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이남의 따사로운 햇살, 길 따라 야자수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스위스의 여느 지역과 아주 다른 모습이다. 이곳은 가장 마지막으로 스위스연방공화국에 통합된 칸톤(자치주)인 티치노지방의 루가노. 알프스라는 거대한 자연경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이미 남부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루가노는 스위스 가장 남쪽, 이탈리아와 루가노호를 공유하며 이웃하고 있는 도시다. 언덕 중턱에 자리한 기차역에 내리면 건물들 너머 아래로 호수가 펼쳐지고 건너편의 산들이 마주보고 있다. 버스를 타고 호숫가로 내려가는 잠깐 사이에도 창밖 풍경이 신기하만 하다. 건물들의 생김새나 외벽의 색깔, 분위기가 영락없는 이탈리아이기 때문이다.여기에서 차로 2시간도 가량 가면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닿는다. 주민들도 모두 이탈리아계이고, 어디를 가도 들리는 이탈리아어 특유의 악센트가 경쾌하고 낙천적이다.루가노를 특징지어주는 것은 산과 호수. 몬테브레와 몬테산살바토레라는 두 개의 산이 루가노를 양옆으로 호위하고 있다. 산꼭대기까지 케이블카가 다니는데 밤이 되면 케이블카 길을 따라 밝혀진 불빛이 검은 하늘로 곧게 올라가며 루가노의 인상적인 밤풍경을 만들어낸다.호수 쪽으로 내려오면 루가노호를 오가는 유람선선착장이 보이고, 호숫가의 둥근 만을 따라 길게 공원이 조성돼 있다. 호수 위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보면 매우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시선을 잡아끈다. 바로 루가노의 자랑인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작품 ‘반쪽짜리 성당’이다.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을 설계한 마리오 보타는 최근 완공된 서울 강남의 교보타워의 설계자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건축가. 호수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반쪽짜리 성당’은 말 그대로 옛 성당양식을 목재로 지어 반쪽만 재현한 것이다.본래 몇 년 전 시의 축제무대용으로 지은 임시건물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그대로 남겨두었다. 반쪽만 남아 덩그러니 서 있는 미완의 모습은 무언가 허전한 듯하기도 하고 색다르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독특한 모습 때문에 루가노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루가노에서는 가는 곳마다 이탈리아식 건물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방은 예로부터 너무나 가난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지리적으로 가까운 로마나 밀라노 등 대도시에는 건축 일거리가 많았기 때문에 루가노의 남자들은 이탈리아로 건너가 막노동을 하고 돈을 벌어왔다. 덕분에 이 지역에서 유명한 건축가가 많이 나왔다고. 이탈리아의 건축양식을 몸으로 익힌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와 조금씩 모은 돈으로 건물을 지었다.하지만 기교는 있으되 돈이 없다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그들은 건물의 외부장식을 그림으로 대체하는 꾀를 냈다. 창문마다 장식조각을 붙이는 대신 원근법과 명암을 이용해 진짜 조각처럼 보이도록 그림을 그린 것. 루가노의 오래된 광장들에는 지금도 그러한 장식그림이 그려진 건물들을 볼 수 있다.루가노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쇼핑. 루가노 중심부의 구시가지에는 갖가지 유명 브랜드의 상점들이 즐비하다. 굳이 쇼핑을 하지 않아도 쇼윈도마다 맵시 있게 진열된 멋진 구두와 시계, 옷 등에 눈이 팔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한편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낮 12시에 호수 옆 리포르마광장에서 시장이 열린다. 주변 지역 농부들이 직접 재배한 각종 야채와 과일, 잼, 소시지, 빵 등이 풍성하다.꽃시장에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자라는 커다랗고 하얀 칼라꽃이 단연 눈길을 끈다.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직접 만든 생활용품들을 갖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있다. 루가노의 신선한 아침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이다.루가노에 왔다면 배를 타고 주변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들을 관광하는 것도 필수코스다. 오래된 이탈리아식 저택과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희귀종들로 꾸민 정원, 발밑에서 호수가 철썩거리는 낭만적인 레스토랑 등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곳은 간드리아 마을. 호수를 옆에 끼고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잡은 이 마을에는 그림처럼 예쁜 집들이 빼곡히 있다. 좁은 골목을 거닐며 아기자기한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오래된 우물과 소박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참피오네 마을은 스위스땅으로 둘러싸인 작은 이탈리아. 카지노와 호텔로 유명한 이 마을은 경찰이나 차량등록 등은 스위스로 돼 있지만 학교나 병원 등의 시설은 이탈리아제도를 따른다.글ㆍ사진 / 정상희 월드콤 기자 whynot@worldpr.co.kr취재협조 / 루프트한자독일항공(02-3420-0400ㆍwww.lufthansa-korea.com), 스위스관광청(www.myswitzerlan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