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적 노동 시장…대기업‧공공 부문에 노조 밀집
노조 조직률 양극화도 심각
한국 노조, 약자 대변 못해
노조 정상화 위해 탈 포퓰리즘 필요
하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는 오히려 노조의 힘을 강화하려고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산층 회복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노조를 강화해 양극화를 줄이겠다고 했다. 이러한 정책은 전임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한국과 시각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미국의 노조는 온건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노조의 강화가 중산층의 강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한국은 노조가 투쟁에만 몰입해 일자리가 줄고 중산층이 약화돼 노조에 대한 여론도 나빠졌다. 또 노조가 기득권 키우기에 혈안이었지만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도 부재했다.
노조의 힘이 커지면서 청년 고용이 악화돼 4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이다. 대기업 고용 비율이 40%에서 10%로 반의 반 토막 나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공공 부문에 몰렸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의 3명 중 1명 이상이 공무원과 공기업 시험을 준비한다. 노동 시장이 기형적으로 변한 이유는 노조가 대기업과 공공 부문에 밀집된 데 있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이 노조의 힘에 눌리면서 과도하게 임금이 올라가고 고용 보호가 강화됐을 뿐만 아니라 그 부담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에 전가됐다. 다른 나라도 공공 부문의 노조 조직률이 민간 부문보다 높지만 그 차이는 많아도 3배 정도다. 하지만 한국은 공공 부문의 노조 조직률이 70%에 가까워 민간 부문(10%)보다 무려 7배 높다. 민간 부문의 1000인 이상 기업은 조직률이 70%를 넘는 반면 노동자의 3명 중 2명이 일하는 30인 미만 기업의 조직률은 0.2%로 노조 제로다.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노조 조직률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민주화 덕분에 노조는 커지고 힘도 세졌다. 중산층이 증가한 덕분에 민주화에 성공했는데 민주화 이후 중산층은 오히려 약화됐다. 노조의 힘 강화가 중산층 약화로 이어지는 역설은 포퓰리즘에 빠진 외국에서도 그랬다. 포퓰리즘은 편 가르기로 자본과 노동의 대립을 부추기고 노조는 그 틈 속에서 정치 세력화된다. 중산층이 붕괴된 베네수엘라 등 남미와 21세기 들어 중산층이 급감한 남부 유럽이 그랬다. 노조는 조직과 돈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도움을 받기 위해 노조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해 노동 시장을 이중 구조화한다. 한국도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포퓰리즘으로 흐르면서 노사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정책 무대가 노동계에 일방적으로 기울어졌다. 지난 4년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 시간 단축으로 저소득층의 일자리와 소득이 줄었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비준한다고 노동법을 개정해 노조의 특권만 강화했던 것도 포퓰리즘의 산물이다.
한국의 노조는 약자를 대변하지 못한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면 노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 그리고 독일 등의 역사가 보여줬듯이 노조의 정상화는 탈포퓰리즘 정치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이렇게 만드는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내년 대선은 노조의 정상화로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깨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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