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변적 세계 경제 상황, 한국은행 선제적 금리 인상은 ‘악수(惡手)’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한경DB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한경DB
올해 하반기가 시작되자마자 미국의 10년물 국채 금리가 지속적으로 급락하면서 7월 19일 1.20% 선마저 무너졌다. 지난 6월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에서 테이퍼링(양적 완화 축소) 논의가 공식화되고 ‘순차적 추진론’을 놓고 논쟁까지 일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다.

국채 금리 급락세가 일시적일지 여부를 떠나 더욱 의미가 큰 것은 경기 둔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Fed가 예측 지표로 높게 평가하는 장·단기 금리 차가 평탄화되거나 ‘단고장저’로 역전되면 일반적으로 경기 둔화 가능성을 나타낸다. 최근처럼 미국 경기가 올해 2분기를 고비로 둔화될 것이라는 정점론이 일고 있는 상황에선 경기 침체로까지 확대 해석될 수도 있다.

美 국채 금리 하락, 제2 닷컴·코인 버블 붕괴 신호?

1990년대 후반 이후 오랜만에 올해 2분기까지 ‘골디락스’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낙관론이 불었던 미국 증시에서 향후 경기가 둔화된다면 ‘제2 닷컴 버블 붕괴’가 나타날 공산이 크다. 2000년대부터 장기 금리가 급락한 것은 닷컴 버블 붕괴의 결정적 계기였다.

현재 거품 정도가 심한 것은 정크 본드와 알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FAANG(페이스북‧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대형 기술주 순이다. 정크 본드에 낀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지는 오래됐지만 가상화폐 가격은 심상치 않다. 제2 닷컴 버블론이 현실화된다면 대형 기술주의 주가가 의외로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높다.
하반기 글로벌 증시 양대 난제…美 국채 금리 하락과 테크래시
집값도 거품이 끼어 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주택 공급이 제한된 반면 재택근무로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수급 불균형이 심해진 점을 감안하면 붕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델타 변이가 확산되면 집값이 추가적으로 오를 것이란 예측이 더 많다.

중요한 것은 최근 국채 금리 급락세가 일시적인지, 경기 요인이 반영됐는지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기 둔화를 예고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물가 지표 발표 이후처럼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미국 재무부와 Fed로서는 오히려 부담스러워한다. 올해 상반기 경기 부양책에 이어 하반기 들어 인프라 확충 계획을 추진해야 할 미국 재무부는 적자 국채 발행으로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이자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Fed는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 금리 체계 유지와 외국인 자금 유입에 따른 자산 거품이 더 심해져 의도와 관계없이 테이퍼링을 앞당겨야만 한다. 6월 Fed 회의 이후 국채 금리가 급락한 것도 인프라 확충 계획을 1조 달러 수준으로 축소하고 테이퍼링을 가능한 한 신중하게 추진하겠다는 Fed의 노력으로 풀이된다.

한국이 초점을 맞춰야 하는 부분은 미국 국채 금리 움직임과 테이퍼링이 가변적인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릴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었느냐는 점이다. 캐나다 중앙은행이 23개 신흥국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행의 선제적 금리 인상의 논거인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외자 이탈 가능성은 낮게 나온다.

가계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시각도 2018년 11월처럼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가 더 침체됐던 악몽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우리처럼 가계 부채가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한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그 부담은 젊은층과 소상공인에게 집중된다.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앞서 주장할 필요는 없다. 오해의 소지만 낳을 뿐이다.
하반기 글로벌 증시 양대 난제…美 국채 금리 하락과 테크래시
·중의 ‘테크래시’, 서학개미 포트폴리오 변화 필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모든 분야에서 대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각종 신조어가 쏟아지고 있다. 경제 분야에서도 주마다 하나씩 나오는 가운데 요즘 들어 가장 뜨거운 신조어는 ‘테크래시’다. 테크래시는 ‘기술’과 ‘반발’의 합성어로 각국 정부와 빅테크 기업 간의 힘겨루기 등을 포함하는 신조어다.

테크래시의 주도 국가는 중국이다. 6년 전 미국과의 경제 패권을 겨냥한 ‘제조업 2025’를 추진하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 육성에 아낌없이 지원해 왔던 중국이 지난 3월 열렸던 양회(정치협상회의+전국인민대표자회의) 이후 스탠스가 변했다. △해외 상장 제한 △민간 기업 빅데이터 공유 △반독점법 적용 확대 등으로 빅테크 기업을 이중삼중으로 옥죄고 있다.

미국도 중국과 상황이 다르지 않다. 연방거래위원회 수장으로 ‘아마존 킬러’로 알려진 리나 칸을 임명한 후 △경쟁사 킬러 인수 규제 △핵심 인력 빼내기 제한 △망 중립성 확보 △제품 수리권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날로 심해지고 있는 빅테크 기업의 독점 행위를 규제해 자국 시장에서 경쟁을 촉진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 정부 들어 미‧중의 테크래시가 급부상하고 있는 것에 관해선 ‘나바로 패러다임’과 ‘셀러번 패러다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국 견제 이론과 실무를 제공한 피터 나바로 당시 국가무역위원장은 ‘중국은 악이며 악의 근원은 공산당’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철저한 봉쇄 전략을 추진했다.

결과는 참패였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72%에 수준에 이를 만큼 경제 격차가 줄었다. 골드만삭스 등은 일러도 2030년이 넘어야 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중국의 추월이 2028년으로 앞당겨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임한다면 자신의 임기 중 경제 패권을 중국에 내주는 최악의 수모를 겪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위기감을 느낀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의 주역으로 앉힌 제이콘 셀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세계 국가의 3분의 2가 최대 무역 파트너로 삼고 있는 중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미국의 강점인 네트워크와 첨단 기술의 우위를 더 강화하는 스파이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나바로 전 위원장이 ‘까마귀 대 까마귀’ 싸움을 택했다면 셀러번 보좌관은 ‘까마귀 대 독수리’ 싸움을 택했다.

셀러번 패러다임은 주효했다. 다른 요인도 결부돼 있지만 알리바바·텐센트·디디추싱·바이트댄스 등 중국의 빅테크 상징 기업들은 일제히 흔들리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우선 순위를 뒀던 반도체 굴기의 상징인 칭화유니온그룹은 파산 일보 직전이다. 화웨이는 조만간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배척당할 위기에 내몰렸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자체적으로 기업 권력이 국가 권력을 넘보는 빅테크 기업의 독점력을 약화시키려는 목적도 크다. 국민(중국은 인민) 화합 차원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횡재 효과(bonanza effect)’를 누린 빅테크의 이익을 ‘상흔 효과(scaring effect)’로 거리에 내몰리는 소상공인과 저소득층을 지원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

미·중의 테크래시로 깊은 고민에 빠진 이들은 양국 빅테크 기업을 위주로 해외 주식을 많이 보유한 ‘서학개미’들이다. 테크래시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만큼 올해 말을 겨냥해 배당 성향이 높은 종목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 놓아야 한다. 개별 종목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상장지수펀드(ETF)나 연금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놓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