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수수료, 설비 효율 등 비트코인 수요는 이상적이지 않은 현실에 여전히 알맞아

[비트코인 A to Z]
“0달러에 수렴한다고?” 비트코인이 맞이하게 될 진짜 미래는[비트코인 A to Z]
‘블랙 스완’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는 “비트코인은 결국 0달러에 수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얼마 전까지 그는 “비트코인이 종이 돈을 앞서는 뛰어난 생각”이라고 극찬하기도 했기에 그의 변심은 하락장과 함께 찾아온 스산한 비보가 됐다.

탈레브 교수는 비트코인을 세 가지 자산 범주와 비교한다. 배당이나 이자를 주는 유가증권, 배당을 주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으며 산업적 용도가 있는 금과 은, 거래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현금이 그것이다.

가격 상승 기대 없어진다고?

비트코인은 배당이나 이자가 없다는 점에서 유가증권보다 열등하고 산업적 용도는 물론 오랫동안 인류의 기억 속에 자리잡은 금과 은에 비할 수조차 없으며 가격이 출렁거려 거래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현금에 비해서도 열등하다. 여기까지는 낯설지 않다. 회의론자들의 비판을 정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탈레브 교수가 주장한 핵심은 어떻게 가격이 0달러가 되는지다.

비트코인은 장부를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투입한다. 바로 채굴에 소모되는 전기다. 전기는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데 ‘한계비용=시장 가격’이라는 미시 경제학의 원리를 이용하면 비용의 대강을 파악을 수 있다.

비트코인이 3만 달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 발행되는 코인을 누군가 3만 달러에 사 줘야 한다. 10분마다 6.25개의 신규 코인이 발행되므로 하루 900btc를 개당 3만 달러에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이 비트코인 생태계에 유입돼야 한다. 하루 2700만 달러, 대략 300억원의 자금이 채굴자들에게 돌아간다. 이것이 장부를 유지하는 비용이다. 배당이 없는 비트코인이 가격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코인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어떤 이유로 이 기대가 없어진다고 해 보자. 가격이 무한히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다고 가정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배당이 없는 자산이기 때문에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 투자가 끊긴다. 즉 자본의 순유입이 없어진다. 새로운 코인을 사 줄 외부 투자자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신규 코인이 발행될 때마다 비트코인 가격은 떨어진다. 가격이 떨어지면 채굴자들의 보상이 줄어들어 채굴 파워가 작아진다. 그럼에도 계속 신규 코인이 나오기 때문에 비트코인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되고 채굴자들은 잇달아 도산한다.

결국 비트코인 채굴 시스템은 붕괴되고 비트코인은 가격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탈레브 교수는 여기에서 한 번 더 과감하게 확장한다. 비트코인 투자자들과 채굴자들이 비트코인이 미래 어느 시점에서 분명히 0달러가 된다고 확신한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현실화된다. 비트코인 가격이 여러 가지 이유(허점의 발견, 진보된 기술로의 대체 등)로 영원히 상승할 수 없다는 각성이 일어나는 시점에 바로 0달러가 된다는 것이다.

즉 각성은 시간문제일 뿐이고 비트코인은 반드시 0달러에 수렴하게 된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결론이다. 비트코인은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자본이 유입돼야만 유지되는 시스템인데(신규 코인이 발행되는 한) 그러려면 가격이 끝없이 올라가야 한다. 가격이 끝없이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자본의 유입이 멈추고 비트코인은 올라왔던 경사면을 가파르게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진정한 비트코이너라면 본격적으로 비트코이너가 되기 전에 머릿속에서 탈레브 교수와 비슷한 모형을 한번쯤은 굴려본다. 이 벽을 넘지 못하면 비트코이너가 아니라 회의론자의 길에 접어들게 되는 결정적인 생각의 고비이기도 하다.

