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캐시카우 찾으려 대규모 투자 감행…빠른 재무 부담 해소가 관건

[마켓 인사이트]
서울에서 가장 먼저 오픈한 이마트트레이더스 월계점 전경. /한국경제신문
서울에서 가장 먼저 오픈한 이마트트레이더스 월계점 전경. /한국경제신문
이마트의 인수·합병(M&A) 행보가 심상치 않다. 소매 유통업계를 뒤흔들 핫한 ‘딜’을 모조리 쓸어 담으며 단숨에 M&A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다. 성장 여력이 떨어지고 있는 대형마트 부문의 사업 한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익 창출원(캐시카우)을 찾기 위해서다.

단, 연이은 대규모 투자 부담에 이마트의 중·단기 신용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이마트의 과감한 변화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불안한 신용도 전망에도 1조2000억원 수요 확보

이마트가 올해 8월 4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흥행 가능성을 두고 시장에선 여러 얘기가 나왔다. 회사채 발행 시장이 여름 휴가철 비수기를 맞아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관투자가들이 이마트의 회사채를 쓸어 담을 것이란 긍정적 전망이 속속 나왔다. 반면 일각에선 최근 공격적인 M&A를 잇달아 단행하고 있는 만큼 이마트에 대한 기관투자가들의 경계 심리가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됐다.

현재 채권 시장에서 통용되는 이마트의 신용 등급은 ‘AA’다. 절대적 수준만 놓고 보면 우량한 신용 등급이지만 추세적으로는 하향 기조다. 2019년까지만 해도 이마트의 신용 등급은 최고 신용 등급인 ‘AAA’의 바로 아래인 ‘AA+’였다. 금융회사나 공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최고 신용 등급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주력인 대형마트 사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나빠지면서 신용 등급이 ‘AA’로 한 단계 하향 조정됐다. 단순히 대형마트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온라인·전문점의 계속된 영업 손실과 영업상 창출되는 자금을 웃도는 투자 부담도 이마트의 신용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더욱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매 유통 업황을 비우호적이라고 판단하는 한국 신용 평가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마트의 회사채 발행 흥행에 대한 불확실성이 적지 않았다.

이마트는 이러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다. 이마트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사전 청약)에 1조21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이마트가 예상한 회사채 발행 금액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이마트가 지금까지 진행한 회사채 수요 예측을 통틀어 가장 많은 투자 수요다. 특히 자산 운용사와 연기금들이 이마트의 회사채에 큰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투자 의사를 밝혔다. 이마트는 결국 당초 예상했던 회사채 발행 금액을 1200억원 늘려 5200억원어치를 발행했다.

이를 두고 시장 참여자들은 이마트의 불안한 재무 안정성보다 미래 성장 동력 발굴 노력에 기관투자가들이 높은 점수를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마트는 급격한 소비 패턴 변화와 코로나19 사태로 영업 실적에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와 온라인 패션몰 W컨셉, 이베이코리아,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분 매입 등 굵직한 M&A를 잇달아 성사시켰다. 대규모 자금 유출이 늘어나면서 이마트의 재무 부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 자산 운용사 관계자는 “소매 유통업계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이마트의 노력이 중·장기적으로 탄탄한 수익 창출 능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M&A 큰손’ 이마트, 역대 최대 투자 수요 확보로 시장 우려 잠재울까
재무 부담 우려 억누를 ‘시너지 발현’이 핵심

이마트는 신세계에서 2011년 대형마트 부문이 분할돼 설립됐다. 올해 3월 기준 한국에 141개 브랜드 대형마트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최대 규모로 이마트는 명실공히 업계 1위 시장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형마트 이외에도 창고형 할인 마트인 트레이더스와 노브랜드·일렉트로마트 등 전문점 부문으로 점포 형태를 다양화하고 있다. 연결 자회사를 통해 온라인몰 SSG닷컴, 편의점 이마트24, 기업형 슈퍼마켓 이마트에브리데이,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소매 유통업계의 경쟁 강도가 심화되고 있지만 대규모 대형마트의 점포망과 신규 유통 채널을 바탕으로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마트는 탄탄한 브랜드 인지도를 앞세워 온라인 사업 기반과 신선 상품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단, 코로나19의 확산을 계기로 빠르게 변하고 있는 소매 유통업계의 트렌드에 대응하고 있지만 본질적인 하방 위험은 계속되고 있다.

대형마트의 업황은 시장 성숙과 의무 휴업 등 정부의 규제 강화로 점진적으로 저하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근거리·소량 구매 경향이 확산되고 온라인 쇼핑 등 업태 간 경쟁이 거세지면서 본질적인 사업 경쟁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윤성국 나이스신용평가 책임연구원은 “불리한 업황과 경쟁 심화로 2012년 이후 마트의 실질 판매 성장률이 점진적으로 둔화하고 있다”며 “공산품 부문에서 다른 유통 채널과 차별성이 약화된 가운데 주력인 식품 부문으로 온라인 소매 유통 업체들의 침투가 확대돼 최근 3년간 이마트의 기존점 매출 신장률이 저조한 추세”라고 분석했다.

이어 “창고형 할인 매장 등 대체 유통 채널의 성장세가 할인 매장의 성장성을 일부 보완하겠지만 코로나19 재확산으로 한국의 소매 판매 자체가 위축될 수 있어 사업 안정성은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분위기는 재무 지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마트의 최근 3년 평균 연결·별도 기준 매출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각각 5.6%, 6.0%다. 절대적인 수준으로만 보면 양호한 편이지만 2011~2017년 평균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 시기의 연결·별도 기준 매출 대비 EBITDA는 각각 7.9%, 9.3%였다.
원인을 찾아보면 복합적으로 내·외부 요인들이 맞물려 있다. 경쟁 심화로 2018년부터 매출 원가율이 상승했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조선호텔&리조트의 영업 수익성이 큰 폭으로 저하됐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1분기 연결·별도 기준 매출 대비 EBITDA는 각각 6.4%, 6.2%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선 개선됐다. 조선호텔&리조트의 영업 적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마트·트레이더스 부문의 영업 실적이 제고된 덕분이다. 전문점 부문과 SSG닷컴의 EBIT 적자가 축소된 점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마트가 공격적으로 M&A에 나서고 있는 데는 본질적으로 이런 환경 변화의 영향이 있다. 높은 오프라인 매장 의존도에 따른 투자 부담과 온·오프라인 유통 업체 간 경쟁 강도를 감안하면 중·단기적인 영업 수익성 하방 압력은 불가피하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이마트가 연이어 추진하고 있는 대규모 딜이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다만 이마트의 이익 창출 능력 자체가 저하된 상태에서 투자 부담이 늘고 있어 이베이코리아·스타벅스코리아 인수 이후 현금 창출 능력 제고 여부에 대한 관찰이 좀 더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한승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재무적 투자자 유치 등으로 자체적인 투자 부담 일부를 경감하고 있지만 향후 신용도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외부 차입 조달 규모와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추가적인 현금성 자산 확보 계획에 대해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사업적 시너지 발현 시기와 수준이 신용도 방향성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