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산업신문, 25년간 투자수익률 무려 5320%로 최고

기업이 주주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답은 주가 상승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산 투자자는 앉아서 돈을 불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 회사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되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이는 당장 손에 잡히는 구체적 실익이 없어 직접적인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주가 상승과 함께 경영을 잘해 배당을 듬뿍 준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배당을 많이 주면 주주들의 평이 좋아지고 인기 주식으로 대접받아 주가가 올라갈 테니 이래저래 신나는 일의 연속이다.히로세전기(電機)라는 이름의 일본기업이 있다. 휴대전화용 부품인 커넥터를 만드는 업체지만 보통의 한국인들에게는 거의 무명회사나 다름없는 기업이다. 일상적으로 곁에 두고 사용하는 소비재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보니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연간 매출이야 6,549억엔(2003년 3월 결산 기준)으로 어지간한 중형 기업을 능가하지만 연륜이 짧은데다(1972년 12월 상장) 간판제품이 주변에서 잘 눈에 띄지 않으니 어떤 회사인지 선뜻 윤곽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일본기업의 이름이라면 소니, 도요타, 혼다, 닛산, 마쓰시타 등의 사명부터 머리에 떠올리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고 보면 히로세전기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유명 기업 대접을 받지 쉽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히로세전기는 일본 산업계에서 최근 흙 속에 감춰진 진주와 같은 존재로 대접받고 있다. 히로세전기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도 급변했으며 언론과 주식투자자들도 히로세전기라는 이름을 되풀이해 떠올리며 회사의 실체와 저력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이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77년 말 이후 지난해에 이르는 4반세기 동안 일본에서 주주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보답을 한 기업들의 순위를 조사한 결과 히로세전기가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물론 이 경우의 ‘보답’이라는 용어는 주주를 염두에 두고 사용된 말로 주가 상승과 배당 등의 형태로 주주에게 돌아간 수익을 말한다.경쟁력 없는 부문 과감하게 정리이 회사는 <닛케이산업신문 designtimesp=24087>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과거 25년간 주식투자수익률(주식분할 등에 의한 권리락을 반영한 주가상승분에 배당금을 합친 누적수익금을 투자액으로 나눈 것)이 일본 산업계 최정상(금융업 제외)에 올라 투자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최강의 일본 기업으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28위)를 까마득히 먼발치로 밀어낸 것은 물론이요, 일본 산업계를 이끄는 기업들로 손꼽혀 왔던 기라성 같은 회사들도 모두 밑에 깔아버렸다.<닛케이산업신문 designtimesp=24092>이 발표한 이 회사의 주식투자수익률은 무려 5,320.1%. 77년 말 주가 462엔을 기준으로 1,000주를 구입했다고 가정할 경우 투자액은 46만2,000엔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25년 동안 약 53배인 2,457만9,000엔의 누적수익액을 올려주었다는 계산이다.70년대 말부터 지난해에 이르는 기간은 일본경제가 초고성장기로 치달은 후 80년대 말의 버블 붕괴를 신호로 10년 이상의 장기 불황에 빠졌던 세월을 의미한다.일본 언론과 분석가들은 히로세전기가 보여준 성과가 이 시기와 궤적을 같이하는 점을 특히 주목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처럼 단맛, 쓴맛을 모두 겪었지만 잘나가는 일류 회사들조차 하루아침에 나가떨어질 수 있었던 시련을 거뜬히 이겨내며 올린 성과라는 점이 히로세전기의 저력을 더 빛내준다는 것이다.히로세전기의 투자수익률은 상위에 오른 타 기업들을 수치에서도 압도하고 있다. 2위의 신에츠화학이 3,812%, 3위의 다케다약품이 3,751.3%로 모두 1,50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최근 일본 전기ㆍ전자업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업체로 평가받는 캐논(13위)은 2,024.3%로 히로세전기의 절반 수준에도 못미치고 있다.