미래는 여전히 비트코인 수요로 가득찰 것

우선 탈레브 교수의 논리를 환영할 가상화폐 진영이 있다. 바로 이더리움이다. 이더리움은 지분 증명(PoS : PoS(Proof of Stake)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비트코인처럼 엄청난 자원을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더리움을 스테이킹하면 채굴 배당이 나오기 때문에 배당이 있는 자산의 성격도 갖는다. 또한 이더리움 플랫폼에서는 탈중앙화 금융(DeFi)과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이 발행, 유통되므로 이더리움 플랫폼은 어떤 쓸모를 갖는다. 즉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격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도 이더리움 플랫폼은 안정된 생태계로 살아남을 수 있다. 가격 상승의 기대감이 없어져 시스템 역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레브 교수가 이더리움 2.0을 의식하고 논문을 발표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탈레브 교수는 블록체인 전체를 싸잡아 막연한 환상을 빼고 나면 현실에서 쓸모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탈레브 교수가 전개한 논리는 이더리움 2.0으로의 전환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즉 탈레브 교수의 논문은 이 생태계 초기부터 이어져 온 ‘비트코인이라는 화폐 현상’ 대 ‘블록체인이라는 혁신 기술’의 대립 구도를 다시 한 번 부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

비트코이너들은 탈레브 교수가 제시한 ‘확장의 장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가격 상승의 한계점에 다다른 미래의 투자자들이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 데도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싶어 할까. 만약 그들이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데도 비트코인을 추가로 소유하고자 한다면 추가로 생산되는 비트코인이 가격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고 채굴자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탈레브 교수의 논리를 검토하기 위해 상식적인 질문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비트코인 생태계는 외부에서 지속적인 자원의 유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가치를 생태계 외부로 돌려주는지의 문제다. 탈레브 교수는 비트코인이 어떤 형태의 자산과도 비슷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열등하기 때문에 비트코인 생태계가 외부에서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흡수하는 일은 정당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고 가정한 후 논리를 전개했다. 지금까지 비트코인 생태계가 성장한 이유는 미래에 가치를 생산할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고 이 환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고 못 박고 있는 셈이다.

왜 사람들은 배당도 없고 가격도 불안정하고 금처럼 역사성도 없으며 가격이 더 이상 올라갈 수도 없는 비트코인을 소유하고자 할까. 만약 미래의 그 시점에 세상이 이상적인 상태라면 비트코인을 소유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 역시도 지금처럼 세상은 이상적인 상태와 거리가 멀 것이라고 가정하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다.

그때도 어떤 가장들은 전쟁이 벌어진 조국으로부터 가족들을 외국으로 탈출시키기 위해 국경경비대가 빼앗을 수 없는 자산이 필요할 수 있다. 또 외국 소비자에게 재화나 용역을 공급하는 어떤 생산자는 금융망으로 송금받을 때 송금 수수료와 환전 수수료가 지나치게 비싸 비트코인으로 받으려고 할 수도 있다. 어떤 전력 회사는 남는 전기를 활용해 발전 설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대안으로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비트코인을 채굴할 수도 있다. 전기를 버리는 것보다 그것이 낫기 때문이다. 즉 탈레브 교수의 가정과 달리 가격이 더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비트코인의 수요는 유지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도 수요가 지탱될 수 있다.

비트코인은 이상적이지 않은 세상을 위해 발명됐다. 자산으로서 수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상과는 먼 상태에 직면한 개인과 기업들에는 비트코인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는 이유다. 게다가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환상이 지속되는 상당한 기간 동안 비트코인의 알려지지 않았던 효용들까지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토록 이상적이지 않은 세상이라면 비트코인이 맞이하게 될 진짜 미래는 비트코인이 너무 적어 모든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다. 즉 탈레브 교수가 전제한 절대로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한계 상황이 영원히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탈레브 교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비트코인의 궁극적 미래를 논할 만큼 비트코인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니다. 우리의 진정한 무지는 비트코인이 존재하고 있는 이상적인 상태와는 거리가 너무나 먼 바로 이 세상 그 자체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