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5년 우승 이후 지난해까지 17년간 만년하위 기록

‘맹호열풍에 취해 버린 일본 열도….’1억2,700만 일본인들이 호랑이 최면에 단단히 걸렸다. 밤마다 계속되는 성난 호랑이의 포효 앞에 거인과 제비는 나가떨어진 지 오래고, 흥분을 가누지 못한 일본 국민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술잔을 기울이며 만세합창을 부르고 있다.신문, 방송은 질주하는 호랑이의 뒷소식을 따라잡느라 헉헉대지만 상인들은 호랑이가 대박을 안겨주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일본 열도를 집어삼킨 호랑이들은 오사카를 본거지로 두고 있는 프로야구단 한신 타이거즈.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이끄는 한신 타이거즈는 지난 7월10일 현재 55승 22패 1무, 승률 7할1푼4리로 센트럴리그(일본프로야구는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로 나뉘어 페넌트레이스를 치른다) 1위를 쾌속질주하고 있다.2위 야쿠르트 스왈로즈(제비)는 14.5게임차로 까마득히 뒤처져 있으며 최고 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는 3, 4위를 오르내려 자력 우승에서 멀어진 상태다. 매직넘버는 현재 48. 남은 62게임 중 48게임만 이기면 우승이 확정된다. 물론 2, 3위 팀들이 서로 물리고 물리면 우승시기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일본인들과 일본 열도가 한신 타이거즈의 쾌주에 환호를 보내며 축제분위기에 빠진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팬들의 열렬한 성원을 등에 업고도 만년하위를 면치 못했던 팀이 강팀을 연파하면서 우승을 손에 잡은 것처럼 굳히자 잠에서 깬 호랑이에 보내는 갈채가 일본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는 점이다.오사카와 고베를 잇는 한신전기철도를 모기업으로 하는 타이거즈는 지난 85년 우승한 이후 지난해까지 17년간 우승트로피를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 리그 최하위가 무려 10회에 달했으며 상위에 오른 것은 2회에 불과했다.일본 전역에서도 특히 다혈질의 주민들이 많기로 유명한 오사카를 본거지로 둔 덕에 응원열기는 하늘을 찔렀지만 성적은 정반대로 바닥을 기었던 것이다.한신 타이거즈의 질주는 이 같은 팬들의 우승갈증에 시원한 한 줄기 소나기 역할을 해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본 언론은 괴물타자 마쓰이 히데키 등 스타선수들의 잇단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로 일본프로야구의 관객유치에 큰 구멍이 뚫린 상황에서 타이거즈의 선전이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냈다고 평가하고 있다.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단골우승에 질려버린 팬들이 적잖은데다 스타선수들마저 줄줄이 태평양을 건너가 버린 바람에 스탠드가 텅 빌 것이 뻔했지만 호랑이 돌풍이 이를 막아주었다는 것이다.실제로 타이거즈는 홈구장인 고시엔야구장뿐만 아니라 도쿄 등 타 지역에서의 원정경기에서도 눈부실 정도의 관중동원력을 보여주었다. 요코하마의 경우 이 지역 홈팀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스가 리그 꼴찌를 면치 못해 관중이 크게 줄었어도 타이거즈와 붙기만 하면 지난해보다 스탠드가 훨씬 빽빽이 메워지는 기현상을 보였을 정도다.한신의 대변신은 ‘열혈남아’ 호시노 감독의 과감한 수술 덕분이라고 일본 언론은 전하고 있다. 나고야의 주니치 드래곤즈 감독시절 한국의 선동열, 이종범 선수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타이거즈 사령탑을 맡은 후 만년꼴찌의 팀에 만연해 있던 패배주의 심리부터 도려냈다.선수들의 투쟁심리에 불을 댕기고 취약한 포지션 보강을 위해 외부 수혈을 단행한 그의 수술에 힘입어 타이거즈는 팀타율(0.299)과 방어율(3.50) 모두 리그 1위의 팀으로 거듭났다.그러나 일본 언론이 호랑이 열풍에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적 효과다. 타이거즈 우승이 산업 각 부문에 안겨 줄 경제적 파급 효과가 만만치 않은데다 만년꼴찌의 선전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확산될 것이라는 점이 사회 전체를 축제분위기로 달구고 있다는 것이다.