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시행하는 우리은행 등 '금결원 밥그릇 챙기기' 라며 발끈

금융결제원이 시대의 흐름을 못 읽고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우리은행이 시범시행 중인 ‘지로공과금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에 금융결제원이 반발하면서 갈등이 일어난 것. 우리은행뿐만 아니라 대한도시가스 등 지로서비스 이용회사와 2차원 바코드 기술개발 업체도 금융결제원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지로공과금 2차원바코드 납부서비스’란 지로용지에 2차원 바코드를 인쇄해 CD와 ATM 등 자동화기기로 공과금을 직접 낼 수 있도록 한 서비스다.자동화기기는 2차원 바코드를 읽을 수 있는 바코드모듈을 장착하고 있어 고객이 지로를 바코드 리더기에 대기만 하면 고지정보가 보이고 공과금이 납부된다. 고객은 납부된 고지서를 은행에 낼 필요 없이 본인이 보관하며 납입사실은 자동화기기에서 발급된 영수증과 인터넷 조회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고객의 입장에서는 공과금을 지로용지로 은행 창구에서 내는 것과 2차원 바코드 납부방식이 그리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창구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을 피부로 실감할 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식은 금융결제원 입장에서는 크게 다르다.은행 창구에서 지로용지로 공과금을 내던 기존 방식은 금융결제원을 거친다. 가스요금의 경우 금융결제원이 도시가스회사에 지로번호를 승인하면 도시가스회사는 고객에게 가스요금 고지서인 지로용지를 보낸다.고객은 가스요금 납부를 위해 은행 지점을 찾아 창구에서 가스비를 낸다. 그후 고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절차가 행해진다. 즉 고객이 납부한 지로영수증은 금융결제원으로 발송돼 처리됐던 것.반면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이용하면 금융결제원을 거치지 않는다. 도시가스회사에서 고객에게 2차원 바코드가 찍힌 지로를 발송하면 고객이 자동화기기에 가스비를 납부하게 된다. 고객의 통장에서 도시가스회사로 가스비가 바로 자동이체되기 때문에 금융결제원의 중간과정 역할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2차원 바코드로 ‘금융결제원’ 역할 축소최근 금융결제원은 우리은행이 3월부터 시행해 오던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에 제동을 걸었다. 지로용지에 2차원 바코드를 인쇄할 수 없도록 약관을 변경한 것이다. 이어 금융결제원은 우리은행과 지로서비스 이용회사인 대한도시가스와 서울도시가스에도 서비스 중지를 요구했다.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결제원의 지로수납 업무에 관계된 인원이 200명 이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부직원 보호차원에서 금융결제원이 지로용지를 고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은행권에서는 ‘공과금 수납방법 다양화’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통용돼 왔다. 은행 입장에서는 도시가스와 전기요금 등 공과금을 창구에서 받는 것이 수익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수수료는 1건당 170원에 지나지 않는 반면, 창구업무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달 20일까지는 은행지점 업무의 30%, 21일부터 월말까지는 50% 이상을 공과금 수납업무가 차지하는 게 보통이다.기존 지로 공과금 납부방식은 중간에 금융결제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처리과정이 길면 4~5일이 걸린다는 사실도 지적돼 왔다. 고객 입장에서도 월말이면 공과금 납부를 위해 은행 창구 앞에서 수십 분을 기다려야 했다.우리은행에서 2차원 바코드 업무를 맡고 있는 권만식 과장은 “은행업무를 줄이고 고객 편의를 위해 서울과 분당ㆍ일산 등 경기지역 30개 영업점에 2차원 바코드 리더기가 장착된 자동화기기(CDㆍATM)를 설치해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다”며 “대한도시가스와 서울도시가스, 모음정보통신의 지로이용고객 약 200만 명을 대상으로 우선 시행했으며 신문대금과 전기요금으로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권과장은 “올해 말까지 자동화기기 1,500여대를 추가 배치해 이 서비스를 모든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할 예정이며, 외부업체와의 업무제휴를 통해 지하철 및 편의점에도 바코드 리더기가 장착된 자동화기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권과장은 “각 은행들이 자체개발비를 들여 공과금 납부 다원화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데 금융결제원이 반발할 입장이 아니다”고 했다. 우리은행측은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이용한 파생 서비스도 개발할 계획이다.가령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서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과 2차원 바코드를 연계해 신규 수익원 창출과 고객 편의를 도모할 방침이다. 우리은행측이 ‘지로공과금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위해 들인 비용은 적지 않다. 2차원 바코드를 읽을 수 있는 ‘모듈’을 구입해 기기에 장착하는 비용 등을 합산해 자동화기기 한 대당 80만~10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금융결제원의 약관변경에 반발한 것은 은행들뿐만이 아니다. 우리은행과 업무제휴를 통해 지로공과금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추진한 업체들도 원성을 높였다. 우리은행과 도시가스회사 등 이용기관 간의 납부내역관리, 고지기관 마케팅업무를 총괄하는 새연인터랙티브와 2차원 바코드 모듈 제공업체인 이컴앤드시스템(이하 ECS)이 이들 업체다.강봉성 새연인터랙티브 사장은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는 애러율이 100만분의 6건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며 “사람이 일일이 영수증을 잘라야 하는 지로 납부와 달리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업무시간이 절약되고 영수증을 금융결제원으로 보내지 않아도 돼 물류비용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최정애 ECS 이사는 “기존 지로용지 납부 방식과 신기술이 충돌해 일어난 패러다임 전환기의 문제로 본다”며 “2차원 바코드 방식은 공과금의 수납 즉시 데이터베이스에 정보가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정확한 수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금융결제원의 약관변경에 은행과 관련업체들이 반발하자 금융결제원은 목소리를 낮추는 분위기다. 최영 금융결제원 지로기획 팀장은 “공과금 지로납부 방식으로는 납부자의 정보가 금융결제원에 3년동안 보관돼 중간이 문제가 생겨도 금융결제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며 “2차원 바코드 방식으로는 고객이 공과금을 납부해도 청구업체에서 못받았다고 주장하면 문제해결이 어려울 수 있어 고객들의 혼란이 우려된다”고 주장했다.최팀장은 이어 “2차원 바코드 수납 방식의 효용성 검증을 통한 은행 공동도입 추진을 위해 우리은행이 테스트하는 방안은 협조할 것”이라며 “그러나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도입한 몇몇 은행만 수수료 수입 등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표준화작업을 거쳐 은행 공동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이에 대해 권만식 우리은행 과장은 “고객과 공과금 청구업체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공과금 수납채널을 담당한 은행이 문제해결을 하면 된다”며 “이번 갈등은 금융결제원이 새로운 서비스를 면밀히 검토해 보지도 않고 막은 경우”이라고 반박했다.권과장은 “공과급 수납 방법은 일괄적으로 모든 은행들이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할 사안이다”고 덧붙였다.문제가 불거지자 지난 7월11일 10개 이상의 은행의 담당자들은 금융결제원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2차원 바코드 납부서비스를 검토했던 신한, 제일, 조흥은행을 비롯한 다수 은행 관계자들은 공과금 납부 방식이 다원화돼야 한다는 데 합의하며 문제해결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결의했다.이병도 신한은행 신사업추진부 부장은 “신한은행은 공과금 납부 방식으로 2차원 바코드와 EBPP(Electronic Bill Presentment and Payment;인터넷 지로), 광학문자인식기(OCR) 등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공과금 납부 방식이 바뀌는 과도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