이 회사가 주식투자자들에게 화끈한 보답을 해줄 수 있었던 비결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장 없는 회사를 지향하면서 하청업체들을 풀로 활용한 아웃소싱(외부위탁)에 있었다.경쟁력 없는 부문을 과감히 잘라내고, 외부의 인재와 설비를 이용해 자신의 단점을 메워가는 아웃소싱의 가치를 모르는 현대 기업은 거의 없다. 그러나 히로세전기는 설립 초기인 70년대 초반부터 아예 아웃소싱 외길을 걸어왔다. 공장 없는 제조업의 존재를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부터 일찌감치 패러다임(틀) 전환을 시도한 셈이었다.히로세전기는 혼슈 동북쪽의 이와테현 시골 도시에 자회사를 세웠던 74년, 하청 일손을 구하기 위해 어촌을 뒤지고 다니기도 했다. 만나는 어부들에게 ‘기계는 우리가 빌려줄 테니 집에서 물건을 만들어 납품만 해 달라’고 사정하는 것이 히로세전기 직원들의 일이었다.공장 세우는 데 들어가는 돈을 아끼는 대신 하청생산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일감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대접을 후하게 해주는 대신 하청업체들에는 오직 히로세전기의 일만 맡아줄 것을 당부했다. 이 회사 저 회사의 일을 함께 처리하다 보면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일단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에 대해서는 스피드와 높은 기술력을 갖출 것을 요구했다. 때문에 하청을 맡은 협력업체들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히로세전기와 하청업체들의 단합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참가 멤버들의 얼굴이 5년을 못가 새 얼굴로 바뀐 일이 허다했다.닛산자동차의 부활드라마를 일궈낸 카를로스 곤 사장이 구매부문 개혁을 구조조정의 핵심으로 삼고 부품메이커를 엄격히 추려냈다지만 히로세전기는 이를 오래전부터 일관되게 밀어붙인 셈이었다.사카이 회장 65년 미국 공장견학 후 충격히로세전기가 이룬 신화의 씨앗은 아웃소싱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지난 71년부터 이 회사를 이끌어온 사카이 히데키 회장(69)은 근육질 경영의 고삐를 한시도 늦추지 않았다. 아무리 주문량이 많아도 마진이 박하면 거래에 응하지 않았다.캐시플로(cash flow)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며 무리한 투자를 멀리했다. 감가상각비와 순이익을 합친 금액을 ‘원천’이라는 자체 고유용어로 부르면서 설비투자가 이 액수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이익률이 10% 이하로 떨어진 제품은 즉시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남는 힘과 자금을 신제품 개발로 돌리는 전략을 고수했다. 덕분에 제품 개발속도가 경쟁업체들을 앞지르면서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신제품의 비중은 30% 전후를 헤아리게 됐다.히로세전기의 독특한 성장전략은 젊은 시절 사카이 회장이 경험한 충격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직후인 1965년, 기술자견학단의 일원으로 미국의 대형 커넥터메이커 암페놀을 방문한 그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감을 맛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초대형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최신제품과 자동화된 현대식 설비, 수많은 현장 근로자를 두눈으로 목격하면서 그는 정면승부로는 세계시장에서 전혀 승산이 없다는 보고서를 당시 사장에게 올렸다.새로운 설비를 들여올 돈도 없고 숙련 노동자도 부족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아웃소싱이라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던 것이다.고(高)주가 경영을 중시하는 사카이 회장은 “주가야말로 회사를 외부에 알리는 최대의 기업이미지통합(CI) 수단”이라고 말한다. 이와 함께 지식과 지혜로 경영자원을 집중시키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모두 외주로 돌리는 것이야말로 기업 생존의 핵심비결이라고 강조하고 있다.한편 이번 조사에서 히타치, 마쓰시타전기, 후지쓰, NEC 등 일류기업들의 상당수가 상위 200위에도 들지 못해 눈길을 끌었다. 회사의 브랜드파워와 주주에게 돌아가는 실익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해준 메시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