타이거즈 우승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이미 산술적으로 계량화돼 나와 있는 상태다. 오사카부립대학 경제학부의 미야모토 가쓰히로 교수는 간사이지역에서만 줄잡아 735억엔의 경제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한다.경기장 입장권과 구단 캐릭터용품, 그리고 식음료 등의 판매가 크게 늘어나면서 475억엔의 직접 효과가 얻어지는 한편 관련업종의 보너스 증액 및 이로 인한 소비확대 등 유발효과가 거의 300억엔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다.일본종합연구소의 오자와 야스히데 연구원은 한술 더 떠 우승이 몰고 올 경제효과가 1,133억엔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우승기념 세일 등 판촉행사가 잇따를 경우 경제효과는 1,000억엔을 간단히 넘길 것이라는 주장이다.관계·재계·금융계에도 인기이코노미스트들의 분석은 일선 소비 현장의 호랑이 열기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완구메이커 다카라는 1인용 전기자동차를 한신 타이거즈의 컬러인 검정과 노랑 무늬로 칠한 후 지난 7월1일부터 예약판매를 시작했으나 단 2일 만에 접수가 끝났다.이 자동차는 호시노 감독의 등번호를 따 77대만 제작될 예정이지만 대당 가격이 145만엔의 고가라는 점에서 타이거즈 열풍의 위력을 충분히 짐작하게 했다. 호랑이들의 인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아성인 도쿄에서도 거침없이 상승일로를 달리고 있다.도쿄지역에서 유일하게 타이거즈의 용품을 판매하는 신주쿠 게이오백화점은 6월 한 달간 7,000만엔의 매출을 올려 전월 대비 4배의 신장률을 기록했다. 용품매장을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후 최대 실적임은 물론이다.일본 열도의 남쪽 끝 가고시마에도 타이거즈 열풍은 거세게 불고 있다. 가고시마 명산품인 고구마 소주를 제조하는 고사마양조는 호시노 감독의 얼굴 스케치를 넣은 후 타이거즈 라벨을 붙인 제품을 내놓자 주문이 폭증, 공장을 풀가동하고도 물건을 대지 못하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호랑이 열풍은 타이거즈구단에도 돈다발을 듬뿍 안겨주고 있다. 라이선스 계약의 로열티로 매출의 4%를 받는 이 구단에는 상표사용 계약건수가 올해 상반기 동안 900여건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50%나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타이거즈 돌풍은 일본경제를 주름잡는 관ㆍ재계와 금융계의 거물 인사들로부터도 화끈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사카출신으로 호시노 감독의 후원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후쿠이 도시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타이거즈 우승을 학수고대하며 정성과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그는 “직접 관전할 시간은 많지 않아도 경기결과는 꼭 체크한다”며 “여름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초조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는 휴대전화의 멜로디를 타이거즈 응원가로 해놓을 정도로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일본 언론의 귀띔이다.와카야마현이 고향인 다케나카 헤이조 금융상은 “우승은 틀림없다”며 “타이거즈의 우승이 경제흐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고 부푼 기대에 들떠 있다. 그는 “85년 우승 당시에는 플라자합의가 있지 않았느냐”고 지적하는 등 타이거즈 우승이 경제회복의 실마리가 되기를 바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하지만 타이거즈 우승의 효과에 대해서는 지나친 기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적잖아 눈길을 끌고 있다. 개인들의 한정된 돈이 타이거즈와 관련된 곳으로만 쏠리다 보니 중소 자영업자와 별 상관이 없는 상인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긴키경제산업국 조사과의 사카구라 다카오씨는 “간사이지역은 기업들의 설비 해외이전으로 산업 공동화가 특히 심한 곳”이라며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우승 효과가 지역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