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코스닥 등록… 반도체세정분야도 진출, 매출 190억원 목표

에스엔티의 이재홍 사장(47)은 일요일마다 부친이 있는 경기도 화성의 시골마을로 달려간다. 고희를 훌쩍 넘긴 부친 혼자서 하는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서다. 그는 밭에 퇴비를 내고 논에 농약도 준다.타조우리에 들어가 타조의 똥을 치우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사에 들어가 청소를 하면서 가축과 함께 있다 보면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싹 사라집니다.” 그는 “시골정취를 느끼고 회사에 돌아오면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그가 시골을 아끼고 농사일을 좋아하는 것은 사업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젖소 한 마리가 오늘의 에스엔티를 있게 했죠.”홍익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이사장은 지난 80년 3월 교수 추천으로 한국프리시죤에 입사하면서 세라믹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국프리시죤은 세라믹 정밀가공기술을 보유한 외국계 회사로 그해 한국지사를 설립하면서 직원을 뽑았다.이사장은 입사 후 미국 본사에서 기술연수를 받는 등 세라믹 관련 기술을 차곡차곡 익혔다. 이런 이유로 남들보다 빨리 승진하면서 생산기술부장이 돼 생산과 기술을 총괄했다.“당시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운동이 거세지고 있었습니다.”한국프리시죤은 노동운동이 국내 산업현장을 강타하자 위기감을 느껴 철수하기에 이른다. “불안한 산업현장에서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며 한국프리시죤은 89년 코스타리카로 생산기반을 옮겼다.이사장은 회사로부터 코스타리카 현지공장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국내에 남아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을 갖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기술력만은 자신이 있었기에 도전장을 던졌다.당시 국내에는 일반 세라믹은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고 있었지만 첨단기술을 요하는 파인세라믹을 생산하는 업체는 없었다. 그래서 파인세라믹을 주력으로 하기로 하고 사업을 일구기로 했다 .이사장은 회사동료 세 명과 함께 90년 6월 서울 당산동 상가건물 지하실에 세라믹 연마기를 달랑 3대 놓고 상부정밀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사업자금 3,000만원은 부친이 시골에서 키우던 젖소 한 마리를 팔아 마련했어요. 당시 젖소 한 마리 값이 2,000만원 정도였으니 시골에서는 큰 재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부족한 나머지 자금은 함께 창업에 나선 동료들의 퇴직금을 모았다.처음에는 회사문을 열고 오더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생각대로 되지를 않았다. 곳간은 비어가고 있었고 난감했다. 그해 연말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수도전밸브 개발의뢰를 받아 3개월 만에 제품을 개발해줬고 드물게 생산공급도 했다.그렇게 해서 91년 한 해는 수도전밸브로 먹고 살았다. “1년간 4,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 같아요. 굶지 않고 근근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이사장이 본격적으로 당초 생각했던 파인세라믹사업을 시작하는 기회를 잡은 것은 92년 말이다. 우연한 기회에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반도체라인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이사장은 생산라인을 꼼꼼히 살폈다. 그당시 반도체경기가 호황국면에 접어들 때여서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부품 국산화에 관심을 갖고 투자를 아끼지 않을 때였다.현대전자 견학은 이사장의 꿈을 현실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는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세라믹을 이용한 제품개발에 들어갔다. 그가 1개월 만에 개발한 제품은 반도체라인의 로봇팔에 들어가는 부품으로, 세라믹으로 만들었다.당시 반도체업계에서 세라믹원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이를 이용한 부품을 개발하자 업계에서는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밤낮없이 개발한 결과 수입품의 대체를 할 수 있게 됐고 게다가 성능이 수입품보다 뛰어났습니다.”이 제품은 매월 30여개씩 팔려나갔다. 그러면서 회사의 덩치가 커져갔다. 94년에 경기도 오산에 60여평 규모의 임대공장을 마련했다. 직원도 창업 당시의 4명에서 17명으로 늘었다. 1년 후에는 송탄에 공장을 마련할 정도로 눈에 띄게 성장했다.이후 기술력 있는 회사로 평가를 받으면서 외부로부터 연구개발 의뢰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반도체칩 메이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면서 개발했고, 이를 통해 국산화 장비품목을 늘려나갔다”고 밝혔다.이러한 에스엔티의 기술력은 IMF 환란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 이사장은 불경기이지만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연구개발비 투자를 오히려 늘려나갔다. 2000년에는 평택에 부지 2,500평, 연건평 3,200평 규모의 공장을 증설했다. 이곳에만 부지구입비, 신축공사비, 설비도입비 등을 포함한 14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했다.새로 공장을 세우면서 이사장은 현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벽돌 하나 생산라인의 볼트 너트 하나까지 꼼꼼히 챙겼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를 뜯고 조립하며 개조했습니다.” 에스엔티는 새 공장을 마련하면서 실리콘카바이드(SiC)를 원료로 자체개발한 반도체 저압화학기상증착(LPCVD) 공정에 쓰이는 튜브와 보트 생산라인을 깔았다.회사측은 80억원을 투입해 양산설비를 갖췄으며 7월 말부터 양산에 들어간다. 이에 따라 그동안 실리콘, 알루미나, 쿼츠 등을 원료로 각종 파인세라믹 부품을 생산하며 경쟁해 온 업체들을 한발 앞서 나가게 됐다, 이사장은 “이번 SiC 개발은 일본업체가 국내 시장의 80% 이상을 석권하고 있는 가운데 국산화한 것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그는 “SiC 개발에 30억여원을 투입해 5년 동안 개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iC 부품은 웨이퍼의 크기가 대형화(12인치)되면서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어 장차 에스엔티의 주력으로 떠오를 분야다. 이사장은 최근에는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반도체세정분야에도 신규로 뛰어들었다.지난 99년부터 일본, 미국, 대만, 싱가포르의 반도체칩 메이커에 수출하고 있는 에스엔티는 올해 대만에 현지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일본 현지법인과 미국 현지법인은 지난 99년과 2002년에 각각 세우고 현지공략의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조용한 성격의 이사장은 기업경영의 주요 덕목의 하나로 ‘믿음’을 꼽는다. 그는 “그동안 기업경영을 하면서 거래업체로부터 클레임받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며 “이는 믿음의 실천 결과”라고 설명했다.지난 2001년 코스닥에 등록된 에스엔티는 올해 매출 190억원, 순이익 38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수출도 300만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031-660-8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