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유류분은 균등한 상속재산 분배라는 당초 취지에도 불구하고 분쟁의 불씨가 되곤 한다. 특히, 초고령화로 인해 부부가 함께 사는 기간은 과거에 비해 훨씬 늘었고, 황혼이혼이 급증하면서 부부간 재산 분할이나 상속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반환청구는 2005년 158건에 불과했던 것이 2015년 911건으로 5.8배가 넘게 늘어났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뿐만 아니다. 유류분반환청구 소송의 기간도 지난 11년 동안 3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무적인 소송 기간도 최단 한 달에서 최장 2년 이상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유류분소송 법률 상담을 전문으로 제공하는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유류분소송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진행한 유류분반환청구 소송 사례 중 소송 기간이 가장 짧은 사례는 1개월이며, 가장 긴 사례는 25개월인 것으로 조사됐다.
법도 종합법률사무소의 대표 엄정숙 변호사는 “실제 유류분 소송 기간은 1년 정도 걸리는 사건이 가장 많았다”며 “평균적으로 최근 몇 년간은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느낌인데, 이 때문에 소송 기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유류분 소송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1년간 평균 처리 일수는 278.2일 인 것으로 집계됐다. 9개월 정도 걸리는 셈이다. 소송 기간은 35.5%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에는 245일, 2015년 278일, 2020년 332일로 점진적 증가 추세를 보였다.
엄 변호사는 “입증해야 할 재산 내역이 많을수록 소송 기간이 길어진다”며 “유류분 소송 기간을 줄이려면 상대방이 반박하지 못할 증거 자료를 최대한 많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급변하는 사회·가족구조, 더딘 유류분 제도 일각에서는 아직 우리 사회 내 여성이나 노령의 배우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유류분 제도’ 개정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법조계는 물론 국회에서 유류분 제도의 일부 개정 필요성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하는 기류다. 사회와 가족구조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행 유류분 제도가 이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19년 10월 7일 유산 기부의 활성화를 위해 현행 유류분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의 ‘민법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직계비속의 유류분 비율을 현행 법정상속분의 2분의 1에서 3분의 1로 축소하고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 범위에서 제외하며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 또는 유지에 기여가 없는 직계비속이 피상속인 사망 전 5년 이상 피상속인과 연락을 단절해 그의 연락처 등을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유류분의 사전포기 제도를 도입해 피상속인의 직계비속 및 배우자가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상속 개시 전에 유류분을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유류분 제도 개정 논의와 함께 자주 언급됐던 것이 일명 ‘불효자 방지법’이다. 최근 수년째 부양의무를 약속하고 증여받은 자녀 또는 친족이 증여자를 학대하거나 폭행을 저지르는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사회적 문제는 물론 각종 상속 분쟁으로 번졌다. 현행법에 따르면 조건부증여가 아닌 한 일단 증여가 이행되고 나면 증여를 취소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유류분 제도가 처음 제정됐을 때와 지금은 사회구조와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며 “가족의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가 없고, 불효나 불화 등으로 관계가 악화된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에게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을 귀속하는 건 비합리적인 불로소득에 가깝다. 이를 개정하지 않는다면 유류분 제도가 되레 상속 분쟁을 부추기는 역할을 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나날이 재혼이 늘면서 전처와 이혼 후 후처와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에 대한 재산 분배 과정에서 충돌이 빚어지기도 한다. 가령, 과거에는 계모가 사망할 경우, 계모자 관계에 따른 상속이 가능했지만 1991년 민법이 개정되면서 계모자 간 상속이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이 경우 입양을 해서 계모의 양자가 돼 상속을 받을 수 있지만 또다시 파혼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대와 가족 구성의 급격한 변화는 상속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의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해외 유류분 개정 움직임은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유류분 제도를 현대사회에 맞게 다시 수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류분 제도가 있는 나라에서는 피상속인이 유류분에 대해 제한을 가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독일은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민법 개정을 통해 유류분 반환 비율을 줄였다. 상속 개시 전 1년간 증여가 이행된 경우에는 증여재산이 100% 산입되고, 상속 개시 전 1~2년간 증여가 이행된 때에는 90% 산입하는 식으로 해서 상속 개시 전 9년에서 10년 사이에 증여가 이행된 경우에는 10%가 산입되며, 그 이전의 증여는 산입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자녀가 조력을 제공하지 않고 방임한 경우’에 자녀의 유류분권을 상실시키도록 하고 있고, 체코의 민법에는 ‘피상속인이 질병, 고령이나 기타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조력을 제공하지 않은 때’에 직계비속의 유류분을 상실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일본도 유류분 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상속법’을 개정해 특별수익에 산입되는 기간을 명문화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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