질 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렇다면 결국 허씨가 경영진이 그간 지지부진했던 유통사업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게 LG 안팎의 전망이다. LG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해 통합법인을 만든 것은 투자를 늘리겠다는 신호탄”이라며 “향후 할인점과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여기에 국내 유통업계가 급변하고 있다는 점도 LG에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LG의 취약지대였던 백화점업계가 전반적으로 시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백화점을 밀어내고 유통업계 강자로 나선 할인점도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대신 TV홈쇼핑, 인터넷쇼핑몰, 편의점 등 신업태가 향후 유통업계를 주도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렇다면 신업태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LG에 향후 유리한 유통환경이 펼쳐질 것이다.먼저 편의점 LG25와 LG슈퍼마켓은 업계 1위를 달리고 있어 향후 LG 유통사업의 버팀목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은 지난 90년 1호점을 개점한 이래 지난해 9월 1,000호점을 돌파했고, 6월 말 현재 1,350개에 이르렀다.올해 목표는 1,600호점 개설이다. 매출액도 지난해 7,100억원에서 올해는 1조원 시대를 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상이익도 지난해(300억원)보다 100억원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슈퍼마켓도 LG의 ‘희망새’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97년 6월 청주지역에 대형슈퍼마켓 1호점을 개점한 것을 필두로 대형화한 것이 효과를 봤다. 지난해 6,700억원의 매출과 400억원의 경상이익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TV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도 LG가 목에 힘을 줄 만큼 잘나간다. LG홈쇼핑은 2001년 1조원 시대를 연 이래 지난해 1조8,000억원을 넘어서며 국내 TV홈쇼핑시장을 석권했다. CJ홈쇼핑에 쫓기고 있는 입장이지만, 아직까지 부동의 1위임은 분명하다.무엇보다 유통업태 가운데 성장률이 가장 높은 인터넷쇼핑몰 분야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인터넷쇼핑몰은 지난해에 비해 5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 TV홈쇼핑(36%), 카탈로그(27%) 등 다른 무점포 업태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올해 4조원 이상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분야에서 LG이숍의 지난해 매출액은 2,840억원으로 전년 대비 180% 이상 성장하며 6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따라서 인터넷쇼핑몰시장이 커질수록 선두주자인 LG이숍의 입장에서는 더욱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통합시너지를 최대한 내기 위한 문화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LG유통의 경우 지난해 7월 합병 이후 아직까지 MD 및 물류 이외에는 제대로 통합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LG 관계자는 “아직 진지를 구축하는 단계”라며 아직 ‘공격 앞으로’를 외칠 단계가 아님을 시사했다.또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백화점과 할인점사업은 어떻게든 풀어야 할 난제다. 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미도파, 뉴코아 등 입찰에 참여했지만 인수에는 실패했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 입점할 입지도 없는 형편이다. LG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 입지뿐만 아니라 지방의 경우도 힘들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할인점의 경우도 신세계 이마트,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등 기존 메이저업체와의 경쟁은 어렵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따라서 차별화된 지역밀착마케팅을 통해 점포당 수익률 높이기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올해 LG유통은 3조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LG홈쇼핑의 예상매출액 2조5,000억원을 더하면 5조원대 규모다. 이 정도면 롯데, 신세계에 이어 규모 면에서 ‘빅3’에 당당히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LG유통의 경우 합병 이후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기존 유통업계의 판도 흔들기가 단시간에 이뤄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