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 취임 후 제일은행을 이끌어온 로버트 코헨 제일은행장(55). 그는 “올해의 경영목표를 지난 6월에 달성해 연목표를 두 배로 상향조정했다”며 유쾌한 웃음을 보였다.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개월 동안은 자산을 두 배로 불린 성과를 거뒀다.올해는 코헨 행장이 은행원으로 일한 지 31년째 되는 해다. 그는 모국인 프랑스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후 미국 월스트리트로 진출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튀니지에서 출생한 그는 1972년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 이공대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 도핀대학교에서 1977년 재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프랑스와 벨기에, 미국 크레디리요네은행에서 25년간 트레이딩 및 기업, 소매금융 업무를 맡아온 정통 뱅커출신. 특히 89년부터 97년까지 북미와 중남미 소재 크레디리요네의 CEO를 역임하면서 은행 자산은 네 배 증가한 500억달러, 순수익은 10배 증가한 2억1,000만달러로 늘려 주목받았다.지난 97년부터 99년까지 리퍼블릭뉴욕사(Republic New York Corp)와 금융자회사인 리퍼블릭내셔널뱅크오브뉴욕(Republic National Bank of New York)의 부회장으로 일했다.그후 투자 및 자문회사인 조라넬LLC의 대표이사로 활동하며 2000년 3월부터 제일은행 이사로 경영에 참여해 오던 중 행장으로 발탁됐다.코헨 행장이 취임 후 관심을 쏟아온 작업 중 하나는 제일은행의 부정적 이미지 씻기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은행이라는 인식을 없애고 ‘역동적’이라는 이미지를 고객에게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외환위기 이후 제일은행의 암울했던 상황을 담은 ‘눈물의 비디오’의 반향이 컸던 만큼 고객들 머릿속에는 비디오 이미지가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고 확신합니다. 월드컵스타 홍명보 선수를 TV광고에 내세워 ‘역동적’인 은행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제일은행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그는 지점 조직과 제도를 정비하고, 신상품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이 같은 노력의 과정에서 공적자금 투입 은행인 제일은행이 수익추구에만 치우치는 게 아니냐는 일부 비판이 일기도 했다. 코헨 행장은 이런 비판을 한마디로 일축했다.“한국의 은행환경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습니다. 은행을 공공기관으로 여기는 의식을 버려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개도국에서는 은행이 국가 발전의 도구로 쓰이기도 했지만 선진사회의 은행은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인프라와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지요.”코헨 행장은 올해 한국의 은행환경이 15~20년 전의 프랑스를 닮았다고 한다. 자생력을 갖추고 수익구조 개선에 전력을 다하던 80년대 프랑스 은행에서 그는 21세기 은행의 생존전략을 체득했다.“수익창출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리스크에 노출돼 공적자금을 또다시 투입받아야 할 겁니다. 은행이 사기업처럼 경영돼야 하는 이유입니다.”최근 300만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도 코헨 행장은 또렷한 의견을 지니고 있다. 프랑스나 라틴아메리카 등 해외에서도 신용카드 도입 초기에는 신용불량자 증가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지불수단이 현금에서 카드로 바뀌어가는 데 1세기가 걸린 해외에서도 신용불량자 문제가 발생했는데, 불과 3~4년 만에 카드부문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한국의 상황은 비정상적이라는 설명이다.“신용불량자의 인생이 과연 ‘불량’한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대다수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단지 신용카드를 쓰는 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카드사의 마케팅 경쟁도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카드와 은행대출을 적절히 섞어 쓰는 등 고객이 자산관리 방법을 익혀 나가도록 도모할 것입니다. ”코헨 행장은 취임 초기부터 “은행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와도 합병논의를 할 수 있다”고 역설해 왔다. 그의 M&A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조흥은행과의 합병에도 관심을 가졌던 그는 앞으로도 은행이나 카드사의 인수 기회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반면 은행의 규모가 커지는 것이 수익창출로 직결된다고 보지는 않는다.“최근 일본의 ‘리소나 쇼크’ 사태에서 합병 후 거대해진 규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918년 설립된 일본 다이와은행과 2001년 말 이후 긴키오사카은행, 나라은행, 아사히은행이 차례로 합병돼 설립된 자산 45조엔의 은행그룹 리소나홀딩스도 결국 일본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게 됐죠. 규모보다 내실 중심의 M&A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정 수준으로 자산을 확대하는 게 최우선 과제입니다.”그는 제일은행의 균형 있는 성장을 중시한다. 지난 97년 제일은행 대출의 90%가 대기업여신이었다. 그러나 소비자금융 확대를 전략적으로 지원해 온 결과, 현재 기업 대비 개인여신의 비율은 45대55에 이르러 균형이 이뤄간다고 보고 있다.임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중시한다. 은행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다. 이런 이유로 코헨 행장은 회의를 하루에도 4~6차례 한다. 구성원과의 강한 유대감에서 스며나오는 협력업무가 은행조직을 변화시킨다고 여긴다.코헨 행장의 취미는 사진촬영. 사진기자의 카메라가 본인이 가진 것과 같은 기종이라며 인터뷰 사진촬영 내내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수동카메라는 니콘 F4 등을 쓰고 디지털카메라로는 니콘 쿨픽스 5400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아내와 함께 등산을 즐기며 사진을 찍곤 해요.”리스크관리를 재삼 강조하는 그의 인생스토리 뒤에는 ‘위험분산 시스템’ 덕을 톡톡히 본 에피소드가 놓여 있다.“미국 크레디리요네 은행 CEO로 일하던 90년의 일입니다. 전력회사의 화재로 월스트리트에 일주일 동안 전기공급이 끊겼습니다. 1,000여명의 임직원을 뉴욕시 인근지역인 뉴저지 등지에 분산시켜 업무를 진행했죠. 극단적인 재난상태에서도 사업과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는 BCP(Business Continuity Programㆍ비즈니스 연속성) 덕분에 다른 금융기관과는 달리 손실액이 단 1달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리스크 관리와 분산은 곧 수익률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한 그는 “내년까지 40조원 수준으로 자산을 늘리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약력1948년 튀니지 출생. 72년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니크 이공대학 졸업. 77년 파리 도핀대 재정학 박사학위 취득. 88년 크레디리요네 아메리카 CEO. 97년 리퍼블릭 뉴욕 및 리퍼블릭 내셔널 뱅크 오브 뉴욕 부회장. 99년 조라넬 LLC 대표 이사 . 2000년 제일은행 이사. 2001년 11월 제일은행 행장 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