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들으면 미국 중앙정보국 CIA를 연상시키는 (주)CIA(www.cia24.com)는 기업이전 전문가그룹이다. 이 회사의 전신은 1990년 설립된 통인익스프레스 특수사업본부. 이 본부는 기업이전, 중량물운반 등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로 독립채산제 형태로 운영돼 왔다.이후 99년 별도법인으로 독립하면서 (주)천일안으로 이름을 바꿨고 지난해에는 기업이전과 창고보관부문에서 ISO9001 인증을 획득하면서 다시 기업 CI작업에 들어가 천일안(ChunIlAhn)의 영문 이니셜인 CIA로 사명을 바꿨다.‘기업이전 전문가그룹.’ CIA 직원들이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 꺼내는 말이다. 기업을 이전하거나 중량물을 옮길 때는 일반 이삿짐과 달리 오랫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전문가들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런 점에서 CIA는 기업이전 전문가들이 모인 그룹이라는 얘기다. 실제 36년간 굵직굵직한 사업을 도맡아 업계에서 정평이 난 강좌포 사장을 포함해 CIA에는 100여명의 기업이전 전문가들이 있다.첨단기기 운송용 특수차량 보유CIA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장비다. 반도체 관련 장비 등 특수 첨단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이전할 때 기기의 파손을 가장 우려한다. 옮기는 과정이나 차량에 탑재시 민감한 첨단기기가 파손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업이전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있었다고 이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그러나 CIA는 2년여의 노력 끝에 무진동차량을 개발해 첨단기기의 완벽한 이전을 실현시켰다. 굴곡이 있거나 움푹하게 패어 있는 길을 지나더라도 차체 내에는 진동이 가해지지 않도록 설계해 기기의 파손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이들 차량은 주로 전산장비 및 반도체장비 운송용으로 쓰인다. 이 차량은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반도체 관련 회사는 물론 첨단연구시설을 갖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이 회사는 5t 윙바디 차량을 화물수송용으로 이용한다. 윙바디는 화물탑재부를 양날개 형태로 개폐해 신속한 운반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외에도 계단 운반시에 작업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계단용 플랫보드, 평면이동시 바닥의 충격으로부터 운반물을 보호하는 PVC시트, 파티션을 이동할 때 용이한 파티션 운반용 봉 등은 CIA가 자랑하는 장비다.맹강재 기획실 부장은 “파티션 운반용 봉은 직원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의외로 운반이 어려운 파티션을 쉽게 이동시킬 수 있는 장비로 직원이 직접 개발했다”며 “이런 점이 CIA를 전문가그룹으로 부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CIA는 전문가와 첨단장비로 지난 98년 일부 대전의 종합정부청사로의 이전 및 인천국제공항으로의 항공사 이전 등 대형 프로젝트를 맡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외에도 관공서, 공장, 대사관, 연구소의 이전을 도왔다. 특히 ‘한국미술 5천년전’에서 보여준 문화재 해외운반의 완벽함은 CIA 기술의 성과였다.CIA는 지난해부터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빌딩정보관리시스템(BIMS)을 구축해 마케팅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BIMS는 국내에 있는 모든 빌딩에 입주해 있는 기업의 입주계약기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기업이전에 대한 사전정보를 취득함에 따라 사전마케팅으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올해는 내부관리시스템(CIAMS)을 개발해 직원들이 업무흐름을 온라인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로써 각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조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기업이전과 동시에 발생하는 인테리어 및 클리닝, 네트워크 구축을 서비스해주는 원스톱 서비스는 다른 업체와 다른 CIA만의 특징이다.이에 대해 강 사장은 “사회가 다변화되고 디지털 화되면서 그에 발맞추려면 다양한 시스템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앞으로도 전문가와 첨단장비를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선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42억원의 매출을 올린 CIA의 올 매출목표는 50억원이다.INTERVIEW / 강좌포 사장정치 뜻 품었던 기업이전의 달인강좌포 CIA 사장(68)은 경력 36년차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이전 전문가다. 나이에 비해 아직도 CIA를 진두지휘할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강사장은 기업이나 중량물을 보면 어떻게 옮겨야 되는지 구상하는 버릇이 있을 정도로 ‘옮기는 생각’만 한다.“눈으로 보기만 해도 압니다. 여러 가지를 기입해 견적서를 작성하는 컴퓨터보다 제 머리가 더 빠를 겁니다.”강사장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36년 전인 1967년. 당시 32세의 나이로 전북 익산 농협조합장을 지내다 정치에 뜻을 갖고 서울로 올라온 것이 계기가 됐다. 국회의원의 꿈을 갖고 있던 그는 자금이 필요했고 세운통운이라는 중량물 운반 전문회사를 설립했다.사업을 하다 보니 정치보다 사업에 재미를 붙였다. 이내 국회의원의 꿈을 접고 기엄경영에 전력을 기울였다. 경쟁업체가 없다 보니 사업은 승승장구했다.“당시에는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습니다. 특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중량물을 운반하려는 회사가 없었습니다. 인력이나 장비는 물론 기술도 없었고 사고가 빈번해서 모두 꺼려하는 사업이었죠.”강사장은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로 동아자동차(지금의 쌍용자동차)의 4,000t 프레스 운반설치와 KBS 관악산송신소를 꼽는다.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프로젝트였다. 열악한 장비와 인력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전무했기 때문이다.특히 KBS 관악산송신소의 철재송신장비는 인력의 힘으로는 도저히 산에 올릴 수가 없는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강사장은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동아자동차는 두 달 만에 프레스를 설치했고 KBS 관악산송신소는 미8군의 헬리콥터 지원을 받아 성공리에 끝났다.“다들 놀랐죠. 설마 헬리콥터까지 동원할 줄 생각을 못했으니까요. 공영방송 KBS의 일이라 가능했죠.”잘나가던 강사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강원도의 경포대의 준설선을 한강으로 운반할 때다.시간은 촉박한데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 직원들이 동요했고 일손을 거두면서 거의 포기상태에 이른 것이다.“저도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한강에는 준설선이 필요했습니다. 서울발전기본계획으로 한강부터 정비해야 하는데 준설선이 없으면 어려웠죠.”바비큐와 막소주를 들고 현장에 나가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같이 일한 그의 의지 덕분인지 직원들이 하나둘 동참했고 성공리에 마무리했다.강사장은 존경하는 인물로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을 서슴없이 말한다. 근대화의 기수로 항상 배우려고 노력했고 기업하기 어려울 때 벤치마킹하는 인물이라고 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